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 차단기 소리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들렸어
지하주차장 차단기 소리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들렸어. 그날은 퇴근길에 비가 와서 다들 지하로 빨리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꽉 눌러대던 때였는데, 나는 유독 그 소리를 먼저 알아챘다. “딸깍… 딸깍…” 하고 내려오는 차단기가, 마치 누가 내 이름을 정확히 따라 치는 것 같았거든. 처음엔 장난처럼 들렸는데, 계단에서 내려와 주차장 라인에 닿는 순간 그 이름이 더 또렷해졌다.
우리 아파트 지하 1층 차단기는 가끔 삑 하는 소리가 나. 오래된 모델이라서 차가 지나갈 때마다 전기 잡음 같은 게 끼어. 근데 그날의 소리는 달랐어. 차단기가 올라오고 내려오는 “딸깍” 사이에, 아주 짧게 끼어 있는 소리가 내 이름의 리듬이랑 비슷하게 맞아떨어졌어. 내가 “설마” 하고 고개를 돌렸는데도, 아무도 내 쪽을 보지 않았다. 관리실 CCTV도 그 방향을 비추긴 하는데, 불빛이 깜빡거려서 사람 표정은 잘 안 보이는 구역이 있다.
나는 차를 타고 나가야 했어. 그런데 시동을 걸기 전에, 차단기 아래로 바퀴가 지나는 바닥 트랙을 한 번 더 확인했지. 바닥에 젖은 물이 얇게 퍼져 있었고, 내 발소리만 둔탁하게 울렸다. 그때 또 소리가 났다. “딸깍… (여기서) 내 이름… 딸깍.” 너무 말이 되는 구간이라서,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괜히 이어폰을 빼서 주변 소리를 더 들었는데, 차단기 기계음 외엔 다른 발소리나 기침 같은 것도 없었어.
그날은 퇴근이 늦어서 관리실에 연락할까 고민도 했어. 근데 이런 건 신고해봤자 “노이즈겠죠”로 끝나는 경우가 많잖아. 대신 나는 차를 세우고, 차단기 쪽을 바라본 채로 휴대폰을 켰다. 녹음 앱을 틀어놓고 잠깐 기다렸는데, 녹음은 이상하게도 “딸깍” 정도만 잡히더라. 내 귀로 들린 그 이름 같은 부분은 거의 안 남아. 그래서 더 이상했어. 내 머릿속에서만 들린 걸까, 아니면 뭔가가 특정 거리에서만 사람 목소리처럼 들리게 만드는 걸까.
차단기는 한 번 더 내려왔고, 그때 나는 확신처럼 느꼈어.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끝”이, 딸깍 소리의 여운에 실려서 들리는 느낌. 이상하게도 내가 고개를 돌리는 방향이랑 소리의 결이 딱 맞았다. 마치 누가 내 귀 옆에서 속삭이듯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발음만 조정된 것 같았거든. 그 순간 내 뒤에서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났어. 나는 돌아봤는데, 주차장 구역 어디에도 사람이 없었다. 대신 비닐봉지들이 바람에 살짝 흔들리고 있었어.
나는 결국 차를 빼려고 했고, 차단기가 완전히 올라가길 기다렸다. 그런데 차단기가 올라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어. 보통은 3~4초면 충분한데, 그날은 한참을 끌었고 중간에 “삐익” 하는 전기음이 섞여 들어갔다. 그 전기음이 또 내 이름의 모음처럼 길게 이어졌다. 나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당황했어. 누가 내 뒤에서 말을 걸어도 이렇게 심장이 뛰진 않을 텐데, 기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걸로 느껴지니까 더 무서웠지.
차가 나가고 나서야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어. 밖으로 올라와서도 귀에 그 리듬이 계속 맴돌더라. 다음날 아침에 카운터에 계신 관리실 직원한테 가볍게 물어봤다. “어제 지하 차단기 삑 소리가 이상했어요. 기계가 고장 난 거 같았는데요.” 직원은 별말 없다는 표정으로 “아, 그거요? 비 올 때 가끔 그러죠. 센서가 먹통처럼 튀는 날이 있어요.”라고만 했다. 그리고 “특정 차만 그 구역에서 내려갈 때 소리가 심하더라고요”라며, 내 차가 그 구역에 있었던 걸 알고 있는 듯한 말투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내려갈 때마다 차단기 소리를 꼭 확인하게 됐어. 신기하게도 어느 날은 내 이름처럼 들리지 않고, 또 어느 날은 또렷하게 들렸다. 차를 세우는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도 느낌이 달랐다. 그래서 나는 점점 이상한 가설을 만들기 시작했어. 혹시 차단기 센서가 특정 각도에서 소리를 반사시키거나, 오래된 녹음이나 경고음이 겹쳐서 어떤 사람 이름으로 들리게 만드는 게 아닐까, 같은 생각. 근데 그 가설이 맞다면 왜 하필 내 이름이었을까.
며칠 뒤, 나는 우연히 관리실 안내문을 봤어. 주차장 시설 점검 일정이 적혀 있었는데, 날짜가 내 생일이랑 겹쳤더라. 내용은 “차단기 모터 및 경고음 계통 점검” 정도였고, 특이사항에 “오작동으로 인한 민원 발생”이라고만 짧게 적혀 있었다. 누군가도 비슷하게 들었다는 뜻 같아서, 그때부터는 더 소름이 돋았어. 차단기 소리는 늘 똑같이 딸깍거리는데, 그 딸깍이 내 이름을 닮아가며 툭툭 끼어드는 순간이 있잖아. 그건 우연일 수도 있지만, 지금도 지하로 내려갈 때마다 가끔은 ‘이번엔 정말 누가 먼저 불렀나’ 싶어져서 차단기 앞에서 한 번 숨을 멈추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