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처방받은 물약 병이 투명하게 떨리고 있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물약 병이 투명하게 떨리고 있었다. 약봉투에는 “하루 2번, 식후 복용”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정작 집에 와서 병을 꺼내는 순간부터 이상했어. 유리도 아닌 것 같은데도, 병 안에 든 액체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마치 숨 쉬는 것처럼 보였거든. 그냥 기분 탓인가 싶어서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는데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처음엔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어. 대중교통에서부터 들고 온 시간이 길었고, 엘리베이터도 계속 멈칫거려서 물약이 흔들렸을 수 있지 않나 싶더라. 근데 병을 탁자 위에 똑바로 세워두고 나서도, 액체만 유독 또렷하게 움직였어. 병 바깥은 멀쩡한데, 안쪽만 “동그란 파동”처럼 번졌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어.
나는 혹시 이게 일반적인 현상인지 검색하려고 휴대폰을 켰는데, 손가락이 좀 굳어 있더라. 약병 라벨을 다시 봤다. 처방받을 때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준 글자와 똑같은데,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어. 라벨 하단에 아주 작게 적힌 필기체가 있었거든. “복용 전 3분 대기.” 분명히 처음엔 못 봤던 것 같아.
물약 병이 떨리는데, 그걸 멈추게 하려면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잖아. 그래서 그냥 라벨대로 해보기로 했어. 타이머를 켜고 3분을 기다리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떨림의 폭이 커졌다가 갑자기 줄어들었어. 그리고 액체 표면이 수면처럼 고르다가, 한 번 툭 하고 꺾이듯 움직였어.
그때부터 병을 손으로 만지기 조심스러워졌어. 유리병이면 열이 있거나 차가워서 떨릴 수 있다고 치면 이해가 되는데, 병 자체는 미지근했거든. 그런데 병에 손가락을 대는 순간, 내 손끝 감각이 조금 둔해지는 느낌이 났어. 마치 찬물에 오래 담갔다가 꺼낸 뒤처럼 감각이 늦게 따라오는 느낌. “이거 뭐지…” 싶어서 손을 떼자마자 떨림도 다시 미세해졌어.
나는 혹시 병이 잘못된 건 아닐까 싶어서 약봉투를 다시 확인했어. 진료기록지, 약봉투 라벨, 처방전 번호까지 다 맞았고, 병도 분명히 같은 색깔의 투명 코팅이 되어 있었어. 문제는, 병 안에서 흔들리던 그 움직임이 단순한 파동이 아니라 방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야. 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액체가 살짝 기울어지는 각도가 바뀌는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결국 점심 먹고 첫 복용 시간을 맞추긴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 찝찝했어. 병을 열기 전에 뚜껑을 한번 쳐다봤거든. 뚜껑 안쪽에 얇은 막 같은 게 붙어 있었고, 그게 내 숨을 받았는지 미세하게 번들거리는 것 같았어. 뚜껑을 돌리자마자 “쉭” 하는 소리도 아주 작게 들렸는데, 그 소리가 방 안 공기 중에서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어. 액체는 평소 물약처럼 바로 쏟아지지 않고, 먼저 병 입구에서 둥글게 맺힌 뒤에야 떨어지더라.
나는 그날 저녁, 다시 병을 세워두고 관찰했어. 보통은 약병은 그냥 가만히 있어야 정상인데, 이번엔 떨림이 약속된 시간처럼 시작되더라. 약봉투에 적힌 “하루 2번”이 생각났고, 나는 괜히 휴대폰 알람 시간을 맞춰보게 됐어. 알람이 울리기 5분 전부터 액체 표면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고, 알람이 울리는 순간엔 잠깐 멎었다가, 그 다음에 다시 조용히 흔들렸어.
마지막으로 나는 병을 냉장고에 넣어봤어. 차갑게 만들면 멈출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냉장고 문을 닫고 한참 뒤에 열어보니, 병이 더 투명하게 보이면서도 액체가 이상하게 “선명해지는” 느낌이 들더라. 액체 속에 뭔가가 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렌즈로 보면 더 보이는 그런 착시가 아니라, 눈을 감았다 떠도 흔적이 남는 느낌이었어. 그리고 액체가 내 시선을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그 뒤로 나는 그 물약을 전부 복용했는지 잘 모르겠어. 정확히 말하면, 마지막 날의 기록만 기억나고, 실제로 병이 비워지는 과정을 머리로는 따라가는데 눈으로는 잘 못 따라가겠더라. 병은 끝까지 투명한 채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하얀 종이 위에 놓인 것처럼 평범해졌어. 그리고 지금도 가끔 투명한 병을 보면, 액체가 떨리진 않더라도 그때처럼 “알람이 오기 전에 먼저 움직이는 느낌”이 손끝에서 먼저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