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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기사님이 갑자기 목적지를 취소하고 멈춰 섰다

2026-07-14 20:29:15 조회 14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택시에서 기사님이 갑자기 목적지를 취소하고 멈춰 섰다. 정확히는 내비게이션 목적지 화면이 깜빡이더니, 기사님이 핸들을 한 번에 똑바로 세우고 브레이크를 길게 밟는 느낌으로 차가 정지했어. 기사님 얼굴이 평소처럼 웃는 얼굴이 아니었고, 손은 핸들 위에 있는데도 뭔가 ‘지금은 운전이 아니라 확인해야 한다’는 표정이었어.

처음엔 내가 길을 잘못 찍었나 싶어서 “여기서…?” 하고 물으려는 순간, 기사님이 말없이 화면을 껐다 켰다 반복했어. 내비는 꺼져도 계속 소리가 날 때가 있잖아. 근데 그날은 소리도, 지도도 완전히 멈춘 상태 같았어. 기사님이 “아까 목적지 말씀하신 거 맞죠?” 하길래, 나는 당연히 맞다고 했고 지갑에서 카드 꺼내면서 빨리 이동하자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지.

그런데 기사님이 갑자기 뒤를 보더라. 나를 본 게 아니라, 내 등 뒤 어딘가를 보는 느낌. 차 안은 택시 특유의 향이랑 땀 냄새가 섞여 있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차가 차가워지는 것처럼 공기가 달라졌어.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서 팔을 움켜쥐고 있었고, 기사님은 “잠깐만요” 한 마디만 하고 조수석 쪽에서 뭔가를 찾는 척했어.

조수석 선반을 열었다 닫는데, 거기엔 원래 종이영수증이나 작은 방향제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기사님 손이 닿는 순간 바스락 소리 대신 ‘툭’ 하는 소리가 났어. 그리고 잠깐 뒤에, 아주 낮은 소리로 휴대폰 진동 같은 게 들렸는데 내 귀엔 전혀 진동이 안 느껴졌어.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내 쪽에서 났다고 느꼈거든. 나는 “기사님, 이상하신데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기사님은 대답 대신 라디오 다이얼을 돌렸어.

라디오에서는 잡음만 나야 하잖아. 근데 그날 라디오는 잡음 사이사이에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 같은 게 섞였어. ‘카아, 카아’ 하며 반복되는 호흡 소리였고, 마치 누가 마이크를 입에 대고 천천히 따라 하는 것 같았어. 기사님이 다이얼을 멈추는 순간, 잡음이 확 꺼지면서 조용해졌고, 대신 계기판 쪽에서 작은 경고음이 울렸어. 근데 화면엔 아무 글자도 안 떴어. 그냥 ‘점’만 깜빡이듯이.

나는 그제야 기사님 손을 봤는데, 운전대 위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어. 택시기사분들은 웬만한 일에도 표정 안 바뀌는 경우가 많잖아. 그런데 그날은 기사님이 뭔가를 “직접 보고” 있는 사람처럼 굳어 있었어. 잠깐 후 기사님이 내비 화면을 다시 켰고, 목적지 항목이 아예 지워져 있었어. 방금 전까지는 분명히 찍혀 있었는데 말이야. 화면엔 대신 ‘취소됨’이라는 짧은 글자만 떠 있고, 그 아래는 새 경로가 없었어.

“기사님, 왜 목적지를 취소하셨어요?” 내가 묻자 기사님이 아주 조용히 “아니요. 제가 한 게 아니에요”라고 했어. 근데 그 말투가 항의하는 말투가 아니라, 확인하는 말투였어. “손님, 지금 차 안에서 뒤로 고개 돌리면 안 돼요”라고 덧붙이더라. 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어. 장난 같기도 하고, 택시 기사님들이 손님 놀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근데 기사님 눈이 너무 진지해서, 괜히 고개 돌렸다가 상황이 커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

그때부터 차 안이 이상했어. 원래 택시 정차하면 엔진 소리랑 환기 바람 같은 게 일정하게 들리는데, 그 소리들이 갑자기 ‘한 박자씩 늦게’ 따라오는 느낌이었어. 마치 세상이 음성 지연처럼 늘어지는 것 같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창문 쪽을 슬쩍 봤는데, 가로등 불빛이 차 유리에 비치면서도 유리 안쪽에서 한 번 더 굴절된 것처럼 보였어. 게다가 내비가 꺼진 채로 있는데도, 화면 가장자리에서 아주 얇게 빛이 새는 게 보였고, 그 빛이 천천히 어딘가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움직였어.

기사님은 “여기서 잠깐 멈추는 게 맞아요. 그 사람한테는 이동이 필요가 없거든”이라고 말했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물으려 했는데, 바로 그때 뒤좌석 쪽에서 ‘딸깍’ 소리가 났어. 안전벨트 버클이 잠기는 소리랑 비슷했는데, 내가 보기엔 내 뒤좌석엔 아무도 없어. 나는 숨을 들이마시다 말고, 기사님은 손을 들고 “안 봐도 돼요. 지금은 그냥 호흡만 맞춰요”라고 했어. 이상하게도 그 말이 듣기 전엔 괜찮을 것 같았는데, 듣고 나니까 더 숨이 막혔어.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공기 속에 누가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거든.

그러고 얼마 안 돼서, 기사님이 갑자기 시동을 다시 걸고 차를 출발시켰어. 목적지 취소됐던 내비는 여전히 빈 화면이었는데도 속도는 자연스럽게 올라갔고, 차선도 내가 탄 방향과 정확히 맞아 들어갔어. 기사님은 운전은 하면서도 시선을 전방에 고정하지 못하고, 계속 사이드미러를 아주 짧게 확인했어. 어느 정도 달리다가 기사님이 “방금 목적지 다시 찍을게요. 이번엔… 안 꼬이게”라고 말하더라. 그 순간, 내 휴대폰이 울렸는데 발신자 표시가 없었어. 진동만 길게 오고, 화면엔 아무 것도 안 떠 있었어.

다음 정류장처럼 보이는 곳에서 나는 내릴 준비를 했고, 기사님은 미터기를 찍지도 않았는데 요금 계산이 자동으로 끝났다고 하면서 단말기를 보여줬어. 금액이 딱 내가 현금으로 갖고 있던 만큼이더라. 그래서 더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 내비에는 목적지가 다시 생겼는데, 그 목적지 이름이 내가 말한 곳이랑 달랐어. 같은 동네인데도 거리만 비슷하게 다른 곳. 나는 말끝을 흐리며 “여긴 아닌데요”라고 했고, 기사님은 대답 대신 잠깐 웃었어. 그 웃음이 ‘다행이다’ 같은 웃음인지, ‘끝났다’는 웃음인지 구분이 안 갔어.

차에서 완전히 내린 뒤에야 뒤를 돌아봤는데, 택시는 내 눈앞에서 이미 다음 신호로 넘어가고 있었어. 잠깐 멈췄던 정지등도, 브레이크 소리도, 내가 고개 돌리지 말라는 말도 전부 뒤로 밀려난 것처럼 흐릿해졌고, 이상하게도 내 귀엔 방금 전 그 호흡 소리가 아직 남아 있었어.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내비 기록을 확인했는데, ‘이동 중’ 기록이 아니라 ‘목적지 취소’ 기록만 남아 있더라. 그래서 지금도 가끔 택시를 타면, 목적지를 누르기 전에 먼저 누가 누른 건 아닌지부터 생각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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