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접수증이 바뀌어 출력돼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접수하러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이상했어요. 평소 같으면 접수창구에서 이름 확인하고 번호표 주는데, 그날은 직원이 서류를 쓱 넘기면서 “여기요, 성함만 한 번 더 확인하시죠” 하고는 바로 출력기에 뭔가를 넣더라고요. 저는 ‘아, 전산이 느리나보다’ 싶어서 기다렸고요. 그런데 출력된 종이를 받는 순간, 제 눈이 먼저 멈췄어요. 제 성함이 적힌 줄이 아니라, 제 것이 아닌 이름과 접수번호가 보였거든요.
처음엔 제가 잘못 봤나 싶었어요. 종이를 들어 가까이 확인하니까 접수증 상단에 다른 사람 이름이 딱 찍혀 있었고, 진료과도 제가 신청한 과랑 달랐어요. 저는 순간 말이 꼬였는데, 직원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네, 출력이 그렇게 나가면… 어차피 전산으로 처리되니까요”라고 했어요. 저는 “근데 이게 제 접수증이 아니라는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더니, 그제야 직원 표정이 조금 굳더라고요.
직원은 “아, 잠깐만요. 다시 찍어드릴게요” 하면서 출력기를 다시 두드렸어요. 그런데 여기서 더 찜찜한 건, 제가 다시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진료실 쪽으로 호출이 한 번 울렸다는 거예요. 호출음이 들린 뒤 잠깐 정적이 흐르고, 그 종이를 받은 사람(어딘가에서 기다리던 분)이 “아뇨, 저는 제 번호가 아닌데요?”라며 고개를 들었어요. 그때 제 손에 들린 종이는 분명 제 것이 아닌데, 그 사람도 제 것과 다른데도, 둘 다 서로 엉킨 것처럼 보였어요.
저는 가만히 있으면 더 꼬일 것 같아서 접수창구 앞에 섰고, “혹시 제 정보로 다시 출력 가능할까요? 제 생년월일은 이거고, 진료과는 여기입니다”라고 말했어요. 직원은 이번엔 좀 성급하게 화면을 몇 번 넘기더니 “네, 바로요”라고 하면서 새 접수증을 뽑았죠. 그런데 그 종이도 이상했어요. 이번엔 제 이름은 맞는데, 접수 시간과 기록이 조금 달랐어요. 제가 들어온 시간보다 앞서 접수된 것처럼 표기돼 있었고요. 전산이 느리다기엔 너무 티가 났어요.
그때 직원이 낮은 목소리로 “이따 확인하시면 돼요. 오늘 시스템이랑 프린터가 좀… 원래 그렇습니다”라고 말했어요. ‘원래 그렇다’는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더 소름이 돋았어요. 마치 누군가의 실수를 매일 겪는 사람이, 익숙한 방식으로 덮는 말처럼 들렸거든요. 저는 그 말을 듣고도 계속 따지기보단, 어쨌든 제 진료는 받아야 하니까 접수증을 들고 진료실 앞에 섰어요.
진료실 문 앞에서 제 차례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 호출이 제 접수번호로 나오지 않았어요. 저는 손에 든 종이의 번호를 다시 보고, 주변 사람들 얼굴을 훑어봤어요. 같은 번호를 들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더 불안해졌고, 결국 안내 데스크 쪽으로 다시 가서 “제가 이 번호인데요, 방금 호출은 다른 번호로 들렸어요”라고 물었어요. 직원은 그제야 저를 제대로 보고는 “아, 그건 착오가 있었네요”라고 하면서, 이번엔 거의 자동으로 태도를 바꿔버렸죠.
잠깐 뒤, 진료실 안쪽에서 누가 나오더니 “아까 접수증이 바뀐 것 같다고… 말씀하셨죠?”라고 하더라고요. 그 목소리도 이상했어요. 친절한 안내가 아니라, 마치 이미 내부에서 대화가 끝난 사람처럼요. 저는 “네, 제 접수증이 제 것이 아닌 이름으로 출력됐고요. 시간도 맞지 않았고요”라고 말했는데,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더 캐묻진 않았어요. 대신 “지금은 정정 들어가고 있어요. 그냥 들어가시면 됩니다”라고만 하고 뒤로 돌아섰습니다.
진료 받는 동안에도 이상한 느낌이 계속 남았어요. 질문지가 제 상황이랑 안 맞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고, 의사 선생님이 “기록이 조금 다르게 들어왔네요”라고 말했거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제가 본 것들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접수증이 바뀌어 출력된 게 단순 실수였다면, 기록까지 이렇게 얽힐 일이 없잖아요. 전산이든 프린터든, 결국 같은 시스템에서 뭔가가 반복되는 것 같았습니다.
진료를 끝내고 나서야 저는 접수 창구에서 제 접수 내역을 다시 확인했어요. 종이에 적힌 내용은 정정돼 있었지만, 수정 흔적이 남아 있더라고요. 누군가가 ‘접수 변경’ 같은 항목을 한 번 더 건드린 기록이요. 문제는 그 수정이 제 이름으로 끝난 게 아니라, 다른 사람 정보와 함께 움직인 흔적이 보였다는 거예요. 마치 두 사람의 종이가 서로의 자리로 바뀌었다가, 다시 억지로 되돌려진 것처럼요. 그때 저는 문득 생각했어요. 혹시 오늘 접수실에서 “원래 그렇다”는 말을 들은 게, 단순한 안내 실수가 아니라는 걸요.
집에 돌아와서도 접수증 한 장 때문에 마음이 계속 찝찝했어요. 제가 우연히 끼어든 게 아니라, 이미 누군가의 하루가 그렇게 한 번씩 미끄러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거든요. 병원은 믿고 가는 곳인데, 정작 종이 한 장이 바뀌어 출력되는 순간부터는 ‘내가 내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흔들리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저는 작은 종이 하나도 버리지 않고, 필요하면 끝까지 확인하게 됐어요. 그리고 가끔 프린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때면, 저 접수증이 제 이름으로 잠깐 바뀌었다가,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넘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상하게도 오래 따라다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