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들이랑 나눈 인사
오늘 아침에 동네 마트 가는 길이 유난히 느리게 흘렀어요. 나가려는데 문 앞에서 신발 정리하다가 잠깐 멈췄거든요. 그러다 문득 “아, 이제 또 그 시간이다” 싶더라고요. 동네는 아침마다 비슷한 소리로 움직이는 것 같아요. 누가 먼저 인사하고, 누가 그 뒤를 따라가고, 그렇게 하루가 이어지는 느낌이랄까.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는데 바로 옆집 아저씨랑 마주쳤어요. 전에도 종종 보긴 했지만 매번 눈만 마주치다 오늘은 한마디가 먼저 나왔네요. 제가 “아침 잘 드셨어요?” 하고 말하니까 아저씨가 웃으면서 “응, 어제보다 좀 덜 피곤한데?” 하시는 거예요. 그 한 마디가 그렇게 반갑더라고요. 대단한 대화는 아닌데도, 말 한 번 오가면 하루가 좀 더 따뜻해지는 기분이랐어요.
마트 앞 횡단보도에서도 또요. 횡단보도 기다리는 동안 옆에 서 있던 할머니가 잠깐 저를 보시더니 “여기 참 사람 많네” 하시면서 손으로 마트 쪽을 가리키셨어요. 저는 “그러게요, 오늘은 또 장보는 날인가 봐요” 하고 받았고요. 할머니가 “그래, 장바구니 무겁지?” 하고 궁금해하셔서 “네, 오늘은 좀 살뜌게 담으려고요” 했더니 빙그레 웃으시더라고요. 그렇게 짧은 대화가 오가고 나서 신호 바뀌는 소리에 같이 건너갔어요.
안으로 들어가서는 늘 보던 얼굴들이 더 자주 보이더라구요. 빵 코너 앞에서 계산대 줄 서 있던 아주머니가 “오늘 빵이 좀 괜찮다더라” 하길래 저도 “맞아요, 어제는 솔직히 그냥저냥이었는데 오늘은 냄새가 다르네요” 했어요. 아주머니가 “그치, 냄새가 다해요” 하고 고개 끄덕이셔서 저도 괜히 기분이 좋아졌어요. 이런 얘기 되게 사소한데, 그 사소한 게 모여서 하루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채소 코너에선 비슷한 시간대에 오시는 분이 계신데, 오늘은 제가 먼저 “여기 상추 이거 괜찮아 보이네요” 하고 말 걸었어요. 그분이 “오, 그거 어제 새로 들어왔대요” 하면서 손으로 상자를 톡톡 두드리시는 거예요. 저는 “아 그래요? 그럼 오늘은 샐러드 각이네요” 하고 장바구니에 담고 나왔고, 그분도 “맛있게 드세요” 하고 배웅해 주시더라고요. 사실 상추 고르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닌데, 인사 한 번이 섞이면 더 제대로 산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계산대에서 줄이 살짝 길어졌는데도 그렇게 답답하진 않았어요. 앞에 서 계시던 분이 “요즘은 금방 품절되더라” 하시고, 제가 “그러게요, 제일 좋아하는 건 늘 먼저 없어져요” 하고 웃었거든요. 옆에서 들리던 아이가 “아빠, 저기 있어요!” 하고 말하는 소리도 있고, 계산하는 직원분이 “카드 되세요?” 하고 부드럽게 확인해주는 목소리도 들리고요. 다 합쳐져서 동네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우편함 앞에 잠깐 멈춰서 계신 분이랑 눈이 마주쳤어요. 저는 “우편이 좀 왔어요?” 하고 물어봤고, 그분은 “아, 청구서랑 동네 행사 안내지요” 하시더라고요. 그 말 듣고 저도 “행사요? 또 뭔가 하네요” 하고 같이 웃었어요. 사실 저는 정확히 뭘 하는지 몰랐는데, 그 안내지를 건네받듯이 대화가 이어지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렇게 모르는 것도 알려주고, 또 모르는 채로도 편하게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랄까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지막으로 또 인사하고 들어왔어요. 문 닫히기 직전에 아까 마주쳤던 아저씨가 “오늘도 잘 다녀와요!” 하고 손을 흔들어 주시는데, 별일 없는 날에 이런 말 한마디가 왜 이렇게 마음에 남는지 모르겠어요. 저녁에 집에서 장 본 것 정리하면서도 계속 생각났어요. 동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들이, 큰 뉴스는 아니어도 하루의 온도를 올려주는 것 같아서요.
특별히 뭔가를 해결한 날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하루였어요. 내일도 마트 가는 길에 누군가랑 눈 마주치면, 저도 먼저 한 마디 꺼내볼까 싶네요. 너무 거창하지 않게요. 그냥 “안녕하세요”로 시작해서, 오늘처럼 가볍게 끝내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