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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프린터가 밤마다 ‘재출력’만 반복해서 돌아갔어

2026-07-18 20:29:13 조회 13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회사 프린터가 밤마다 ‘재출력’만 반복해서 돌아갔어. 퇴근하고 나면 사무실 불이 다 꺼지고, 보안등만 희미하게 깜빡일 때쯤부터 프린터가 혼자 깔깔거리더라. 처음엔 누가 야근하다 깜빡했나 싶었는데, 다음 날 아침엔 종이가 거의 다 닳아 있었고 화면에는 똑같은 문구만 떠 있었어. “재출력”. 딱 그 한 마디만.

나는 전산팀이긴 한데, 보통 그런 건 운영 쪽에서 만지잖아. 그래서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이상하게도 재출력은 특정 문서에서만 시작됐어. 결재용 양식이나 매달 보내는 공지 같은 건 아니고, 누군가 한번 출력한 뒤 남겨둔 문서 파일명이 계속 뜨는 거야. 더 웃긴 건 그 문서가 ‘정상적으로 출력 완료’였다는 거지. 이미 다 찍혔는데도, 밤만 되면 다시 돌아가.

첫 주에는 내가 퇴근 전에 프린터를 껐어. 전원 버튼을 눌러서 완전히 종료하고, 전원 멀티탭까지 잠깐 빼놨어. 그런데 월요일 아침에 보니까 멀티탭이 붙어 있었고, 프린터는 대기모드가 아니라 출력 대기 화면 그대로더라. 종이 트레이는 비슷한 위치로 다시 정렬돼 있었고, 화면에는 어제와 똑같이 “재출력”만 떠 있었다. 그때부터 좀 소름이 돋기 시작했어.

사내 CCTV는 로비랑 출입구만 커버하니까, 작업실 안쪽은 사각이었어. 그래서 대신 로그를 봤는데, 출력 요청이 ‘밤 시간대’로 찍혀 있더라. 그런데 프린터에 사용된 건 내 계정도 아니고, 운영팀 계정도 아니었어. 더 골치 아픈 건, 출력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서버 쪽 이벤트 로그에는 “사용자 인증 성공” 같은 문구가 찍히는데, 정작 인증한 사용자는 확인이 안 됐다는 거야. 마치 시스템이 스스로 만든 빈칸을 채운 것처럼.

그래서 나는 프린터 설정을 뒤져봤어. 자동 재출력 기능이 기본값으로 잡혀 있나 싶었거든. 근데 메뉴를 아무리 찾아도 그런 옵션은 없었고, 오히려 “오프라인 문서 보관”이나 “큐 유지” 같은 항목도 꺼져 있었어. 그런데도 매일 밤, 딱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큐가 비슷하게 다시 채워졌고, 종이 한 장 한 장이 천천히 빠져나오면서 “재출력”이 깜빡였어. 그 깜빡임이 이상하게 규칙적이더라. 초침처럼.

사람들이 떠드는 말도 있었어. 예전부터 이 층에만 이상한 일이 잦았다고. 특히 야간에 문서가 갑자기 출력되거나, 컴퓨터는 종료됐는데도 팬 소리가 나며 잠깐씩 웅웅거린다는 얘기. 나는 그걸 그냥 농담으로 들었는데, 어느 날은 내가 퇴근 전에 프린터를 잠그고 퇴실했거든. 다음 날 아침, 프린터가 멀쩡히 켜져 있고, 잠금 화면이 그대로인데도 종이는 다 나가 있었어. 잠금이 걸려 있는데도 출력이 됐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이쯤 되면 원인이 외부 해킹이냐 내부 버그냐, 둘 중 하나일 텐데, 네트워크는 내가 만져볼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었어. 그래서 포트 차단 같은 걸 해보려고 했더니, 이상하게도 “재출력”은 프린터에 직접 잡힌 연결이 아니라, 내부 문서 큐가 스스로 되살아나는 것처럼 보였어. 마치 프린터가 ‘전날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가 밤이 되면 되돌아 출력하는 느낌. 실제로 누군가 물리적으로 건드린 흔적은 없었고, 인쇄 품질도 이상하게 정확했어. 새 문서를 뽑는 게 아니라, 전날 이미 뽑혔던 그 순서를 그대로 복사해내는 느낌.

나는 결국 프린터를 아예 다른 자리로 옮겼어. 물리적으로 옮기면 이 현상이 따라오는지 확인하려고. 근데 옮긴 날 밤에도, 새 자리에서도 똑같이 깔깔거리더라. 화면에 뜨는 건 역시 “재출력”. 다만 놀라운 건, 이번엔 특정 문서 파일명이 바뀌었는데 대신 공통점이 있었어. 전부 다 누군가의 결재 대기 문서였다는 거. 그 문서들이 매번 ‘처리 중’이었다가, 다음 날 아침이면 처리 완료로 바뀌어 있더라. 누가 대신 결재를 한 건 아니었고, 시스템만 그렇게 표시를 바꾼 느낌이었어.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프린터를 완전히 분해해서 확인해봤어. 종이 경로에 걸린 건 없는지, 카트리지나 센서가 오작동하는 건 아닌지. 문제는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프린터 내부에 얇은 먼지층이 어디선가 일정하게 쌓여 있었어. 마치 누가 계속 같은 지점을 만지거나, 같은 타이밍마다 손을 댄 것처럼. 그리고 제일 기분 나빴던 건, 조립을 끝내고 전원을 켰을 때 프린터가 한 번도 대기 화면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재출력”을 띄웠다는 거야. 내가 켠 순간부터.

그날 이후로는 회사에서 밤에 프린터 소리가 들리면 다들 그냥 눈치 보면서 넘어가더라. 나도 더 파고들지 못했어. 왜냐면 지금도 가끔 그 문구가 떠오르거든. “재출력”이 단순한 오류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잊지 말라고 반복하는 말인지. 새벽에 종이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면,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문서도 누군가의 큐 안에 들어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멈칫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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