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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내 보급품이 누군가의 이름표로 묶여 있었다

2026-07-18 16:29:13 조회 12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군대에서 내 보급품이 누군가의 이름표로 묶여 있었다.

처음엔 그냥 군대 특유의 정리 미비라고 생각했다. 나는 보급창에서 내 물건들을 받아서 분대 짐칸에 넣는 걸 도왔는데, 그날 따라 유난히 묶여 있는 게 많았다. 상자마다 테이프 자국이 있고, 비닐 포장까지 다시 감겨 있길래 “누가 재포장했나” 싶었다. 그런데 그중에 내 걸로 확인받은 전투화 보급용 끈 다발이 이상했다. 끈을 묶은 줄에 작은 이름표 같은 게 달려 있었고,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다.

상병이 “자, 다음 거” 하면서 손으로 대충 가리킬 때 나는 순간 멈칫했다. 이름표는 분대에서 본 적 없는 사람 이름이었는데, 내가 군번 조회로 확인할 필요도 없이 눈에 확 들어왔다. 보급품은 보통 부대 바코드랑 인수 인계 종이로 정리되는데, 이름표를 달아서 묶어두는 건 흔한 방식이 아니었다. 나는 끈을 조심히 풀어 확인하려다 말고, 그냥 다시 묶어 짐칸에 넣었다. 괜히 문제 만들기 싫어서,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넘겼다.

그날 저녁 점호 전에 분대장이 “내일은 개인정비 하니까 보급품 상태 확인해”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이 더 불길하게 들렸다. 개인정비는 그냥 닦고 정리하는 거지만, 내 보급품들에는 묘하게 ‘누가 이미 써본 흔적’ 같은 게 남아 있었다. 끈 다발은 새 것처럼 보였는데도, 이름표 고리 부분만 유독 빛이 죽어 있었다. 마치 오래 걸려 있다가 급히 떼어낸 것처럼.

다음 날, 나는 훈련장 가기 전에 화장실 옆에서 혼자 끈을 다시 확인했다. 이름표 글씨는 분대에 있던 애들 이름이랑 달랐고, 날짜가 적혀 있지도 않았다. 대신 이름 아래로 작은 번호가 있었는데, 그 번호가 보급창에서 쓰는 물품 코드인지, 아니면 다른 부대에서 쓰던 사람 관리 번호인지 애매했다. 나는 누군가 장난치는 건가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구체적일 수 있나 싶었다. 장난이면 보통 웃기게 써 붙이거나, 낡아서 지워진 흔적이 남아야 했는데, 그건 너무 깔끔했다.

중대 정비 시간에 나는 조심스럽게 옆자리 선임에게 물어보려 했다. “혹시 보급품에 이름표 달아서 묶어두는 거 봤어요?”라고 운을 떼는데, 선임은 내 표정을 보자마자 질문을 끝내지도 못하게 손바닥으로 입을 가볍게 막았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그런 건 묻지 마”라고만 했다.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고, 그 짧은 말이 더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 선임은 내가 그 이름표를 봤는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미 다 아는 사람처럼 굴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잘못 받았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오후 훈련 끝나고 분대에서 짐을 꺼낼 때, 다른 보급품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또 나왔다. 장갑 한 켤레는 끈으로 묶여 있었고, 그 끈 끝에 작은 종이 조각이 끼워져 있었는데, 거기에도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번엔 내가 본 글씨가 아니라, 아예 낯선 한자 이름 비슷한 형태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군가 내 짐을 통째로 뒤섞어 놓은 걸까, 아니면 보급 시스템 어딘가에서 누락된 게 나한테 넘어온 걸까.

그날 밤, 나는 잠을 설쳤다. 천장에서 들리는 선풍기 소리와 발소리가 섞여서 계속 자꾸만 ‘묶인 물건’ 생각이 났다. 특히 끈 다발에 달린 이름표가 자꾸 떠올랐다. ‘내 건데, 왜 내 이름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름으로 묶여 있지?’ 그 질문이 계속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붙여둔 건지, 혹은 누군가의 흔적을 정리하면서 잘못 묶어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 이름표는 단순히 ‘분실 방지용’으로 보기엔 너무 성의가 있었다.

며칠 뒤, 분대에서 누가 갑자기 전입했다. 새로 들어온 병사가 우리 짐칸 앞에서 자기 물건을 찾다가 멈췄다. 그러고는 내 쪽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형, 이거 제 거 아니에요?” 말하면서 자기가 받았던 장갑 다발을 들어 보였다. 거기엔 내가 며칠 전 봤던 것과 같은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그 새 병사는 “전입 오자마자 보급받았는데 이상해서요”라고 했고, 선임들은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그 순간 이해가 확 왔다. 이름표는 ‘내가 남의 걸 받은 것’이 아니라, ‘내 물건이 누군가의 걸 떠안은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 다음 날부터 나는 보급품을 받을 때마다 이름표나 묶음 상태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며칠 후엔, 누군가가 또 나한테서 뭘 가져가려다 멈추는 걸 봤다. 이름표를 떼려다 실패한 사람처럼 손이 잠깐 멈칫했고, 결국 그냥 자기 길로 돌아갔다. 그날 훈련장 바람이 유난히 차가웠는데, 문득 끈 다발에 달린 글씨가 다시 떠올랐다. 누가 묶어두고, 누가 풀어야 하는지 우리는 모르면서도, 결국 제일 먼저 만지는 건 늘 ‘내 손’이더라.

가끔 지금도 생각나. 군대에서 가장 싫은 게 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보통 힘든 훈련이나 짜증나는 규칙을 말하겠지만, 나는 그때의 그 이름표가 더 무섭다. 내 보급품이 누군가의 이름표로 묶여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도 설명이 끝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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