배달기사님이 계단에서 멈춰 서더니 ‘여기요’라고만 했다
배달기사님이 계단에서 멈춰 서더니 ‘여기요’라고만 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늦은 시간에 주문해놓고 문 앞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현관 쪽에서 계단을 오르던 소리가 뚝 끊겼어. 그리고 바로 아래층쯤에서, 사람 목소리라기엔 뭔가 기계처럼 또렷하게 한 마디가 들렸어. “여기요.”
처음엔 그냥 실수인 줄 알았지. 혹시 주소를 잘못 찍었거나,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이동하던 중에 잘못 보인 건가 싶어서 “네?” 하고 되물었어. 그런데 그 다음이 더 이상했어. 대답은 안 돌아왔고, 대신 계단 난간 위로 손이 스치는 소리 같은 게 길게 이어졌어. 마치 누가 벽을 짚으면서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잠깐 뒤에 문 앞 인터폰 화면이 켜지더니, 배달 기사님 이름이 떠. 그런데 사진이 이상했어. 보통은 정면 얼굴 사진인데, 그건 얼굴이 아니라 헬멧이나 모자를 쓴 것처럼 이마 위만 보이고, 아래는 어둡게 눌려 있었어. 게다가 시간도 이상하게 빨리 바뀌었어. 분명히 방금 전까지 통화 중이었는데, 한 번 끊겼다가 바로 다시 연결된 느낌이 들었거든.
나는 마음이 좀 식었는데도, 배달이니까 나가서 받는 게 맞겠지 싶어서 문을 열었어.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복도 바람이 확 들어왔고, 그 바람이 계단쪽에서 올라오고 있었어. 계단은 1층에서 2층으로 바로 이어지는 구조인데, 평소엔 아무 소리도 없거든. 그런데 그날은, 계단에서 누가 숨을 쉬는 소리 같은 게 아주 가까이 들렸어.
계단 쪽을 보니까, 배달기사님이 딱 멈춰 서 있었어. 근데 이상하게도 바닥을 보고 있지 않았고, 사람을 향해 고개를 든 상태였어. 마치 내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이. 그는 손을 흔들지도 않았고, 말도 안 했어. “여기요” 한 마디 끝. 그 상태로 포장박스만 들고 있었는데, 박스가 살짝 들썩이는 게 보였어. 내가 움직이면 같이 흔들릴 정도로, 무언가가 내부에서 닿아 있는 느낌.
나는 혹시 음식이 뜨거워서 그런가 싶어 멈칫했는데, 그 순간 그는 계단 난간에서 손을 뻗더니, 계단 벽에 붙어있는 낡은 안내문 쪽을 손끝으로 툭 건드렸어. 종이가 바스락 움직이더니, 안내문 아래에 있던 얇은 틈새가 벌어지는 것처럼 보였지. 그걸 확인하려고 눈을 가까이 가져가는 순간, 배달기사님이 갑자기 자세를 바꿨어. 마치 그쪽을 확인한 게 들킨 사람처럼.
그래서 나도 얼른 “아, 여기요. 문 앞인데요” 하고 말했어. 그러자 그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나를 봤는데, 그 눈빛이 되게 이상했어. 표정이 굳어 있는 건 아닌데, 눈동자가 초점이 안 잡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거든. 그리고 한 박자 늦게, 아주 낮게 “여기요”를 다시 말했어. 이번엔 주소를 가리키는 말 같았는데,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아니라 내 뒤, 문 안쪽을 향해 말하는 것처럼 들렸어.
나는 문을 등지고 서 있었거든. 그래서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려 했는데, 그 순간 복도 불빛이 잠깐 깜빡였고, 계단에서 들리던 숨소리가 멎었어. 대신, 포장박스 안쪽에서 “톡… 톡…” 아주 조용한 소리가 났어. 마치 뭔가가 포장재를 두드리며 시간을 세는 것처럼. 배달기사님은 그 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계속 나를 보고 있었고, 손은 박스를 더 꽉 쥐고 있었어.
결국 나는 용기 내서 “기사님, 제가 받을게요” 하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어. 그 순간, 그는 한 손으로 박스를 내 쪽으로 밀어주듯 내밀었는데, 손가락 사이로 땀이 아니라 물기 같은 게 스치듯 흘렀어. 끈적거리는 느낌은 아니었고, 차갑게 젖은 느낌이었지. 그리고 그가 박스를 내 손에 놓기도 전에, 계단 아래에서 누군가가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어. 분명 사람이었는데, 소리가 너무 가까워서 숨이 턱 막혔어.
그 발소리가 바로 멈추더니,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다시 한 번 같은 목소리가 들렸어. 이번엔 내 뒤쪽이 아니라 계단 중간, 그러니까 우리가 둘 사이에 있는 지점에서 “여기요.” 그 말이 너무 똑같아서, 나는 순간적으로 장난인 줄 알면서도 몸이 굳어 버렸어. 배달기사님은 그대로 서 있었고, 발소리는 더는 안 들렸어. 그리고 10초쯤 지나자, 배달앱에 뜨던 상태가 갑자기 완료 처리로 바뀌었어. 내가 받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날 이후로도 그 주문은 환불 처리됐고, 고객센터에 문의했을 때는 “기사님이 건물 내에서 전달 완료로 표시돼요”라는 말만 돌아왔어. 하지만 생각해보면, 전달 완료가 아니라 누군가가 ‘여기’라는 위치를 계속 확인한 것 같아. 계단에서 멈춘 이유도, 나를 보던 방식도, 그리고 두 번이나 같은 말이 반복된 것도 다 그렇고. 아직도 가끔 밤에 복도 불빛이 한 번 깜빡일 때면, 계단에서 누군가가 문을 향해 손을 뻗는 상상을 하게 돼. “여기요”라는 말은 받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확히 찾아오라는 신호였던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