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가로등이 내 얼굴만 비추는 것 같았어
택시에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가로등이 내 얼굴만 비추는 것 같았어.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상하게도 눈앞의 어둠이 내 표정을 따라오듯 밝아졌다가 꺼졌어. 기사 아저씨는 아무렇지 않게 목적지만 말했는데, 유리창 너머의 가로등은 내 쪽으로만 칼같이 꽂히는 느낌이었거든.
그날도 늦은 밤이었어. 회사 끝나고 바로 택시를 잡았는데, 차는 조용했고 공조기 소리만 반복됐어. 나는 뒷좌석 오른쪽에 앉아서 창문 쪽을 보고 있었고, 가로등이 하나 둘 스치듯 지나갈 때마다 얼굴이 홀딱 밝아졌어. 그런데 신기한 건, 맞은편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내 이마랑 볼만 환하게 비친다는 거야. 잠깐씩이 아니라, 거의 리듬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처음엔 “차가 어느 각도로 달리길래 그렇지” 싶었어. 하지만 갈수록 확신이 생겼어. 같은 가로등을 봐도 내 얼굴 쪽이 먼저 밝아지고, 곧바로 뒤통수 쪽 어둠이 따라오는 것 같았거든. 마치 누가 내 얼굴에 스포트라이트를 켜두었다가, 가로등이 지날 때마다 스위치를 넘기는 것처럼. 거울도 아닌데도 내 표정이 실시간으로 바뀌는 느낌이 들었어.
기사 아저씨는 신호에서 잠깐 멈췄다가 다시 출발했는데, 멈춘 순간에도 빛이 끊기지 않았어. 정지한 지 몇 초쯤 지났을까, 창밖은 정체된 어둠인데 내 얼굴만 미세하게 더 밝아졌어. 그때 깨달았지. 가로등이 내 얼굴을 비추는 게 아니라, 내 얼굴이 먼저 빛을 받는 것 같다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창문에 손을 대봤어. 유리엔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뭔가 열감 같은 게 느껴졌거든.
나는 휴대폰 화면을 켜서 앞을 비춰봤어. 그런데 화면에는 내가 아니라 택시 내부가 먼저 나왔고, 그 다음에 아주 짧게 내 얼굴이 스쳐 지나갔어. 마치 노출이 한 프레임씩 밀린 것처럼. 그 장면이 너무 이상해서 다시 찍어보려 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어두워졌어. 배터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화면 밝기 설정을 바꾼 기억도 없어. 그냥 시야가 딱 끊기는 느낌.
그 순간 기사 아저씨가 “여기서 좀만 더 가면 됩니다” 하고 말했어. 나는 물어봤어. “아저씨, 방금 가로등 지나갈 때 제 얼굴만 계속 밝아졌던 것 같지 않아요?” 그러니까 기사 아저씨가 잠깐 핸들을 만지다 말고는, 웃지도 않고 “손님은 밖을 너무 오래 보신 거 아닙니까”라고만 했어. 말투가 너무 평평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마치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하는 말처럼.
차가 조금 더 달리자 도로가 더 좁아졌고, 가로등 간격도 불규칙해졌어. 그런데도 내 얼굴이 비치는 타이밍은 계속 일정했어. 가로등이 멀리서 켜졌다 꺼지는 순간과 상관없이, 내 눈이 있는 쪽이 먼저 환해졌다가 잠깐 어두워졌거든. 나는 창밖을 보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려고 했는데, 앞유리로 비친 내 모습이 자꾸 신경을 건드렸어. 분명 내 얼굴이 맞는데, 내가 보고 있는 각도와 빛이 맞지 않는 느낌. 누군가가 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내 표정이 늦게 따라오는 느낌이 들더라.
결국 나는 기사 아저씨에게 “차 잠깐 세워주세요. 제 자리 쪽 창문에 뭔가 묻었나 봐요”라고 했어. 그러자 아저씨가 핸들을 천천히 돌리면서 “곧 도착합니다”라고만 했어. “지금 세워달라니까요”라고 한 번 더 말했는데, 아저씨는 말 없이 속도를 줄였어. 근데 멈춘 게 아니었어. 정차도, 천천히 감속도 아닌 애매한 속도였고, 차 안 공기가 갑자기 더 차가워졌어.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고, 가로등이 없는 구간에서도 내 얼굴이 어렴풋이 밝아지는 게 계속됐어.
난 그때야 문득 등 뒤를 확인했어. 뒤쪽 창문으로 내가 앉은 자리만 어둡게 비치고, 바깥은 그냥 검었는데, 유독 내 얼굴이 있는 위치에만 뭔가가 얇게 반사되는 것처럼 보였어. 정확히 뭔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빛’이라기보단 ‘표면’이 내 얼굴을 붙잡는 느낌.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순간 가로등이 아니라 택시 내부의 어떤 것—천장 쪽이나 백미러—에서 빛이 나온 것 같았어. 나는 뒤집힌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기사 아저씨도 계속 앞만 보고 있었고, 운전대 위 손도 너무 고요해서 사람 같지 않았어.
도착해서 요금을 내고 내리는데, 밖 공기가 갑자기 평소처럼 느껴졌어. 걷는 내 발걸음은 정상이고, 손에도 땀이 조금만 맺혀 있었고, 마음만 이상하게 뛰었지. 택시는 뒤로 물러나며 사라졌고, 도로엔 가로등이 다시 아무렇지 않게 켜졌다 꺼졌어. 그런데 집에 들어와서 거울을 봤는데, 오늘 내 얼굴이 이상하게 ‘밝았던 자리’처럼 멍이 든 것 같더라. 멍이라고 하기엔 너무 옅고, 빛이 지나간 자국 같았어. 그날 이후로 비슷한 간격의 가로등을 지나갈 때마다, 창밖 불빛이 내 얼굴만 먼저 찾는 기분이 들었어. 마치 내 표정이 누군가의 시선에 먼저 등록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