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 와서 서로 대화가 줄어든 상태입니다
권태기가 오기 시작한 건 사실 “갑자기”가 아니라, 어느 날 문득 보니까 대화가 얇아져 있던 느낌이었어요. 연애 초반엔 카톡 알림이 울리면 바로 답하고, 짧게라도 매일 근황 얘기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답장이 오긴 해도 텀이 길어지고, 대화가 이어지는 방식이 바뀌더라고요.
제가 먼저 눈치챈 건 사소한 데서였어요. 예를 들면 제가 “오늘 뭐 먹었어?”라고 보내면 상대는 “그냥 뭐 먹었지” 한 줄로 끝나고, 저는 그걸 이어서 물어봐야만 다음 말이 나오는데 그마저도 잘 안 이어지는 거예요. 예전엔 제가 던지면 적어도 반응이 오고, 감정선이 조금이라도 붙어 있었거든요. 근데 요즘은 대화가 대답과 확인 사이에서 멈춰버리는 느낌?
처음엔 제가 예민한가 싶어서 그냥 편하게 생각하려고 했어요. 바쁘겠지, 일이 몰렸겠지, 사람마다 텀이 있잖아 싶어서요. 근데 문제는 그 “바쁨”이 계속 유지된다는 거예요. 주말에도 따로 약속이 생기면 마음 편하게 쉬는 듯 보이는데, 동시에 제가 기다리고 있던 서로의 시간이 줄어든 건 확실하니까요. 카톡을 보내면 읽고도 바로 답이 없고, 답이 오면 의미는 있는데 ‘대화’를 하는 느낌이 약해졌어요.
그래서 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똑같이 맞춰버렸어요. “왜 답이 늦어?”를 묻는 대신, 저도 바로 안 보고 다음에 답하고, 먼저 길게 쓰지 않게 되더라고요. 이상하게 그게 더 서먹해졌어요. 둘 다 불편하진 않은데, 편하진 않은 상태랄까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거리를 둔 거죠. 그게 제일 무서웠던 것 같아요. 마음은 남아 있는데 표현이 줄어드니까, 결국은 감정이 아니라 습관만 남는 느낌이라서요.
한 번은 제가 평소처럼 “오늘 날씨 좀 풀렸더라”라고 보냈는데, 상대는 “응”만 보내더라고요. 저는 그 “응” 뒤에 뭘 더 붙일지 고민하다가, 그냥 넘어가자 싶어서 “오케이 ㅎㅎ” 하고 끝냈어요. 그게 하루 이틀 쌓이니까, 어느 순간부터 카톡을 켜는 시간이 습관이 아니라 부담이 되더라고요. 내가 뭘 보내야 할지 모르겠고, 보냈는데 상대가 반응이 없으면 내 마음만 먼저 가라앉는 기분. 그때부터는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이 누구든, 둘 다 같은 긴장감을 갖게 됐어요.
직접 만나면 또 달라요. 얼굴 보면 괜히 장난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옆에 있으면 따뜻하긴 해요. 근데 집에 돌아와서 카톡으로 이어질 때가 문제였어요. “오늘 재밌었어?” 같은 말이 나오면 괜찮은데, 그 다음이 안 생겨요. 예전엔 ‘재밌었어’ 다음에 “어떤 게 제일 좋았어?”로 이어졌는데, 이제는 그걸 물어보는 게 부담이 될까 봐 제가 참기도 하고, 상대도 질문을 던지지 않아서 그냥 조용히 흘러가요. 그러다 보니 연락이 줄어든 게 단순 빈도 문제가 아니라, 연결하는 방식이 사라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한 번은 제가 조심스럽게 얘기했어요. “우리 요즘 대화가 조금 줄어든 것 같아. 나만 그런가?”라고요. 상대는 “나도 요즘 말수가 좀 줄었어.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봐”라고 했어요. 저는 그 말을 반박하고 싶진 않았지만, ‘피곤’이라는 단어가 너무 길게 이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한 번 더 내려앉았어요. 상대도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혹은 별일 아닌 줄 알고 넘기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뒤로 저희는 뭔가 거창한 해결책을 세우진 못했어요. 다만 대화의 형태를 조금 바꿔봤어요. 예전엔 서로 근황 토크를 길게 했는데, 요즘은 “오늘 컨디션 어때?” “내일 일정 있어?” 이런 식으로 체크하듯이 짧게 맞추는 걸로요. 처음엔 그게 대화 같지 않아서 답답했는데, 이상하게도 며칠 지나니까 한 줄이라도 서로의 하루가 이어지는 게 보이더라고요.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오진 않지만, 최소한 ‘사라진 것’은 아니게 된 느낌이었어요.
근데 또 문제는 그 다음이더라고요. 체크는 되는데, 정작 서로의 마음을 더 담아내는 말은 잘 안 나오니까요. 저는 가끔 상대가 카톡을 읽고도 한참 뒤에 답할 때, 그 늦음이 무슨 의미인지 상상하게 돼요. 바쁜 건 맞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기다려도 되는 사람인가” 같은 생각이 스치거든요. 상대는 제 마음을 알까 싶고, 제 마음을 안다고 해도 상대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한 것 같아서 더 조심스러워지고요.
요즘은 그래서 약속을 잡을 때도 “언제 시간 돼?”만 묻지 않고, “이번에 같이 가보고 싶은 데 있어”처럼 구체적으로 말하려고 해요. 상대도 그 방식엔 반응이 괜찮더라고요. 이상하게, 대화가 줄어들면 마음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방향이 바뀌는 것 같아요. 서로가 뭔가를 잃었다기보단, 찾는 방식이 달라진 느낌. 그래서 아직 끝났다고 단정하진 않으려 해요. 지금은 권태기가 서로의 말투를 얇게 만들었지만, 어쩌면 이 얇아진 시간 사이에서 다시 두꺼워질 기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오늘도 카톡을 보내기 전에 잠깐만 망설이고, 대신 조용히 더 좋은 말 하나를 고르고 있어요. 그 말이, 언젠가 다시 ‘대화’로 돌아오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