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택배 포장에 ‘열면 안 됨’ 테이프가 붙어 있었어
새벽에 중고로 산 물건이 도착했는데, 포장 상태가 좀 이상했어. 택배 상자가 테이프를 잔뜩 두른 건 흔한데, 그날은 포장 테이프에 딱 하나만 크게 적혀 있었거든. ‘열면 안 됨’이라고. 내가 그 문구를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누가 실수로 붙여둔 줄 알았는데, 막상 박스를 손에 드는 순간부터 마음이 자꾸 이상하게 조여 왔어.
구매한 건 오래 쓰던 게 아니라 한 번만 써봤다는 컨디션의 전자기기였고, 판매자도 사진을 깔끔하게 올려놨어. 그래서 택배를 받는 순간엔 “오케이, 잘 왔네” 싶었지. 근데 상자를 돌려보는 동안 테이프가 전부 같은 색이 아니고, 덧붙인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어. 가장 위에는 투명 테이프 위로 검은 글씨가 박혀 있었는데, 손으로 긁어보면 잉크가 아직 마르지 않은 것처럼 살짝 끈적거리는 느낌이 들었어.
‘열면 안 됨’이란 문구는 그냥 장난처럼 보이진 않았어. 글자가 너무 똑바르고, 테이프 폭을 딱 채운 채로 한 줄로 이어져 있었거든. 포장 테이프는 대체로 대충 붙이잖아? 근데 이건 누가 일부러 “여기만큼은 건드리지 마”라고 강조하는 방식이었어. 나는 열어보기 전에 혹시 내용물이 파손될까 봐 더 조심스레 칼날을 대려 했는데, 손이 자꾸 멈칫했어.
그래서 일단 상태부터 확인했지. 박스를 눌러보면 뭔가가 딱딱하게 고정돼 있거나, 반대로 내부가 비어 있으면 탁 소리가 나잖아. 그런데 내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은 “무언가가 들어는 있는데, 그게 제자리에 고정된 건 아닌 느낌”이었어. 그래도 뭐 어쨌든 구매한 물건이니까 포장을 뜯어야 하는데, ‘열면 안 됨’ 문구가 계속 눈에 걸려서 이상하게 자꾸 다시 테이프를 보게 되더라.
나는 평소처럼 천천히 뜯지 않고, 테이프를 최대한 손으로 떼어내서 확인해보려 했어. 그런데 한쪽 모서리에서 테이프가 잘 안 떨어지더라. 억지로 떼면 상자 찢어질까 봐 더 천천히 하다가, 그때 테이프 아래에 얇은 종이가 한 겹 더 끼어 있는 게 보였어. 투명 테이프가 그 종이를 눌러놓은 형태였고, 종이에는 비슷한 글씨가 작은 크기로 한 줄 더 있었는데 내가 다 읽기도 전에 손이 멈췄어. 그 문구가 “증거 보관용” 같은 느낌이었거든.
솔직히 그 순간부터 머리가 하얘지더라. 판매자가 혹시 분쟁 대비로 뭔가 남겨둔 걸까 생각도 했지만, “열지 말라”는 경고와 “증거 보관용” 같은 표현이 동시에 붙어 있다는 게 너무 조합이 안 맞았어. 택배는 원래 송장 붙고 끝인 줄 알았는데, 누가 일부러 중간 과정에서 뭔가를 더 덧댄 느낌이었어. 결국 난 상자를 그냥 뜯지 못하고, 바로 판매자에게 연락했어. 그런데 판매자는 답이 늦었고, 그 사이에 나는 계속 박스만 쳐다봤지.
시간이 꽤 지나서 판매자에게서 “그 테이프는 원래 붙어 있는 거예요. 원래 구성품이라 확인 부탁드려요” 같은 답이 왔어. 원래 구성품이라니, 내가 산 건 중고 전자기기였지, 테이프까지 구성품일 이유가 없잖아. 게다가 원래 붙어 있던 거면 애초에 사진에도 보였어야 했는데, 사진에는 그런 문구가 전혀 없었거든. 나는 그 말을 믿기보단, “어쩌면 다른 사람이 중간에 한 번 봤고, 그걸 막으려고 다시 붙였나?” 같은 쪽으로 상상 범위가 늘어났어.
결국 나는 그냥 기록을 남기기로 했어. 택배 도착 직후 상태 사진을 찍고, 테이프 위치랑 글자도 확대해서 찍었지. 그리고 상자를 뜯되, 내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순간부터는 최대한 흔적을 안 남기려고 조심조심 열었어. 다행히 물건은 있었고, 포장재도 꽤 잘 들어 있었어. 근데 한 가지가 더 찜찜했어. 비닐 포장 안쪽에 작은 종이 조각이 끼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내가 구매한 날짜가 아니라 다른 날짜가 적혀 있더라. 그 날짜가 판매자가 올린 게시글 날짜랑도 달랐어.
나는 그 종이를 다시 정확히 사진으로 남기고, 바로 고객센터에 문의했어. “상자에 열면 안 됨 테이프가 붙어 있고, 내부에 다른 날짜가 적힌 종이 조각이 있었다”고. 상담사가 “혹시 판매자가 재포장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하긴 했는데, 솔직히 그 말이 마음에 걸리더라. 재포장이라면 보통 투명 테이프나 간단한 라벨이지, 저렇게 굳이 ‘열면 안 됨’ 같은 경고 문구를 크게 붙일 이유가 없잖아.
며칠 뒤에 판매자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는데, 그때는 말을 돌리듯 “그 테이프는 제가 붙인 게 아니라 누가 잘못 붙였을 거예요”라고 하더라. 그 한마디가 더 소름이었어. 누가 잘못 붙였다면, 왜 하필 저 문구를 정성껏 테이프에 새기듯 붙였을까. 그리고 “증거 보관용” 같은 느낌의 종이는 또 왜 들어 있었을까. 지금도 가끔 택배 상자 모서리에서 손이 멈칫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문구가 경고였는지, 누군가의 습관이었는지 헷갈려. 괜히 뜯지 말라고 붙인 테이프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남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