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로 받은 커튼 봉에 누가 손톱으로 긁은 자국
중고거래로 받은 커튼 봉에 누가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어요. 처음엔 그냥 설치하다가 생긴 스크래치겠지 싶었는데, 배송 열고 보는 순간부터 뭔가 ‘의도’가 느껴져서 손이 멈칫하더라고요.
판매자 프로필도 평범했고, 사진도 몇 개 올라와 있었는데 저는 각도 때문에 스크래치가 잘 안 보였던 것 같아요. 상자는 생각보다 단단했고, 봉은 비닐로 한 번 더 감겨 있었죠. 근데 문제는 그 비닐 안쪽이 아니라, 봉 표면에 남은 얇고 하얀 줄들이었습니다. 한두 개가 아니라 길이도 비슷하고 간격도 일정했어요.
설치하려고 포장을 벗기는데, 손톱으로 긁으면 보통 이런 느낌인가 싶을 정도로 결이 살아있더라고요. 광택 있는 부분 위로 미세하게 파인 줄들이 “여기” “여기” 하고 표시된 것처럼 보였거든요. 저는 괜히 기분이 상해서 판매자한테 바로 연락했어요. ‘사용감이 아니라 긁힘이 좀 도드라진데 혹시 일부러 된 거예요?’라고요.
판매자는 답이 빨랐어요. “사진에 안 보이는 생활기스라서요. 예민하시면 교환은 어려워요.” 딱 그 정도로만 끝냈죠. 솔직히 그 말이 더 찝찝했어요. 생활기스라기엔 줄이 너무 ‘규칙적’이었고, 위치도 딱 사람들이 손으로 잡는 면이 아니라, 설치 후에는 잘 안 보이는 아래쪽을 따라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별 생각 없이 봉을 한 번 닦아봤어요. 마른 천으로 문지르면 좀 옅어지려나 싶어서요. 근데 닦을수록 줄이 더 선명해졌어요. 먼지나 때가 아니라, 표면에 긁혀서 생긴 홈 자체가 드러나는 느낌. 손톱으로 긁을 때 생기는 잔흔이랑 비슷하긴 했지만, 문제는 홈이 나 있는 방향이 한 방향으로만 쭉 이어졌다는 거예요. 누가 급하게 긁은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쓸어내린’ 것 같은.
그러고 보니 봉 양끝에 있는 고정링도 상태가 애매했어요. 사진에서는 잘 안 보였는데, 링 한쪽은 살짝 눌린 자국이 있고 그 눌림이 긁힘 줄과 같은 높이에서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그때부터 상상력이 좀 과열됐습니다. ‘누가 설치하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떼어낸 흔적일까, 아니면 그냥 장난일까’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장난 치고는 너무 집중돼 있었어요.
어차피 커튼은 달면 그 아래쪽은 완전히 가려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집 구조상 커튼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 날이 있거든요. 바람 들어오는 날이면 틈으로 봉이 살짝 보이는데, 그때마다 긁힌 줄이 시야에 걸렸어요. 가만히 보는데, 줄이 ‘숫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글자’처럼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물론 그건 제 눈이 만들어낸 착각일 수도 있는데, 자꾸만 형태가 고정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날 밤에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중고거래는 대개 집에서 쓰던 물건을 내놓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커튼 봉에서 이런 흔적이 남아있을까. 누군가 커튼을 달고 나서, 다시 떼어내면서 “여기서부터는 다시 안 하겠다”는 듯이 그 부분만 계속 긁었을 수도 있고요. 혹은 봉을 옮길 때 손톱으로 잡아당기며 생긴 걸 누가 다시 쭉 정리했을 수도 있고요. 저는 이유를 알 수 없는데, 자꾸만 ‘그 사람이 그 순간에 무언가를 참았다’는 느낌만 남았어요.
그래서 결국 판매자에게 다시 연락했어요. 이번엔 날카롭게 묻기보단, “혹시 봉을 보관할 때 이렇게 긁힌 상태였던 건지” 정도로요. 답장은 거의 읽씹처럼 오다가, 마지막에 “그런 표시가 보이긴 하나요? 원래 그럴 수 있어요. 사진 더 보내드릴까요?” 이런 식이었죠. 근데 제가 보기엔 이미 봉이 비닐에 한번 감겨 있었고, 판매자가 사진 찍을 때도 그 부분을 봤을 가능성이 컸어요. 그럼에도 ‘그럴 수 있다’는 말로 넘기는 게 더 불편했습니다.
며칠 뒤 저는 봉을 다시 떼서 세워놓고, 조명 각도를 바꿔서 유심히 봤어요. 손톱 자국은 보통 깊지 않아서 특정 각도에서만 선명해지는데, 이건 그렇지 않더라고요. 빛을 비추면 홈이 얕지만 고르게 이어져 있어서, ‘손톱이 살짝 스쳤다’기보단 ‘반복해서 긁었다’에 가까웠어요. 그리고 가장 소름은, 긁힌 구간이 커튼을 실제로 달아야 하는 위치와 완전히 겹친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래쪽이 아니라, 어딘가를 고정하려다 틀어진 흔적 같았어요.
지금도 커튼을 달아두고 생활하는데, 저는 가끔 봉을 지나치며 눈이 멈추는 걸 느껴요. 누군가의 손톱이 남긴 줄이 제 집에서 ‘처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그 물건이 그냥 물건이 아니라는 감각이 자꾸 남더라고요. 결국 봉은 제 손으로 설치됐지만, 그 긁힘은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이 급했는지, 누군가의 시간이 잘못됐는지, 그런 걸 말해주는 듯해서… 오늘도 커튼이 살짝 흔들릴 때마다 등골이 서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