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기사님이 문 앞에 두고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어
문 앞에 배달 음식 상자가 놓인 건 평소랑 똑같았는데, 이상하게도 기사님 목소리가 먼저 들렸어. 보통은 “감사합니다” 하고 끝내는데, 그날은 초인종이 울리고 나서 바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붙더라. 나는 문 열기 전에 한 번 멈칫했어. 설마 오배송인가, 아니면 내가 주문을 잘못했나 싶어서. 그런데 상자를 보려는 순간, 문틈 사이로 기사님이 아주 짧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거든.
내가 문을 열었을 때는 계단 쪽이 한산했어. 기사님은 이미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벨을 누르듯 손을 한 번 더 흔들고 멀어지는 느낌이었어. 상자 위에는 종이가 하나 더 붙어 있었고, 거기에는 배달 앱 안내 문구 말고 손글씨로 뭔가 적혀 있었어. “문 앞 3번째가 제일… 죄송합니다.”라고만 보였는데, 문장 중간이 흐릿했는지 잉크가 번져서 끝이 정확히 안 읽혔어.
나는 웃어넘기고 싶었지만, 손글씨가 너무 급하게 적힌 것처럼 보여서 기분이 묘했어. 어차피 음식은 정상이니까 치우고 결제 확인만 하고 끝내면 되지 싶었지. 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오는데, 현관 쪽이 유난히 차가웠어. 보통 밤 공기랑 다르게 느낌이 “문틀 안쪽에 공기가 한 번 멈춘 것”처럼 답답했달까.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 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던 것 같았어.
음식을 놓고 나서 배달 앱을 확인하니까, 이미 ‘배달 완료’가 찍혀 있었어. 그런데 내 주문 메모에는 “문 앞에 두고 연락 부탁드려요” 같은 문구가 없었거든. 오히려 나는 메모에 그냥 “문 앞에 두시면 됩니다”만 적었었는데 말이야. 더 이상하게도 기사님이 사진을 남긴 게 보였는데, 사진 속 현관은 내 집이랑 각도가 조금 달랐어. 내 신발장 위치랑 다르게 보였고, 문 앞에 놓인 상자도 한 번 더 안쪽으로 치워져 있었던 느낌이었어.
나는 혹시 기사님이 다른 집에 잘못 두고 돌아오다가 다시 눌렀나 싶었어. 그래서 앱 문의를 넣으려 했는데, 손가락이 멈추더라. 방금 전 벨 소리랑 함께 “죄송합니다”가 들렸던 게 자꾸 떠올랐거든.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죄송합니다’라니… 단순 실수라면 보통 당연히 사과하지 않나? 그런데 그 사과가 이상하게도 “누구에게” 하는 사과 같았어. 상대가 사람일 수도 있지만, 목소리가 사람한테만 향한 것 같지는 않았거든.
그때 현관문 안쪽을 한번 더 확인했어. 문틈 사이로 바람이 스치는 소리는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문 하단에 뭔가 묻어 있었어. 젖은 것 같으면서도 물기처럼 번진 자국이 아주 얕게. 자세히 보니까, 마치 누군가 손바닥으로 문턱을 짚고 오래 버티다 간 흔적 같았어. 나는 괜히 소름이 돋아서 손전등으로 비추지 않고, 그냥 휴지로 훑어냈는데 휴지가 젖지 않았더라. 그럼에도 자국은 남아 있었고, 희미하게 빨간 기운 같은 게 섞여 보였어. 놀라서 문득 멈췄는데, 그 순간부터 현관 시계 초침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렸어.
다음 날 아침, 관리실에 “어제 배달기사님이 뭘 잘못 두고 가신 것 같은데, 혹시 CCTV로 확인 가능하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관리실 아주머니가 한 박자 쉬더니, “그런 거면 기사님이 여러 번 신고 들어왔어요”라고 말하더라. 이어서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덧붙였어. “문 앞이요… 3번째 집이요. 예전에 한 번 사고가 났던 구간인데, 기사님들이 그쪽에 뭔가 있다고들 하세요. 가끔 ‘죄송합니다’ 하고 그냥 내려가시는 분도 있다더라고요.”
나는 웃으려다가 입이 굳었어. 그 사고라는 말에 대해서는 자세히 못 들었어. 하지만 아주머니가 말하는 방식이, 단순 소문을 말하는 톤이 아니었거든. “그 집이요, 사람들이 자꾸 착각을 해요. 원래 문 앞이 그 사람들한테는 다른 모양으로 보인대요”라고 하길래, 난 “그럼 오늘도 다른 데 배달됐던 건가요?”라고 물었는데, 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었어. “아니요. 배달은 맞게 가요. 다만, 기사님들이 문 앞에서 대답을 하려고 하다가… 결국엔 사과부터 하더라고요.”
며칠 뒤, 나는 그 손글씨 종이를 다시 봤어. 겉보기엔 “문 앞 3번째가 제일…”만 보이는데, 빛을 비추면 글자가 더 살아나더라. 종이 가장자리에 아주 작게, 거의 낙서처럼 이렇게 이어져 있었어. “여기선 감사가 늦어요. 먼저 미안해요.” 그 문장을 읽고 나서, 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르던 게 딱 하나였어. 기사님 목소리가 ‘상대에게’가 아니라, 마치 무언가가 있는 방향을 보고 한 사과 같았다는 거.
그 이후로 나는 배달이 오면 문을 열기 전에 잠깐 멈추게 됐어. 상자가 놓이는 소리, 발걸음 멀어지는 속도, 그리고 가끔 들리는 아주 작은 숨소리 같은 것들을. 그리고 가장 신기한 건, 그 집으로 배달이 올 때마다 내 현관문은 똑같이 차갑게 느껴진다는 거야. 지금도 배달기사님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가는 꿈을 종종 꿔. 깨어서도 귓가에 남아 있는 말이 있어, 마치 누가 대신 사과를 받아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