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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휠체어 바퀴 소리가 내 방 앞에서 멈췄다

2026-07-20 20:29:13 조회 15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병원에서 휠체어 바퀴 소리가 내 방 앞에서 멈췄다. 그날은 밤 열한 시쯤이었고, 복도 형광등은 늘 그렇듯 희미하게 깜빡였다. 나는 그 소리를 “환자분 또 옮기나 보다” 하고 넘겼는데, 바퀴가 딱 한 번, 정확히 세게 ‘딸깍’ 하고 멈춘 뒤로는 아무 소리도 안 났다.

내 방은 간호사 스테이션이랑 반대편 쪽 복도 끝이었어. 그래서 보통은 지나가는 발소리도 멀리서 뭉개져 들렸는데, 그 휠체어 바퀴 소리는 유난히 가까웠다. 바퀴가 돌아갈 때 나는 미세한 마찰음이 사라지더니, 대신 바닥이 쓸리는 느낌만 남았다. 누가 잠깐 손을 대고 멈춘 것처럼, 아주 짧은 시간만.

처음엔 별생각이 없었어.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폰 화면만 보고 있었고, 병원은 밤마다 누군가 이동하니까 이상할 것도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근데 시간이 이상하게 느리게 흘렀다. 보통은 문이 열리는 소리나 호출벨 같은 게 뒤따르는데, 그건 없었다. 복도에서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간호사 발걸음도 없었다.

그러다 내 시계 초침이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문 쪽을 봤다. 병실 문은 반쯤 유리창이 있어서 복도 불빛이 얇게 줄처럼 들어온다. 그런데 그 줄이 그 순간부터 아주 조금씩 흔들렸다. 바람이 드나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마치 누군가 문 앞에서 몸을 조금씩 옮기는 것처럼, 빛의 경계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나는 용기 내서 문 손잡이를 만지려다 멈췄다. 괜히 열었다가 “아무도 없는데 내가 무섭게 굴었나?” 싶어서였다. 대신 방문 옆에 달린 연락 벨을 눌렀다. 딸깍 소리가 나고, 잠시 후 어디선가 무전 같은 소리와 함께 “네, 환자분?” 하고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그 대답이 나오고 나서, 이상하게도 복도 쪽에서는 바로 아무런 소리가 안 났다. 휠체어 바퀴가 멈춘 자리에서, 누군가 벽에 귀를 대고 듣는 것 같았어.

간호사가 들어오려면 최소 몇 분은 걸려.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빠르게 문 밖에서 발걸음이 왔다. ‘뚝, 뚝’ 하고 단단한 신발 소리가 아니라, 휠체어 쪽에서 나올 법한 둔탁한 소리와 섞여서 가까워졌다. 그리고 내 문 손잡이 바로 앞에서 멈췄다. 손잡이가 돌아가는 느낌도, 문이 열리는 기척도 없는데, 딱 그 위치에서 공기가 한 번 굳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결국 이불을 끌어안은 채로 문 쪽으로 몸을 조금 돌렸다. 그때 유리창 너머로 희미한 실루엣이 스쳤다. 얼굴까지는 보이지 않았는데, 어깨보다 낮게 길게 이어지는 형태가 먼저 지나가고, 그 뒤로 바퀴 프레임 같은 것이 보였다. 근데 그게 ‘지나가는’ 속도가 아니었어. 마치 문 앞에 붙어 있다가, 소리로는 한 박자 늦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 귀엔 “바퀴가 멈췄다”가 한 번 더 반복해서 들어오는 착각이 생겼다.

간호사가 문을 열어주기 전, 나는 복도 쪽을 다시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복도 불빛 줄이 갑자기 끊겼다. 마치 누가 커튼을 닫듯이. 그리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아주 작은 금속성 소리가 났다. 바퀴 축을 건드린 것 같은 소리였는데, 그 소리 뒤로는 이상하게도 다시 조용해졌어. 간호사가 “환자분, 왜 벨을 누르셨어요?” 하고 들어왔을 때, 복도는 평소처럼 텅 비어 있었다.

간호사는 내 표정을 보며 “아무것도 없었는데요?”라고 했다.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지만, 입안이 마르는 바람에 말이 잘 안 나왔다. 대신 창문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쪽… 누가 있었던 것 같아요.” 간호사는 잠깐 멈칫하더니, “오늘 밤 휠체어 이동은 없었는데요. 환자분이 피곤하셔서 들으신 것일 수도 있어요.”라고 했어. 근데 그 “들으신 것”이란 말이, 내 등골을 차갑게 만들었다.

다음 날 아침, 간호사에게 조용히 물어봤다. 혹시 밤에 특정 병동 이송이나 점검이 있었냐고. 그랬더니 간호사는 처음엔 그냥 웃으려다 말고, “어제 그 시간대에 누가 휠체어로 나가다 사고가 났다”라고만 짧게 답했다. 자세한 건 묻지 말라고 했고, 병실 커튼을 더 신경 써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내 방 앞 복도는 유난히 소리가 빨리 사라지는 편이 됐다. 바퀴 소리가 들리면, 늘 내 방 문 바로 앞에서만 멈췄다.

지금도 가끔 새벽에 잠이 깨면, 복도에서 아주 얇은 ‘미끌’ 소리가 들려. 누군가 바퀴를 살짝 끌어당기는 것처럼, 하지만 곧바로 멈춘다. 나는 그때마다 문을 열지 못하고 숨부터 고른다. 병원은 원래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밤엔 조용함이 아니라 기다림처럼 느껴져서… 그게 제일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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