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로 받은 전등갓 안쪽에 누가 빛을 가린 자국이 있었다
중고거래로 받은 전등갓 안쪽에 누가 빛을 가린 자국이 있었다. 처음엔 그냥 오래 써서 생긴 얼룩인 줄 알았는데, 물건을 설치하고 불을 켰는 순간 이상하게도 “누군가 일부러 숨긴 흔적” 같은 느낌이 확 올라왔다.
며칠 전 동네 중고카페에서 전등갓을 싸게 샀다. 전등 본체는 따로 있고, 갓만 따로 판매하는 거였고 상태도 괜찮다고 했었다. 사진에서는 하얀 그늘이 균일하게 보였는데, 택배로 받아보니 표면 자체는 멀쩡해 보였다. 다만 안쪽 테두리 쪽이 살짝 누렇게 변색돼 있었는데, 이런 건 흔하니까 그냥 닦아 쓰면 되겠지 싶었다.
설치는 생각보다 빨랐다. 전등을 달고, 스위치를 켰다. 그런데 불빛이 퍼지는 방향이 이상했다. 겉으로 보이는 갓 외피는 정상처럼 보이는데, 안쪽을 따라 어딘가에서 빛이 “딱 막힌 자리”가 있는 것처럼 어두운 띠가 생겼다. 조명은 전부 켜져 있는데도, 갓의 일정 구간만 유난히 어두워서 그림자가 아니라 결 자체가 가려진 느낌이었다.
나는 결국 전등을 다시 떼서 안쪽을 봤다. 손전등으로 안쪽을 비추는데, 거기엔 얼룩이 아니라 아주 얇고 선명한 형태의 자국이 있었다. 종이처럼 얇게 빛을 막아둔 것 같은 모양이었고, 정확히는 “빛이 지나가야 할 구멍 라인”을 따라 덮개가 붙어 있었다가 떼어진 것 같았다. 표면은 하얀데, 그 주변만 살짝 까맣게 눌린 듯한 색이 남아 있었다.
처음엔 누가 테이프를 붙였다 떼었거나, 보수할 때 뭔가를 임시로 대놓은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자국은 테이프의 잔여물처럼 마구 번진 게 아니었다. 오히려 빛이 퍼지는 각도에 맞춰서, 딱 필요한 부분만 가린 모양새였어. 테이프였다면 테이프 모서리도 울퉁불퉁하고 접착 자국이 넓게 퍼지기 마련인데, 이건 한 방향으로 “정렬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찝찝해서 구매자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전등갓 안쪽이 특이하게 가린 자국이 보이는데 혹시 원래부터 그런 건지, 아니면 손보셨던 건지 물어봤다. 판매자는 한참 뒤에 답을 줬는데, “그냥 쓰던 거라 자세히 안 봤다. 이상하면 환불해준다”라고만 했다. 나는 사실 환불보다 이유가 궁금해서, 혹시 집에서 쓰다가 제거한 흔적이 있는 거냐고 다시 물었다.
그때 판매자가 답을 회피하듯 “중고라 다 고유 상태가 있다”고만 했다. 찝찝한 건 그 다음부터였다. 전등을 끄고 나서, 다시 켰을 때 어두운 구간의 모양이 완전히 같은 위치에서 재현되는 거였다. 빛이 닿는 각도가 바뀌면 모양도 달라져야 하는데, 그 자국은 마치 내부 어딘가에 장치라도 있는 것처럼 정확히 동일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제야 전등갓을 받았을 때의 택배 포장 상태가 떠올랐다. 포장이 너무 깨끗했고, 본체와 갓이 분리돼 있었는데, 갓 자체는 안쪽까지 누가 만진 흔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거다.
나는 인터넷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찾아봤다. 누가 빛을 가려 야간에 누가 들어오는 걸 보기 위한 용도, 혹은 특정 시간에만 빛이 닿지 않게 하는 식의 장치가 전등갓 안에 임시로 붙어 있던 사례가 종종 있다는 글을 봤다. 그런데 그 글들에서 말하는 “의도”는 대체로 사람을 숨기거나, 몰래 확인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단순히 얼룩이 아니라 “빛의 통로”를 통제하려는 흔적이라는 뜻이었다.
그날 밤 나는 조명을 켜고 한참을 멍하니 봤다. 어두운 구간이 너무 규칙적이라, 마치 누군가 전등을 켤 때마다 그 부분을 피해 지나갈 수 있게끔 설계한 것처럼 보였다. 불빛이 갓을 뚫고 나오는 게 아니라, 특정 방향으로만 새어나가고 나머지는 막혀 있는 느낌. 손전등을 대면 자국의 경계가 더 또렷해졌고, 그때야 분명히 알겠더라. 그건 자연 변색이 아니라, 누군가 빛을 ‘의식적으로’ 가린 흔적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결국 그 전등갓 안쪽을 조심스럽게 닦아봤다. 그런데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닦을수록 더 단단해진 것처럼 눌린 자국이 남았고, 마지막엔 아주 얇은 막을 한 겹 긁어낸 듯한 감촉만 느껴졌다. 손톱으로 건드리면 완전히 떨어질 줄 알았는데, 잘라낸 것처럼 딱 붙어 있는 느낌이어서 멈췄다. 그 순간 생각이 들었다. 전등갓이 원래 누가 쓰던 거라면, 저 자국은 “떼고 나서 정리”가 끝난 상태여야 정상인데, 왜 이렇게까지 남아 있었을까.
며칠 뒤에야 나는 판매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세히 안 봤다.” 그리고 “이상하면 환불해준다.” 그런데 그 사람이 실제로 안쪽을 본 적이 없다면, 저처럼 빛이 가려지는 걸 바로 눈치채지 못했을까. 결국 나는 전등을 계속 쓰지 못했고, 갓은 창고에 넣어버렸다. 지금도 가끔 스위치를 켜는 꿈을 꾼다. 그때마다, 방 안 어딘가에서 빛이 막힌 구간이 먼저 떠오르고, 나는 그 자국이 어디를 향해 “사람을 기다렸는지” 상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