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서 비 오는 날만 창문에 누가 손을 대는 듯
비 오는 날이면 내 원룸 창문만 유난히 조용해진다. 평소엔 간간이 지나가는 소리나 위층 물 흐르는 소리라도 들리는데, 장마철 밤에는 그 소리마저 사라지고 “똑… 똑” 하는 느낌만 남는다. 처음엔 빗방울이 창에 튕기는 소리겠거니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빗소리랑 리듬이 달랐다. 마치 안쪽에서 누가 손가락으로 유리면을 더듬는 것처럼, 손끝이 닿는 자리만 또렷하게 찍히는 느낌이었다.
사건은 한 달 전쯤 시작됐다. 저녁에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창문을 닦아 둔 상태였거든. 근데 새벽 한 시쯤, 창문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서 물기 없는 손자국처럼 보이는 자국이 생겼다. 거울처럼 반사되는 빗줄기 사이로, 옅은 갈색 그림자가 스르륵 스치고 지나가는 게 보였다. 나는 놀라서 창문을 열어 확인하려다 말았는데, 그때 “푹” 하고 공기가 꺼지는 소리가 났다. 마치 유리 사이 어딘가에 무언가가 숨을 들이쉬는 것 같은 소리였다.
다음 날은 출근 때문에 아침에 정신이 없었다. 밤새 잠을 설쳐서 눈이 뻑뻑했는데도, 이상하게도 창문은 멀쩡했다. 그래서 그냥 상상 탓이려니 했어. 그런데 오후에 비가 다시 조금 오더니, 이번엔 정확히 저녁 여덟 시쯤 똑같은 소리가 났다. 빗방울이 창을 때리는 소리보다 훨씬 느리고, 점점 간격이 줄어드는 식이었다. 손을 대는 듯한 둔탁한 감각이 창 전체를 훑고 지나간 다음에, 한 번 더 창 아래쪽 모서리를 톡 건드리는 것까지 똑같았다.
나는 그날 바로 확인을 해봤다. 창문 바로 앞 바닥에 휴지 한 장을 붙여두고, 다음 신호가 오면 떨어지는지 보려고 한 거다. 그런데 밤이 되자 소리는 또 시작됐다. 휴지는 움직이지 않았고, 창문 바깥에 있는 빗방울도 정상적으로 떨어졌다. 신기하게도 내가 “손을 대는” 소리를 듣는 순간, 휴지 가장자리가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바람이 아니라 진동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소리가 멈추고 나면, 휴지는 그대로였다.
그때부터 나는 창문 쪽만 보게 됐다. 조용할 때는 아무것도 없는데, 비가 오면 어김없이 같은 구간에서 신호가 나타났다. 새로 생긴 자국도 없었고, 누가 손가락을 대고 간 흔적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대신 유리의 반사에만 어렴풋한 농담이 생겼다. 빛이 꺾이는 각도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그 농담이 생기는 타이밍이 늘 소리와 일치했다. 그 “농담”이 한 번 생길 때마다 창문 틈에서 습기가 더 차오르는 것 같았고, 다음에는 또 반대로 마르는 느낌이 뒤따랐다.
관리실에 연락할까 고민도 했는데, 내가 겪는 게 너무 애매해서 말이 안 통할 것 같았다. “비 올 때 창문이 손댄 것처럼 울려요”라고 하면 다들 장난으로 들을 테니까. 그래서 혼자 이것저것 해봤다. 창문에 테이프를 붙여 틈새를 막아보고, 내부에서 녹음도 해봤는데 빗소리는 잡혀도 그 “톡… 톡”은 똑바로 녹음이 안 됐다. 신기한 건, 귀로는 확실히 들리는데 기계로는 형태가 흐려진다는 거였다. 듣는 건 나만 확실히 듣고, 다른 건 다 흐릿해지는 느낌.
가장 찝찝했던 건,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휴대폰이 잠깐씩 멈칫거렸다는 거다. 전원이 나간 것도 아니고, 화면이 꺼졌다 켜지는 것도 아닌데, 알림이 뜨기 전에 아주 짧게 멈춘다. 마치 누가 시간을 한 번 접었다 펼치는 것처럼. 처음엔 네트워크 문제라 생각했는데, 패턴이 너무 고정적이었다. 비가 오고 창문에서 신호가 시작되면, 그 시점과 거의 겹쳤다. 나는 그때부터 창문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눈을 감아도 들렸다. 심장 쪽으로 바짝 붙는 소리라서, 결국은 내가 소리를 피하는 게 아니라 소리가 나를 찾는 것 같아 더 무서웠다.
이번 주에도 비가 왔다. 이번엔 유난히 오래 내렸고, 밤도 늦게까지 밝았다. 나는 거실등을 끄고 침대에 누워서 최대한 침착하게 기다렸다. 새벽 두 시 무렵, 또 시작됐는데 이번엔 순서가 달랐다. 보통은 창문 중간에서 먼저 톡톡거리다가 아래 모서리로 내려가곤 했는데, 이번엔 반대로 시작부터 아래쪽이었다. 그리고 손끝이 내려가는 것처럼 소리가 점점 낮아지더니, 마지막엔 창문 바로 옆—내 이마가 있는 방향—에서 아주 짧게 “탁” 하고 끝났다.
그 뒤로 이상한 게 생겼다. 나는 창문을 열지 않았고, 잠금장치도 그대로였는데 아침에 보니까 안쪽 창틀에 물기가 얇게 번져 있었다. 어젯밤에는 분명히 깨끗했는데, 마치 누가 밖에서 아니라 안쪽에서 손을 문지르고 간 것처럼 반듯하게 번짐이 남아있었다. 휴지도, 테이프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제일 소름 돋았던 건, 그날 비가 그치고 해가 뜬 뒤에야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한 번 더 선명해졌다는 거다. 비가 올 때만 창문이 나를 확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비 오는 날이 오면 창문부터 보게 된다. 안 보려고 해도, 그 손이 닿기 전에 먼저 마음이 닿아 버려서… 다음엔 어디를 건드릴지, 아직도 나도 모르게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