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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들고 있는데 포장이 또 뜯겨 있었다

2026-07-15 12:29:12 조회 14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들고 있는데, 포장이 또 뜯겨 있었다. 약봉투 안에 들어있는 약들은 원래 약국에서 포장지로 한 번씩 더 감싸서 주는데, 그날은 유독 한 쪽이 들뜬 상태로 오더라. 처음엔 내가 급하게 받느라 놓쳤나 했는데, 손가락으로 문질러 보자마자 “이미 열렸던 흔적”이 만져졌다.

사건은 평범하게 시작됐어. 감기 때문에 내과 들렀고, 의사 선생님이 약 처방해준 걸 접수하고 약국에서 받았다. 집에 오기까지는 길지 않았고, 가방 안에서 약봉투는 다른 종이랑 같이 들어 있었지. 그래서 도착했을 때 포장 상태가 이상한지 늦게 눈치챘다. 봉투를 열자마자 눈에 띈 건, 약 한 칸이 너무 가볍다는 느낌이었어. 분명 같은 처방인데, 무게감이 덜했다.

더 신기했던 건 겉 포장 자체는 멀쩡해 보였다는 거야. 약봉투 겉면은 그대로였고, 찢어진 종이 테이프도 없었다. 그런데 약이 들어있는 개별 포장—알약이 들어있는 작은 비닐/지류 포장—그게 어딘가 미세하게 벌어져 있었다. 마치 누가 급하게 확인하고 다시 넣은 것처럼, 가장자리 쪽이 살짝 들려 있었고, 뜯긴 자리에는 손으로 만진 흔적처럼 매끈함이 달랐다.

처음엔 내가 실수했나 싶어서, 약국에서 받은 종이 설명서랑 약 봉지 바코드도 같이 확인했어. 처방전 번호도 맞고, 약 이름도 적힌 것 그대로였다. 그런데 “뜯김”은 분명히 거기 있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집에서 그걸 뜯어볼 이유는 없었다. 약을 아직 먹기 전이라면, 내가 굳이 포장을 뜯어야 할 일이 없잖아. 그래서 마음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날은 밤이었는데도 잠이 잘 안 왔다. 약을 다시 꺼내 보면서 계속 의심이 꼬리를 물었어. 혹시 유통 과정에서 누군가가 잘못 열어본 걸까? 아니면 약국에서 실수로 한 번 확인하고 다시 봉한 걸까? 하지만 그게 맞다면 왜 내 포장만 이렇게 티가 났을까. 나는 결국 약을 손에 들고 냄새를 맡아봤다. 약 자체는 원래 냄새가 거의 없는데, 이상하게도 포장 속 공기가 조금 더 “마른 공기”처럼 느껴졌어. 이건 말로 설명이 어렵지만, 사람 손이 한 번 닿았을 때의 감각이 있더라고.

다음 날 아침에 바로 약국에 연락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손이 느려졌다. 괜히 내가 예민한 사람 되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받아올 때부터 그랬는데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건 아닐까. 그런데 동시에, 약을 그냥 먹어버리면 그 불안이 계속 따라다닐 것 같았어. 그래서 나는 약국에 들고 가서 “포장이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라고 말할 준비를 했다. 설명을 하려는데도 목이 마르더라. 남 탓하는 말이 아니라, “혹시 이런 일이 생긴 적 있나요” 같은 톤으로 말하고 싶었어.

약국에 가서 포장을 보여주자 직원이 잠깐 멈칫하더니, 포장 방식이 원래 그 제품은 그렇게 열리기 쉽다고 말했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는데, 내가 본 건 ‘쉽게 열리는 구조’가 아니라 ‘이미 열렸다가 다시 닫힌’ 느낌이었거든. 직원은 바로 확인하겠다고 하면서 비슷한 약을 잠깐 꺼내 보더니, “이건 보통 이렇게 안 벌어져요”라고 중얼거렸어. 그 순간부터 내 속이 더 차가워졌다. 누가 한 번이라도 만지면 그런 식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걸, 직원도 인정한 느낌이랐거든.

여기까지는 그래도 “실수”로 정리될 수 있어.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야. 약국 직원이 처방 내역을 다시 확인하면서 내게 “혹시 어제 봉투가 다른 것들이랑 같이 들어있었나요?”라고 물었거든. 나는 가방에 종이들이랑 같이 넣었다고 대답했어. 그 말이 끝나자, 직원 표정이 아주 잠깐 굳었어. 마치 누군가가 ‘열고 다시 넣는 방식’으로 확인했을 때 생길 수 있는 패턴을 떠올린 것 같았어. 직원은 “아무튼 오늘은 새 포장으로 다시 드릴게요”라고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 새 포장에서 또 미세한 들뜸 같은 게 있는지 계속 보게 됐다.

그때부터 이상하게도 병원이나 약국보다, 내 집 안이 더 찝찝해졌어. 내가 포장을 뜯어본 적이 없는데도, 누군가가 내 물건을 만졌다는 가능성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거든. 물론 확률로 따지면, 약국의 포장 과정이나 유통 중 변형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또”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붙어버렸어. 내가 전에 들은 썰이랑, 한 번쯤 겪었던 애매한 경험들이 갑자기 연결돼서,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던 것들이 다 한 줄로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어.

마지막으로 그날 약은 새 포장으로 받아왔고, 나는 예정대로 복용했어. 그래도 찝찝함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어. 약을 다 먹고 한참 뒤에도, 가끔 약봉투를 꺼내는 손끝이 먼저 긴장하더라. 포장이 뜯겨 있었다는 사실보다, 그걸 “언제 누가” 열었는지 모른 채로 넘어가야 했다는 게 더 오래 남는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세상엔 내 물건을 건드릴 만큼 급한 손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까—그런 생각이 들어서, 한동안 약봉투만 봐도 식은땀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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