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점검표에 내 서명이 적혀 있더라
편의점 점검표에 내 서명이 적혀 있더라. 그날도 어김없이 야간에 혼자 일하고 새벽 정리까지 하고 나면, 계산대 아래 서랍에 점검표가 들어가는 구조였어. 나는 그냥 익숙한 대로 날짜만 확인하고, 점검 항목에 체크하고, 마지막에 사인만 하고 마무리했거든. 그런데 다음 날 출근해서 점검표를 보는데, 분명 어제 내가 쓴 서명인데도 뭔가 느낌이 이상했어. 잉크가 조금 번진 것처럼 보였고, 글씨 꺾이는 각도가 내 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처음엔 피곤해서 착각인가 싶었는데, 사인이 적힌 자리가 원래 내가 서명하던 위치랑 달랐어. 나는 보통 점검표 하단의 ‘확인’ 칸에 서명하고, 위의 ‘매장상태 확인’ 쪽은 점주가 따로 하거나 시스템 체크만 하고 넘어가. 그런데 그날 점검표에는 내 서명이 하단이 아니라 중간 쯤, 그것도 ‘매장상태 확인’ 칸 옆에 딱 붙어 있었어. 마치 누가 내 서명을 복사해서 그 자리에 옮겨놓은 것처럼 깔끔하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어설픈 느낌이 공존했지.
나는 점주한테 바로 말하지 않고, 먼저 CCTV가 있는지 확인했어. 편의점이라도 야간엔 카메라가 잘 안 보이는 사각이 있다고 들었거든. 그런데 점주가 “어차피 점검표는 대충 적는 거지, 무슨 상관이야”라고 웃으면서 넘어가려는 거야. 웃는데 그 표정이 너무 빨리 풀려서 오히려 찜찜했어. 나는 “어제 서명 위치가 바뀌었어요”라고만 말했지, 그게 복사 같다는 말은 끝까지 못 했어. 이상한 얘기 하면 내가 더 이상해 보일까 봐.
그래도 불안해서 그날 퇴근할 때, 점검표를 다시 확인했어. 점검표는 매주 금요일 새 양식이 들어오고, 월~목은 구비해 둔 걸 쓰는 방식이었어. 그런데 그날 내가 서명하려고 펜을 집는 순간, 펜이 이상하게 차가웠어. 보통은 새 펜이면 적당히 따뜻한데, 그건 마치 오래 꺼내두지 않았다가 갑자기 만진 것처럼 차가웠거든. 그리고 펜 끝이 약간 말라 있었는지, 종이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뭉개지듯 들렸어.
다음 날, 진짜로 사건이 커졌어. 아침 교대가 올 때 점주가 나를 부르더니, “어젯밤에 손님이 물건을 다 옮겨놓고 갔대”라고 말하는 거야. 손님은 딱히 CCTV로 특정된 건 없고, 그냥 매장 상태가 어지럽다며 연락이 왔다더라. 그런데 그 ‘어지럽다’는 게 이상한 방향으로 나타났어. 계산대 아래 서랍은 손댄 흔적이 있었고, 재고 정리함도 조금 틀어져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점검표가 놓인 자리만은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깨끗했어.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점검표만 건드리지 않다가, 딱 필요한 것만 건드린 느낌.
그때부터 나는 점검표를 더 집요하게 봤어. 내 서명 아래 줄에, 누가 급하게 적은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거든. 자세히 보니까 그건 ‘완료’ 비슷한 단어였는데, 펜이 아니라 연필로 그은 것처럼 옅었어. 그리고 그 글씨 끝부분에 내가 절대 안 쓰는 습관이 하나 있었어. 나는 ‘완료’ 쓸 때 동그라미를 더 크게 만들고, 그 사람은 동그라미를 더 작게 찍었더라고. 근데 이상하게도, 서명은 분명히 내 필체랑 거의 같았어. 이게 제일 미치겠는 부분이었지. 누가 내 필체를 흉내 내면서도, 글씨 습관은 모르는 상태로 적어놨다는 거니까.
나는 그 주말에 퇴근 후 집에 가서, 진짜로 내가 어제 서명한 방식이 어떤지 비교해봤어. 손목을 쓰는 각도, 마지막 획을 끊는 속도, ‘ㅁ’ 모양의 각도 같은 걸 메모해두고, 어제 점검표 확대해서 봤는데 확실히 차이가 있었어. 다만 차이는 작았고, 그래서 더 무섭더라. 누군가가 내 서명을 ‘그럴듯하게’ 따라 한 거라면, 큰 차이는 나기 마련이잖아. 그런데 차이가 너무 작아서, 마치 누군가가 내 손을 보고 따라 그린 것 같았거든. 아니, 더 나쁘게 생각하면… 내가 그 자리에 없을 때 누군가가 이미 그 서명을 해 둔 것일지도.
그다음 사건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터졌어. 월요일 야간에 출근했는데, 점검표가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거야. 나는 점검표를 항상 서랍 안쪽에 넣는 편이라, 누군가 꺼내 놓는 걸 알아채지 못할 만큼 바쁘진 않았거든. 그런데 점검표가 펼쳐져 있고, 빈 칸에 펜이 얹혀 있었어. 누군가가 “다음은 너 차례”처럼 만들어 둔 느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체크하고 서명하려고 했는데, 펜이 또 차갑게 식어 있었고, 잉크가 종이에 닿는 순간 손끝이 잠깐 저릿했어. 그 저림이 ‘감기’ 같은 게 아니라, 알람처럼 확 올라오는 느낌이랄까.
그날 밤 점주가 또 툭 던지듯 말했어. “너 요즘 점검표 잘 챙기더라. 어제도 빠뜨리지 않았고.” 나는 가만히 있다가 “어제는 제가 서명 위치가 바뀐 걸 봤어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지. 그러자 점주가 잠깐 멈칫하더니, “서명? 그건 시스템이랑 맞춰서 자동으로 찍히는 거 아니야?”라고 했어. 자동으로 찍힌다고? 점검표는 수기로 쓰는 종이였는데, 점주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말이 앞뒤가 안 맞았는데도 끝까지 우기듯 말하는 게, 웃기면서도 소름이 돋았어. 마치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자기 확신을 확인하듯.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운이 남는 건, 그 다음 주까지도 내 서명이 종종 ‘내가 아닌 위치’에 나타났다는 거야. 손으로 옮겨 적힌 흔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가 악의적으로 장난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었어. 내 서명인데, 내 서명이 아닌 위치. 읽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작은 차이인데, 계속 보게 되니까 결국 마음이 한 번 꺾이더라. 점검표는 매장 상태를 확인하는 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는 반대로 느껴졌어. 누군가가 확인하는 건 매장이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 “있는지”였다는 거. 나는 지금도 펜을 잡기 전에 서랍을 한 번 더 확인해. 비우지 않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날 이후로는 비워도 누군가가 채워둔다는 걸 알게 됐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