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자유/잡담 괴담 추천 0

회사 문서함에서 사라진 파일이 복사본만 남아 있어

2026-07-10 00:29:13 조회 12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어느 날부터 회사 문서함이 이상하게 변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매일 정리하던 서류 칸에서 특정 파일만 “사라지고” 대신 “복사본” 같은 게 남아 있었다. 처음엔 누가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그 복사본이 너무 티가 나게 똑같다는 걸 깨달았다. 종이 질감, 인쇄 농도, 심지어 접힌 자국까지 전부 똑같았고, 이상하게도 원본이 빠진 자리엔 늘 같은 페이지가 남아 있었다.

사건은 야근 다음 날 오전부터 시작됐다. 나는 인사팀과 회계팀 사이에 있는 공용 문서함에서 프로젝트 관련 서류를 찾다가, 중간 칸에 두었던 “A-시리즈 승인 문서”가 통째로 비어 있는 걸 봤다. 근데 빈 느낌이 들긴커녕, 한 장 한 장이 깔끔하게 정렬돼 있었어. 원본이 빠진 대신 상단에 얇은 서류가 한 묶음 놓여 있었고, 제목은 같은데 날짜 표기만 하루 전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상해서 열어보니 문서 하단의 서명란이 비어 있어야 하는데, 거기엔 누가 이미 싸인한 흔적이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나는 그날 바로 팀장에게 말하지 못했다. 공용 문서함은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가 정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일단 복사본 묶음을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원본이 있어야 할 시간대를 역추적했다. 그런데 확인해보니까, 지난주에 파일을 옮겨 둔 날짜랑 “복사본 날짜”가 정확히 맞물렸다. 하루만 앞서거나 뒤섞인 게 아니라, 마치 내 작업 루틴을 기다렸다가 그 타이밍에 맞춰 만들어 둔 것처럼 보였어.

둘째 날도 똑같았다. 전날엔 승인 문서 묶음이 사라졌다가 복사본이 남았는데, 이번엔 내가 분류표 옆에 끼워 둔 “변경 이력” 쪽이 비었다. 대신 A-시리즈 문서의 일부 페이지가 들어맞게 끼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복사본은 단순히 같은 내용이 아니라 “내가 그 페이지를 확인하다가 손가락으로 눌렀던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거야. 종이가 살짝 반들반들해진 부분이 있는데, 그 모양이 정확히 손가락 자국이랑 같은 위치였다.

세 번째 날엔 내가 일부러 시험을 해봤다. 문서함에 넣을 때, 잘 안 보이게 모서리를 살짝 접어두고 표시를 해둔 거지. 만약 누가 실수로 가져가서 복사해 둔 거라면 표시가 다른 곳에 나타날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표시된 모서리는 그대로 접힌 채로 남아 있었다. 게다가 그 표식이 있는 페이지는 늘 가장 마지막에 있어야 하는데, 다음 날 확인해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 표시 페이지가 “원래 위치”가 아니라 “복사본 묶음의 앞부분”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복사본이 단순 복사가 아니라, 누군가가 “원본을 대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공용 문서함은 잠금장치가 있는데, 문서를 꺼낼 때는 열쇠가 필요하거든. 내 열쇠는 책상 서랍 안에 있어. 그런데도 매번 원본만 사라지고, 복사본만 남는다. 누군가 내 열쇠를 가져간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럼 왜 매번 동일한 페이지와 동일한 손자국을 남길까? 장난이라기엔 디테일이 너무 집요했어.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회사 보안 쪽에 조용히 물어봤다. CCTV 기록을 봐달라는 말은 부담스러우니까, 문서함 출입 기록이 남는지부터 확인했다. 돌아온 답은 “문서함은 출입기록이 따로 남지 않는다”였어. 그 순간 머리가 하얘졌지. 왜냐면, 누군가가 문서함을 열 수 있다면 굳이 흔적을 남길 필요가 없고, 반대로 내가 아무리 잠가도 그 누군가는 계속 같은 방식으로 “원본만 가져가고 복사본만 남기는” 게 가능해 보였거든. 그리고 여기서 더 찝찝했던 건, 보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애매해지는 느낌이었어.

며칠 뒤엔 결국 내가 만든 시험이 역으로 나를 흔들었다. 나는 문서함에 아무 표시도 하지 않은 채로 서류를 넣고, 복사본이 남는지 기다렸어. 그런데 다음 날, 복사본이 생겼는데 이번엔 표시가 전혀 없던 페이지가 이상하게도 “내가 아직 확인하지 않은 문장”까지 포함하고 있었어. 분명 나는 그 문장을 어제까지 보지 못했는데, 복사본에는 그 부분이 선명하게 들어가 있었고, 서류의 접힘 방향도 내가 읽을 때 자연스럽게 생길 각도와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내 하루를 먼저 읽고, 그 흐름에 맞춰 문서를 만들어둔 것처럼.

마무리로, 지금도 그 문서함을 보면 손이 먼저 굳어. 원본이 사라지는 순간이 매번 비슷한 시간대인데, 그 시간엔 늘 내가 무언가를 찾느라 바쁘거나 멍하니 서류 앞에 서 있는 상태야. 복사본이 남아 있으니 업무는 굴러가고, 그래서 더 이상 확인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문서를 “다시” 열어볼수록, 이미 본 적 없는 문장들이 자꾸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문서함 안에서 사라진 건 파일만일까, 아니면 내가 ‘다음에 볼 것’까지 같이 복사되는 건 아닐까.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