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영수증에 ‘대기’가 찍혀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영수증에 ‘대기’가 찍혀 있었다. 분명 목적지에 도착해서 기사님이 “여기서 내리세요”라고 말하신 뒤 현관 앞에서 카드 찍고 내린 건데, 바닥을 한 번만 더 확인하고 영수증을 들여다보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대기 00:12’라는 항목이 따로 있었고, 그 시간은 내가 택시에서 내리기 직전이랑 겹쳐 보였다.
처음엔 내 착각인 줄 알았다. 택시 앱이나 단말기에서 자동으로 붙는 요금 항목이겠지, 하고 넘기려 했는데 영수증이 손바닥만 한 종이라서 더 확실히 보였다. ‘기본요금/거리/시간’ 아래에 굵직하게 ‘대기’가 들어가 있었고, 그 옆에 분 단위까지 찍혀 있었다. 기사님은 내리기 전에 딱히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같은 말도 안 했다. 나는 문을 열 생각에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택시 문을 닫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며 뒤를 돌아본 기억이 있다. 그때 기사님은 창문을 살짝 내린 채로 계기판 쪽을 보고 계셨고, 마치 내가 내리는 걸 확인한 뒤에도 뭔가 계산을 더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이상할 만큼 오래 느껴졌다. 보통 택시는 내릴 때쯤 바로 출발하는데, 차는 3~4초는 더 멈춰 서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대기’가 생긴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집에 와서 영수증을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다시 꺼내 종이를 펴 봤다. 영수증 하단에 찍힌 결제 승인 문구가 조금 흐릿했는데, 이상하게도 ‘대기’ 항목만 유난히 또렷했다. 나는 결제 내역 앱에서도 확인했는데, 실제 결제 금액이 영수증에 적힌 ‘대기’ 요금만큼 추가로 잡혀 있었다. 앱에는 ‘통화/대화 없음’ 같은 문구도 뜨지 않았고, 기사님과 나는 내리는 동안 말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 나는 기사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짧게 “어제 내릴 때 ‘대기’가 찍혀 있는데, 혹시 잠깐 더 기다려 달라고 하신 건가요?”라고. 그런데 답장이 오지 않았다. 대신 상담용 자동 답변만 왔다. “기사와의 커뮤니케이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문장이 더 기분 나빴다. 기록이 없다고? 그럼 왜 영수증엔 대기가 찍혔지?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꿨다.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머릿속 장면이 너무 선명했다. 택시 안에서 나는 분명히 목적지 앞에서 내렸는데, 꿈속에서는 그 순간이 거꾸로 흘렀다. 내가 문손잡이를 잡는 장면에서 다시 창문이 올라가고, 기사님이 “여기서 내리세요”라고 말한 입 모양이 늦게 따라왔다. 눈앞에 있던 영수증은 계속 종이 두께만큼 앞으로 미끄러져 나오며, ‘대기’라는 글자를 먼저 보여줬다. 꿈에서조차 나는 그 항목을 못 보겠다고 손으로 가렸는데도, 종이는 계속 펼쳐졌다.
다음 날 나는 다시 통화 내역을 확인했다. 당연히 택시 기사님과 통화를 한 적이 없었고, 앱에서도 메시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대기’는 말 그대로 누군가가 차 안에서 시간을 더 쓰게 되었을 때 붙는 항목 같았다. 그런데 나는 내린 직후였고, 기사님은 내리기 전에 이미 목적지 도착을 알렸다. 그렇다면 내가 택시 안에 있던 시간이 따로 있었던 걸까. 내가 못 본 사이, 혹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때부터 나는 버릇처럼 택시에 탈 때 주변을 유심히 보게 됐다. 다음에 탄 택시에서도 영수증을 챙겨 봤는데, 대기 항목이 없었다. 시간과 거리만 깔끔하게 찍혔다. 그런데 어제 그 영수증만은 계속 손에 잡히는 느낌이었다. 마치 누가 내 손바닥에 미리 얹어 둔 다음, 내가 확인하기만 기다린 것처럼.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영수증에는 날짜와 시간 표기가 있는데, 내가 내린 시간보다 십여 분 앞서 시작된 걸로 보였다.
오늘도 그 생각을 하면 자꾸 목 뒤가 서늘해진다. ‘대기’라는 단어가 단순한 요금 항목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하게 내 동작 타이밍과 맞물린다. 내가 내린 순간, 기사님이 창밖을 한 번 더 봤던 그 짧은 멈춤. 그리고 내가 확인하려고 펼친 영수증이 먼저 보여 준 글자들. 그 종이를 버리지 못한 건 이상한 미신 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누군가 내 시간표를 손대고 지나간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이라는 문장이, 어쩌면 내가 내린 게 아니라 누군가를 내려놓은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