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서 리모컨이 없는 TV가 자꾸 켜졌다
원룸에서 리모컨이 없는 TV가 자꾸 켜졌다. 처음엔 전기 문제겠거니 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집 안에서 너무 “알아서” 시작되는 느낌이라, 어느 날부터는 누가 일부러 내 방을 건드리는 것 같아졌다.
사건은 입주한 지 한 달쯤 됐을 때 시작됐다. TV는 벽에 붙어 있는 오래된 모델이었고, 리모컨은 애초에 없었다. 이사 올 때 관리실에서 “리모컨은 고장 났대요. 그냥 버튼으로 켜세요”라고만 했지, 누가 가져다준 적도 없었다. 나는 낡은 TV 버튼을 한 번 누르고 나서야 화면이 켜지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어느 밤, 새벽 두 시쯤 잠깐 깼다. 방 안이 아주 미세하게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고, 곧이어 TV 화면이 켜졌다. 소리는 나지 않는데, 대신 화면만 켜져 있었다. 채널이 고정도 아니고, 뭐가 재생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새하얀 화면에 가까운 정적 상태 같은 게 띄워져 있었다. 나는 “바람 때문인가” 싶어서 창문부터 봤는데, 창은 닫혀 있었다.
다음 날 낮에 나는 TV 옆에 있는 전원 버튼을 손가락으로 눌러봤다. 전원은 확실히 눌리는데, 문제는 “누가 그걸 다시 눌렀냐”였다. 관리실에 전기 점검을 요청하려다가도, 솔직히 말하면 관리실은 말만 하고 손 놓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넘기기로 했다. 대신 그날 이후로는 잠들기 전에 TV를 껐다. 근데 그게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며칠 뒤엔 더 황당한 일이 생겼다. 저녁에 공부하다가 잠깐 졸았는데, 깬 순간 TV 화면이 켜져 있었다. 이번엔 정적이 아니라 자막이 아주 옅게 흘러가듯 보였다. 소리는 또 없었다. 화면만 켜진 채로, 누군가가 채널을 맞춰둔 것처럼 “방송이 시작되기 직전”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급하게 전원 버튼을 눌러 껐고, 그제야 화면이 완전히 꺼졌다.
이쯤 되면 누가 내 방에 들어왔을 가능성도 떠올라서, 나는 문을 유심히 봤다. 문은 안쪽에서 잠그면 끝이고, 바깥에서 열려면 열쇠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TV가 반복해서 켜졌다. 더 소름은 켜질 때마다 시간대가 비슷했다는 점이야. 대략 새벽 두 시 전후, 혹은 내가 가장 피곤해져서 눈을 붙일 때마다. 마치 내 패턴을 따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결국 CCTV가 있는 복도인지 확인하려고 관리실에 물었다. “복도 카메라가 몇 월부터 켜져요?”라고 묻자, 직원이 대충 “잘 보이면 잘 보고, 아니면 아닙니다” 같은 말투로 넘겼다. 그리고 “그 TV 고장 난 거 아니에요?”라고 하더라. 그 말이 더 이상했다. 고장이면 꺼지거나 아예 켜지지 말아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내 방 TV는 멀쩡히 켜졌다가, 내가 버튼을 누르면 정확히 꺼졌다.
그러다 어느 날, TV가 켜진 걸 느끼고 전원 버튼을 누르기 전에 잠깐 멈칫한 적이 있다. 화면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 옆면에 있는 작은 표시등이 아주 천천히 깜빡였거든. 마치 “대기 모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리모컨이 없는데도, 누군가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건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내 눈으로 본 느낌이 그랬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해봤다. TV 전원선을 뽑아두고, 밤에 불을 꺼서 자도 되는지 확인했다. 그날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런데 새벽에, 전원선을 뽑아둔 상태에서도 화면이 아주 희미하게 켜지는 것처럼 보였다. 정확히 “켜졌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데, 스위치 없는 화면이 눈으로만 비치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죽였고, 그때 문득 깨달았다. 이미 나는 TV가 켜졌다는 사실보다, “꺼져도 반응한다”는 걸 더 무서워하고 있었다는 걸.
그 후로 나는 리모컨이 없는 TV를 버튼으로만 끄는 대신, 아예 밤에는 전등도 늦게 끄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가끔, 정말 가끔이지만 방 안이 조용해지는 순간에 TV가 먼저 켜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지금도 나는 누가 내 방을 건드렸는지 증거가 없어서 단정은 못 하겠는데, 한 가지는 확실해. 그 TV가 내 잠드는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