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근무 교대가 끝난 뒤 내 수첩만 한 장 더 있었다
군대에서 근무 교대가 끝난 뒤 내 수첩만 한 장 더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근무자 교대 방송이 울리고, 내 차례는 “남은 인수인계만 정리하고 들어가”로 끝났는데, 이상하게도 복무실 책상 위에 내 수첩이 한 권 더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수첩은 하나였고, 대신 그 안에 종이가 한 장 더 끼워져 있었다.
나는 초소 근처에서 근무 교대 후 정리할 때 습관처럼 수첩을 펼쳐서 체크하곤 했다. 전날부터 기록해 둔 건 교대 시간, 인원 출입, 이상 유무 정도였는데, 그날은 유난히 종이가 얇게 소리도 없이 눌려 있었다. 손끝으로 넘겨보면 될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그 “한 장 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날짜도 안 맞고, 필기도 내가 쓰는 글씨체랑 비슷한데 미세하게 달랐다.
수첩 첫 장에는 내 메모가 있었고, 중간중간 줄을 맞춘 흔적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의 추가 용지는 가운데쯤, 내가 절대 그 위치에 끼울 리 없는 각도로 접혀 있었다. 펼치자마자 종이 냄새가 났는데, 비슷한 냄새지만 전날에 맡았던 내 양면지랑 결이 달랐다. 종이는 더 하얗고, 접힌 자국이 너무 선명했다. 마치 누가 방금 넣었다가 간 것처럼.
나는 그 자리에서 종이를 빼서 내용을 봤다. 글씨는 “교대 끝나기 전, 다시 확인하라”는 식으로 짧게 적혀 있었고, 아래에 체크박스 같은 게 하나 그려져 있었다. 체크박스 옆에는 “너는 봐야 한다”라고 써 있었는데, 욕설 같은 건 없었고 오히려 이상하게 차분한 문장이라 더 찝찝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냥 장난 같았는데, 군대에서는 장난이 있어도 보통 누가 봐도 티가 나거든. 이건 티가 안 났다.
그래도 설마 싶어서 나는 인수인계 담당 조교나 당직 간부가 사용하는 기록함부터 떠올렸다. 내가 쓰는 수첩은 개인 소지품이고, 교대 때는 가져가서 책상 위에 올려두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그 수첩이 “반드시” 책상 위에 있어야 한다는 규칙 같은 게 없는데도, 내 수첩만 유난히 정확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는 거다. 내가 교대 후 책상을 정리했을 때, 분명히 종이는 하나뿐이었는데. 그럼 언제, 누가 넣었을까.
다음 날 아침, 나는 급히 전날 기록을 다시 맞춰보려 했다. CCTV 위치가 애매해서 교대 시간엔 사각이 생기고, 그 틈을 누가 노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확인하고 넘어가야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전날 수첩에 적힌 시간대 중 하나가 살짝 수정돼 있었다. 글씨가 덧칠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 문장이 존재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내가 “수정한 기억”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 추가 용지에 적힌 문장이 단순히 경고가 아니라, 이미 내가 지나간 걸 “다음에 확인할 차례”로 바꿔놓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이상하게도 내 귀가 먼저 반응했다. 훈련장 뒤편 창고 쪽에서 손바닥을 문지르는 듯한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는데, 보통은 바람이나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로 넘겼다. 하지만 그날은 소리가 “한 장 넘기는” 간격과 비슷했다. 누가 종이를 넘기면 종이의 각도가 바뀌면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나는데, 그 간격이 반복됐다. 나는 일부러 무시했지만, 무시할수록 머릿속에만 자꾸 “수첩이 더 있다”는 사실이 걸렸다.
점호 때는 다들 바쁘고, 내가 혼자 과하게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 별말은 안 했다. 대신 퇴근 시간에 다시 수첩을 펼쳐 확인했다. 추가 용지는 그대로 있었고, 이번엔 그 아래쪽에 아주 얇은 글씨가 하나 더 보였다. 처음엔 안 보였는데, 빛을 비스듬히 비추면 보이는 잉크였다. 내용은 “교대가 끝나도 문은 닫히지 않는다. 문이 닫히면 네가 들어간다” 같은 말이었고, 문장 끝에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 날짜는 내 다음 근무일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확신이 생겼다. 누가 내 수첩을 건드렸다는 걸 넘어서, 누군가 “내가 볼 타이밍”을 알고 있었다는 느낌. 그리고 더 소름인 건, 내가 다음 근무 때는 뭘 어떻게 해도 그 종이를 빼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결국 나는 병장 생활도 아니고, 고참도 아닌데 혼자 멀쩡히 버티고 다녔고, 근무 교대 날에는 수첩을 들고 이동하는 내내 손에서 놓지 않았다. 손에서 놓는 순간에야 진짜로 “한 장이 더 생기는” 것처럼.
그런데도 마지막 순간에 사건이 끝나지 않았다. 교대 방송이 끝나자마자 나는 교대실 문을 나서려 했고, 문을 잡는 손등에 종이가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보니 내 수첩은 하나뿐이었는데, 이번엔 표지 안쪽에 작은 종이 조각이 붙어 있었다. 그 조각에는 한 문장만 적혀 있었다. “너는 이미 봤다.” 그 말이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가 바로 식었다. 내가 본 건 경고가 아니라, 누군가가 정해둔 순서의 다음 칸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날 이후로 나는 교대가 끝났다는 말을 믿을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