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목적지를 수정하자마자 차가 미세하게 틀어졌다
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목적지를 수정하자마자 차가 미세하게 틀어졌다.
당시엔 비가 막 그치던 저녁이었고, 나는 앱에서 찍힌 목적지를 그대로 기사님께 보여줬다. 기사님도 별 말 없이 “네, 알겠습니다” 하더니 네비 화면을 한 번 더 넘기듯 만지셨어. 그리고 목적지 이름이 아주 작게 바뀌는 게 보였다. 내가 확실히 본 건, 내가 입력한 주소랑 글자가 완전히 같지 않았다는 거다.
“여긴 좀 더 가까운 길로 찍혀 있어요.” 기사님이 웃으면서 말했는데, 그 순간 차가 이상할 정도로 부드럽게 한 번 틀었다. ‘브레이크 밟는 느낌’도 아니고 ‘차선 바꾸는 타이밍’도 아니었어. 마치 누군가가 핸들을 아주 살짝만 당긴 것처럼, 차의 방향이 눈에 덜 띄게 달라졌다. 나는 손을 뻗어 창밖을 봤는데, 가로등 간격이 바뀌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어.
물론 택시는 목적지에 따라 경로가 바뀌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그냥 “아, 네. 네비가 자동으로…” 하고 넘기려 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차가 틀어진 뒤에도 기사님은 계속 내 목적지 쪽을 확인하듯 네비를 들여다봤다. 딱 한 번이 아니라, 신호에서 멈출 때마다 한 번씩 화면을 만지는데 손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더라. 마치 암기한 절차 같았어.
나는 순간 이상해서 “기사님, 제가 찍은 데로 가는 거 맞죠?” 하고 물었어. 그러자 기사님은 “아, 네. 어차피 도착은 똑같습니다” 라는 말만 하고 고개를 아주 짧게 끄덕였다. 웃는 얼굴인데 눈만은 웃지 않는 느낌이었고, 옷깃에서 비 냄새가 아니라 전자기기에서 나는 먼지 냄새 같은 게 올라왔다. 나는 그때부터 차 안 공기가 얇아지는 것처럼 숨이 답답해졌어.
차가 달리면서 도로 표지판이 계속 ‘다음’ 방향으로만 바뀌었다. 내가 알던 길과 어딘가 비슷한데, 정확히는 다른 길. 특히 어떤 교차로를 지나기 직전에 기사님이 속도를 아주 약간 줄였어. 정차는 아니었는데, 차가 멈추지 않으면서도 ‘멈춘 척’ 하는 듯한 미세한 감속. 그 타이밍에 나는 뒤좌석에서 휴대폰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화면이 잠깐 깜빡였다. 그리고 앱 내 택시 위치가 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반 걸음 늦게 따라오더라.
그때 기사님이 갑자기 “여기서 잠깐만요” 하고 말했어. 이유를 묻기도 전에, 그는 내 목적지의 주소를 다시 한 번 수정했는지 네비를 더듬듯 조작했다. 그 순간 차가 또다시 미세하게 틀어졌는데, 이번엔 첫 번째보다 더 작았다. 그런데도 나는 확실히 느꼈어. “그건… 단순 경로 변경이 아니라”는 감이 들 정도로, 핸들이 아니라 ‘방향의 중심’이 이동하는 느낌. 창밖으로 보이던 가게 간판이 살짝 비껴가더라.
나는 결국 물어볼 수밖에 없었어. “기사님, 혹시 제 목적지… 제가 한 거 말고 다른 걸로 넣으신 거예요?” 그러자 기사님은 잠깐 말이 막힌 사람처럼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가, 곧 “아뇨, 그냥 안내가 편해서요”라고 했어. 그런데 그 말이 너무 짧고, 너무 늦게 나왔어. 운전석 뒤편 거울로 그의 손을 봤는데, 손목에 낡은 보호밴드가 감겨 있더라. 비 오는 날이었는데도 밴드가 마른 것처럼 보였고, 그게 이상하게 눈에 남았다.
내가 목적지로 가는 길은 익숙한 편이었는데, 차는 점점 내가 모르는 쪽으로 붙었다. 도로가 넓어진 게 아니라, 넓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가로등 배치가 바뀌는 느낌이었어. 나는 “여기서 더 돌아가나요?”라고 다시 묻자, 기사님은 이번엔 웃지도 않고 “금방 도착해요”만 반복했어.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앞 유리 너머로 신호등 색이 바뀌는 타이밍이 내 계산과 달랐어. 내가 보기엔 다음 신호여야 했는데, 기사님이 틀어놓은 경로의 시간표를 이미 맞춰둔 것처럼 딱 맞아떨어졌거든.
목적지 근처라고 생각한 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어. 내 주소는 맞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내린 곳은 같은 건물 앞이 아니라 옆 골목 입구였고, 앱에는 ‘도착 완료’가 떠 있는데 내가 서 있는 방향과 앱의 지도 방향이 서로 엇갈려 보였어. 나는 기사님에게 카드를 대는 손을 멈추고 “여기 맞나요?” 하고 다시 확인했지. 기사님은 “네, 여기예요”라고만 했고, 더 말하지 않았어. 마지막으로 계기판을 보려는 순간, 네비 화면에 잠깐 떠오른 안내 문구가 있었는데 글자가 반쯤 잘려서 내가 정확히 읽진 못했지만, ‘재탑승 유도’ 같은 단어 느낌이 스쳤어.
내가 택시 문을 닫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기사님이 창문을 조금만 내리더니 “혹시… 위치 공유 켜셨죠?” 하고 조용히 물었어. 나는 대답하려다 멈췄고, 그 사이로 차가 다시 아주 천천히 움직이더라. 그때 깨달은 게 있어. 목적지를 수정한 건 길 찾기가 아니라, 내 다음 행동을 정하는 쪽에 가까웠다는 걸. 오늘도 택시 앱에서 목적지를 바꿀 때마다, 차가 미세하게 틀어지던 그 감각이 손바닥에 남아 있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