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에 누가 내 차 번호를 메모해 둔 것 같아
지하주차장에 누가 내 차 번호를 메모해 둔 것 같아. 처음엔 그냥 기분 탓인 줄 알았는데, 그날 밤부터 이상하게 계속 신경이 쓰이더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늘 같은 냄새랑 소리로 굴러가는데, 유독 그날만은 누군가가 내 차 앞을 오래 맴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사건은 저녁에 있었어. 나는 퇴근하고 엘리베이터 타서 지하 2층에 내렸고, 평소대로 주차 자리로 걸어가다가 유리 기둥 옆 벽면을 봤거든. 거기엔 관리사무소 안내문이 붙어 있어야 하는데, 어느새 하얀 쪽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어. 손바닥만 한 크기였고, 구겨진 흔적이 없어서 오히려 더 티가 났다. 누군가 급하게 붙인 느낌이 아니라, 일부러 확인하면서 적어둔 느낌.
그 쪽지에 내 차 번호가 적혀 있었어. 정확히는 내 차의 앞번호판 숫자 일부만 적힌 게 아니라, 전체가 또박또박 들어가 있었지. 적힌 필기체가 예쁘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메모지에 적어둔 사람 손글씨 그대로였어. 내가 멈춰 서서 한참 보는데도 누가 지나가는 소리는 없었고, 차들은 조용했는데 이상하게 공기만 차가워지는 느낌이었어.
나는 일단 차에 올라타고 바로 관리사무소에 전화하려 했는데, 막상 생각해보니 “누가 내 번호를 왜 적어놨지?”가 너무 머릿속에서 반복돼서 전화 버튼 누르기가 늦어졌어. 대신 그냥 메모를 떼어내서 확인해보려 했는데, 쪽지가 벽에서 완전히 떨어지지 않더라. 누군가 접착이 아니라 ‘끼워 넣은’ 방식으로, 기둥 틈새에 넣어둔 것 같았어. 그래서 손끝으로 당기려는 순간, 종이 아래로 뭔가가 더 보였어. 아주 작게, 같은 색 잉크로 “같은 시간” 비슷한 문장이 한 줄 더 적혀 있더라.
그때부터 머리가 하얘졌어. “같은 시간”이라는 말이 너무 구체적이잖아. 내가 매일 몇 시쯤 출근하고 몇 시쯤 들어오는지 관리하는 사람처럼 느껴졌거든. 나는 순간적으로 최근에 주차장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을 떠올렸어. 엘리베이터 앞에서 늘 서 있던 그분, 관리사무소 직원처럼 보이는데 가끔 혼자 지하를 도는 것 같았던 남자, 그리고 유독 내 차만 멀리서 쳐다보던 여자. 물론 그때는 그냥 눈길 한 번 준 정도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 의미가 생겨버렸어.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다시 그 자리로 갔어. 어제 붙어 있던 쪽지는 사라져 있었고, 대신 기둥 옆에 붙는 안내문이 가지런히 다시 정리돼 있었어. 관리사무소에서 떼어갔다고 보기엔 너무 빨랐고, 내가 볼 때 딱 그 흔적만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이었어. 누군가가 “내가 봤다”는 걸 알고 제거한 걸까, 아니면 관리사무소가 그냥 치운 걸까. 그 차이가 너무 미묘해서 더 불안했어.
나는 그날 오후에 퇴근하면서 주차장 CCTV 방향을 유심히 봤어. 지하 2층 입구 쪽에 카메라가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내 차가 있는 라인은 카메라 사각처럼 느껴지는 구간이 있어. 예전부터 조명이 좀 어두운 편이었고, 그 때문에 누군가가 작업하기 좋은 자리라는 생각은 했거든. 그런데 이번엔 확신이 들었어. 내 차 번호가 적힌 위치가, 카메라가 닿지 않는 각도에 딱 맞춰져 있었거든. 물론 “확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 그래도 내 감각이 그럴듯하게 맞아 떨어졌어.
그 뒤로는 더 웃긴 일이 생겼어. 나는 차를 바꾼 적도 없고, 번호판을 가린 적도 없는데, 어느 날부터 주차장에서 내 차 주변에 먼지가 유독 얇게 쌓이는 걸 봤어. 누군가가 일부러 가까이 와서 뭔가를 확인했을 때 생기는 그런 얇은 얼룩 같은 거. 누가 장난을 친 건지, 아니면 정말로 내 차를 “기록”해둔 건지 모르겠는데, 계속 같은 구간에만 생기더라. 나는 차 문을 닫을 때마다 손목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고, 퇴근길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어.
그래서 결국 내가 한 건 단순했어. 번호 메모가 있었던 위치에, 아주 티 안 나게 작은 메모를 하나 더 남겼지. “누구든 잘못된 오해가 있다면 연락주세요” 같은 문구였고, 내 번호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내가 봤다’는 정도만 암시했어. 그리고 그 메모를 확인하러 다음 날 갔을 때, 그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어. 누군가 치웠다는 흔적만 남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바닥은 깨끗했고, 종이만 사라졌더라. 내가 본 걸 지운 건지, 애초에 가져간 건지 알 수 없었어.
지금도 가끔은 지하주차장에 내려가면, 내 차 번호가 적힌 쪽지를 누군가가 손에 들고 있는 장면이 떠올라. 실제로 누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는 없어. 그냥 누군가가 내 차를 “확인”했고, 그 확인이 단순한 관심을 넘어선 것 같다는 감각만 남아 있어. 그게 제일 소름이야. 메모는 사라졌는데, 내 마음속 기록은 계속 남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