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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서 라디오가 꺼져 있는데도 목소리가 들렸다

2026-07-12 00:29:11 조회 17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시골집에 들어간 날은 생각보다 빨리 어둑해졌다. 할머니가 잠깐 쓰고 간 짐을 정리하다 보니, 거실 한켠에 놓인 라디오가 눈에 들어왔는데 전원은 분명히 꺼져 있었다. 그런데도… 정확히 그 라디오 쪽에서, 아주 낮게 누군가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드나드는 소리쯤으로 넘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소리는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면서 마치 누가 방송하듯 일정한 리듬을 가졌다.

처음엔 고장 난 스피커 잔류음인가 했다. 라디오는 바늘이 움직이지도 않았고, 다이얼도 전혀 다른 데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단어가 있었다. “지금… 문을…” 이런 식으로, 문장 끝이 자꾸 삼켜지는 느낌. 나는 웃어넘기려다 손이 먼저 움직여 라디오 뒤를 살폈다. 전선도 제대로 꽂혀 있었고, 그런데 정작 전원 스위치는 OFF 쪽에 딱 고정돼 있었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집 전체가 조용해졌다. 창문 밖 개 짖는 소리도 한순간에 멎더니, 부엌 쪽에서 물 끓이는 소리 같은 것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라디오 목소리는 더 선명해졌다. 근데 이상한 건, 소리가 “라디오에서” 나온다기보단 집 안 공기를 타고 내 귓가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전원을 켜보면 더 커질까 싶어서 손끝으로 스위치를 올렸는데, 오히려 더 조용해졌다.

스위치를 켠 순간, 목소리가 바로 끊어졌다가 5초쯤 뒤에 다시 나왔다. 그때는 확실히 라디오 스피커에서 울렸다. 그런데 방송처럼 들리진 않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소리가 섞여 있었고, 말끝이 자꾸 벽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내용이 계속 같았다. “꺼져도… 켜진다. 듣는 사람… 알지.” 같은 문장 조각이 반복되는데, 매번 단어 순서가 아주 미세하게 달랐다.

나는 장난처럼 생각하고 라디오 다이얼을 돌려 봤다. 잡음이 섞여야 정상이잖아. 근데 다이얼을 돌려도 잡음이 아니라, 목소리가 그대로 따라오면서 주파수만 옮겨 다니는 느낌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신호”를 라디오에 맞춰 조절하는 것 같았다. 한참 돌리다 지쳐서 멈추는 순간, 목소리가 갑자기 가까워졌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지금 거기… 혼자 있지?’ 그 말이, 내 뒤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거든.

나는 반사적으로 돌아봤다. 거실은 어둡고, TV 장식장 유리만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런데 라디오 바깥에는 아무도 없었다. 더 웃긴 건, 할머니가 “이 집 라디오는 전기 나가면 가끔 방송이 들릴 때가 있다”라고 툭 던진 말이 떠올랐다는 거다. 그 말을 그때는 그냥 구식 습관 같은 소리로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구체적이었다. “가끔”도 아니고 “들릴 때가”가 아니라 “들려야 할 때가” 같은 느낌이었달까.

다음으로 내가 한 건 전원을 뽑는 일이었다. 라디오 뒤쪽 콘센트를 뽑자,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멈출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목소리는 더 이상 라디오에서 나오지 않았고, 집 안 어딘가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장롱 문이 아주 작게 떨렸고, 복도 쪽에서 발소리인지 아니면 공기 마찰음인지 모를 소리가 났다. 말소리는 점점 낮아져서, 결국엔 내 생각 속에 섞이는 것처럼 들렸다. “안 껐잖아… 네가.”

나는 그제야 라디오를 단순히 “기계”로만 보지 않게 됐다. 라디오의 버튼이 꺼져 있어도, 누군가의 입이 이미 그 집에 붙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창문 틈에서 들어오는 습기 냄새도 이상하게 진해졌고, 천장 쪽 전깃줄 그림자가 유난히 길어 보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목소리는 나를 찾는 것 같다가도 끝내 찾지 않았다. 오히려 “듣는 사람”만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해가 거의 뜰 무렵, 나는 라디오 근처에 있던 낡은 종이 쪼가리를 발견했다. 할머니가 붙여둔 메모였는데 글씨가 흐리긴 해도 내용이 남아 있었다. “이 집은 라디오가 꺼져 있어도 귀가 켜져 있으면 들린다. 들으면 대답하지 말고, 손으로 다이얼을 잡지 말 것.” 읽는 순간 목 뒤가 서늘해지면서, 그동안 내가 했던 행동들이 하나씩 맞물려 떠올랐다. 다이얼을 잡았던 손, 전원을 켰던 순간, 뒤돌아봤던 대답 없는 반응들.

그날 아침, 나는 라디오를 박스째로 밖에 내놓고 전부 잠가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오가 지나도,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가끔 집안의 냉기 같은 게 훅 스쳐 지나갈 때마다, 라디오에서 나오던 그 말투가 잠깐씩 떠올랐다. “꺼져도… 켜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대답하지 않았는데도 내 이름이 아닌데도 내 쪽으로만 툭 떨어지는 느낌의 문장. 그 집은 결국, 내가 듣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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