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 기둥에 적힌 날짜가 매달 갱신돼 있었다
지하주차장 기둥에 적힌 날짜가 매달 갱신돼 있었다. 처음엔 누가 장난치나 싶었는데, 이상한 건 그 날짜가 매번 딱 같은 위치, 똑같은 글씨체, 그리고 항상 “오늘” 기준으로 맞춰져 있다는 점이었어. 나 말고도 몇몇 입주민이 봤다는 얘기가 돌았고, 경비실에서는 그냥 칠이 벗겨져서 다시 쓴 거 아니냐는 말만 반복했지. 그런데 그 설명이 납득이 안 됐어. 그 기둥은 사람이 자주 지나가는 곳이 아니거든.
내가 그걸 처음 눈치챈 건 이사 온 지 한 달쯤 됐을 때야. 지하 2층에서 차를 빼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걸어가는데, 기둥 중간쯤에 작은 글씨로 숫자가 적혀 있었어. 예를 들면 “2024.05.12” 같은 형태로, 굵은 매직펜도 아니고 누가 손으로 천천히 쓴 것 같았지. 날짜 아래에 짧게 한 줄이 더 있었는데, 정확히는 흐릿해서 읽기 어려웠어. 하지만 숫자는 또렷했어. 게다가 그 숫자가 손으로 쓴 날짜 같으면서도, 이상하게도 마치 인쇄된 것처럼 균일했어.
그날은 그냥 “누가 저기다가 뭔가 표시해놨나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다음 달에도 똑같이 눈에 들어왔어. 날짜가 바뀌어 있었거든. 종전의 숫자는 사라지고, 새 날짜가 같은 자리에 같은 크기로 다시 적혀 있었어. 나는 그때부터 유심히 보기 시작했어. 혹시 누가 청소할 때마다 표식을 바꿔두는 거면, 글씨체나 획이 조금씩 달라야 정상인데, 매번 똑같았거든. 마치 한 사람이 꾸준히 같은 방식으로 업데이트하는 느낌이었달까.
입주민들 말로는 관리사무소에서 주기적으로 점검한다고 했어. 하지만 점검 기록이 기둥에 매달 적힐 일은 없잖아. 게다가 관리사무소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그거 누가 쓰는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지. 이상한 건 그 기둥이 어떤 시설물과도 연결되지 않은, 그냥 주차칸 사이의 기둥이라는 거야. 주차칸은 번호가 붙어 있고 라인은 칠해져 있는데, 그 날짜는 그 모든 안내와 상관없이 기둥의 측면에만 딱 박혀 있었어.
나는 결국 기록을 남기기로 했어. 휴대폰 메모에 날짜를 적어두고, 가능하면 사진도 찍었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진을 찍으려 하면 기둥 쪽으로 걸어갈수록 뭔가 시야가 흐려지는 느낌이 들더라. 조명이 깜빡이는 것도 아니고, 안개 낀 것처럼도 아니었는데 그냥 “지금 찍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어. 그래도 한 번쯤은 찍어야 하니까 각 잡고 찍으면, 화면에는 기둥이 보이긴 하는데 글자가 약간 번져 보였어. 실제로는 또렷하거든? 눈으로 보는 순간이 더 선명해.
세 번째 달이 됐을 때는 더 이상했어. 날짜가 바뀐 건 맞는데, 그 아래 짧은 줄이 읽히기 시작했어. 처음엔 흐릿해서 못 봤던 글씨가, 마치 잉크가 천천히 번지듯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느낌이었거든. 나는 그 줄을 대충 “관리” “점검” 같은 단어로 추측했는데, 어쩌면 그게 아니라 날짜가 바뀔 때마다 “무언가를 확인했다”는 형태일지도 몰라. 다만 그 내용이 정확히 뭔지 끝까지 읽히진 않았어. 가까이 가면 갈수록 글자가 덜 보이고, 뒤로 물러나면 다시 또렷해졌지. 이게 더 소름이야.
그때부터 누가 일부러 적는지, 아니면 적혀 있는 게 어떤 방식으로 갱신되는 건지 궁금해졌어. 그래서 밤에 퇴근하면서 일부러 동선을 바꿔 봤거든. 평소엔 엘리베이터에서 바로 걸어가는데, 그날은 일부러 한 바퀴 돌아서 기둥 앞을 지나쳤어. 그런데 내가 본 건 “아무도 없는데도 글씨가 바뀌어 있었다”는 사실이었어. 날짜가 갱신되는 시간은 거의 매달 같은 구간이었어. 예를 들면 새벽 2시쯤, 혹은 3시쯤 같은 식으로. CCTV를 확인하자는 말도 나왔는데, 관리사무소에서 “그 구역은 화질이 별로라” 같은 말만 했지.
이후로는 사람들 반응이 갈라졌어. 어떤 분은 “기둥에 적어둔 건 차량 관련 안내라서 매달 바뀌는 거다”라고 그냥 넘겼고, 어떤 분은 “그 글씨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더라”는 식으로 소문을 키웠어. 나도 그렇게 들었는데, 직접 확인하면 늘 같은 길이였거든. 대신 이상한 건, 날짜가 바뀌는 달에는 유난히 같은 라인에서 경고음이 울리거나 차가 간격을 살짝 비켜주는 일이 반복됐다는 거야. 주차장이라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건 흔하다고 해도, 꼭 기둥과 연결되는 쪽만 그런 느낌이었어. 그게 우연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막상 체감은 그렇게 되더라.
마지막으로 내가 확실히 이상하다고 느낀 건, 날짜가 내 눈에 “오늘”에 맞춰진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였어. 매달 그날이 되면, 기둥의 숫자가 내가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대와 맞물려 있었거든. 아침에 출근하려고 내려가면 이미 새 날짜로 되어 있고, 퇴근할 때 확인하면 전혀 변동이 없어. 즉, 누군가가 매일 새벽마다 갱신하는 게 아니라, 딱 그 날짜가 바뀌는 순간만큼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 준비되어 있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난 어느 순간부터 그 기둥을 “달력”처럼 보기 시작했어. 매달 갱신되는 건 사람의 손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준 같은 거 말이야.
지금도 그 지하주차장에 가면, 그 기둥은 항상 같은 자리에 그 날짜를 품고 있어. 다만 나는 이제 사진을 안 찍어. 대신 숫자만 눈으로 확인하고 지나치지. 어떤 날은 날짜 아래 줄이 조금 더 또렷해진 것 같아서 멈춰 서고 싶어지거든. 근데 그 순간 이상하게도 머릿속에서 생각이 빨리 도망가. “읽어버리면, 다음 갱신의 기준이 너로 바뀌는 건 아닐까” 같은 거. 매달 바뀌는 건 날짜인데, 왜 내 마음은 그걸 따라가며 더 조용해지는지… 아직도 그게 제일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