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원무과에서 내 이름으로 예약이 잡혀 있었다
병원 원무과에서 내 이름으로 예약이 잡혀 있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가 그날 처음 알게 된 건 “예약 확인”을 하러 들어갔다가 직원이 내 서류를 툭 내밀어 주는 순간이었다. 그 종이에는 내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고, 날짜도 오늘이었다. 문제는 내가 아무 예약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처음엔 단순 착오라고 생각했다. 내가 평소에 그 병원을 자주 가는 것도 맞고, 이름이 흔한 편도 있으니까. 그런데 직원이 컴퓨터를 두 번 확인하더니, “환자분, 접수는 이미 끝났고요. 접수 시간도 2시 10분으로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시계는 1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그 시간에 집에 있었다.
원무과 창구는 생각보다 밝았다. 형광등 소리가 귀에 달라붙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조용했고, 직원의 말투도 평소처럼 기계적이었다. 나는 “제가 예약을 한 적이 없는데요”라고 말했지만, 직원은 오히려 내 쪽을 더 확인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까지 화면에 떠 있었고, 주소도 대략 맞게 보여서 더 이상 말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이상한 게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종이 상단의 접수번호는 분명 내 것이었는데, 환자 구분칸에 아주 작은 글씨로 “초진/재진”이 아니라 “변경”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진료과는 내가 최근에 가 본 적 없는 과였다. 나는 최근에 피부 쪽으로 한 번 갔던 적밖에 없는데, 오늘은 정형외과 쪽으로 찍혀 있었다.
“혹시 누가 대신 예약해 준 걸까요?”라고 물었더니, 직원은 잠깐 멈칫했다가 “대리접수는 접수자 이름이 남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화면을 보여줬는데, 접수자 칸에는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도 내 이름과 똑같은 글자가 들어가 있었다. 같은 철자, 같은 띄어쓰기. 나는 그 순간, 내 손에 쥔 종이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바로 원무과 직원에게 요청했다. “기록을 잠깐만 확인해 주세요. 누가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요.” 직원은 “잠깐만요” 하고 키보드를 두드렸고, 화면에는 ‘예약자 확인 완료’ 같은 문구가 뜨더니 곧바로 사라졌다. 사라진 후에 남은 건 진료 차트의 초기 메모였다. 내용은 길지 않았는데, ‘증상 시작 시점: 어제 밤 11시 40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어제 밤 11시 40분이라니, 그건 누가 시간을 맞춰도 대충이라도 맞추기 힘든 순간이었다. 나는 어제 밤에 갑자기 허리가 뻐근해져서 진통제를 먹고 잠깐 누워 있었고, 시계를 보긴 봤지만 그걸 누가 알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이 그 메모를 가리키며 “환자분이 작성하신 문진 내용입니다”라고 말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작성한 적이 없었다.
“그럼 병원에서 자동으로… 뭐 시스템으로 들어간 거 아닐까요?”라고 묻자, 직원은 더 낮은 목소리로 “자동은 아니에요. 문진은 본인 확인 절차가 있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본인 확인 절차라면서, 그는 내 휴대폰으로 발송된 인증번호 같은 걸 떠올리듯 말끝을 흐렸다. 나는 “저는 인증번호 받은 문자도 없었습니다”라고 했고, 직원은 한 번 더 확인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 더 이상해진 건, 내가 기다리는 동안에도 접수 기록이 계속 ‘정상’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직원이 컴퓨터를 켤 때마다 화면의 상태가 조금씩 바뀌었지만, 이상 징후가 있다는 표시 같은 건 없었다. 마치 시스템이 “이미 당신은 알고 있고, 이미 당신은 여기 온다”는 걸 전제하고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병원 복도에 앉아 있으면서도 손끝이 차가워졌고, 문진지를 가져다 줄 때마다 내가 그걸 실제로 작성한 기억이 없는지 자꾸 되짚게 됐다.
결국 나는 원무과에서 한 장의 종이를 더 받았다. “예약 취소 처리”라고 적혀 있었지만, 취소 사유 칸에는 이상하게도 ‘환자 불일치’가 아니라 ‘환자 정보 변경 요청’이라고 적혀 있었다. 누군가가 이미 내 정보를 ‘바꾸려’ 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 뜻 같았다. 직원은 “오늘은 진료 안 받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마치 내가 진료를 받을 때까지 뭔가가 진행될 것처럼 행동이 서두르는 느낌이 있었다.
진짜 무서운 건, 그날 처리가 끝났는데도 집에 돌아와서 잠깐 휴대폰을 보니, 오늘 오전에 내 이름으로 ‘문진 완료’ 알림이 와 있었다는 걸 발견한 순간이었다. 발신번호는 병원 대표번호처럼 보였고, 내용은 짧게 “문진 제출이 접수되었습니다”로 끝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시간에 집에 있었고, 문자도 몰랐다. 그날 밤, 나는 내 이름을 여러 번 써 보면서도 이상하게 확신이 안 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 자리에 예약을 걸어두고, 나는 그걸 확인하러 갔다는 느낌. 아직도 그 병원 화면 속 ‘증상 시작 시점’이랑, 취소 사유의 문구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