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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점검등이 꺼진 뒤에 계산대만 조용히 켜져 있었다

2026-07-25 20:29:13 조회 1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편의점에서 점검등이 꺼진 뒤에 계산대만 조용히 켜져 있었다. 그날은 별일 아니겠지 싶었는데, 매장 안 공기가 이상하게 무거웠다. 손님이 다녀가고 나서도 소리만 사라졌지, 어딘가에서 계속 “뭔가”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저 야간 점검을 끝내고 퇴근하려고 했을 뿐인데 말이다.

처음엔 전형적인 야간 루틴이었다. 점검등을 켜고 냉장고 온도랑 진열 상태만 대충 확인한 다음, 매뉴얼대로 점검등을 끄고 계산대 주변을 정리했다. 점검등이 꺼지면 매장 전체가 한 단계 어두워지면서도, 그래도 비상등이랑 안내등은 남아 있어서 완전히 깜깜하진 않다. 근데 그날은 달랐다. 점검등이 꺼짐과 동시에 계산대 화면만 은근하게 살아 있었다.

계산대는 보통 손님이 결제할 때만 켜져 있고, 점검등이 꺼지면 주변 조명도 같이 낮아진다. 그런데 전광판은 꺼지지 않고, 숫자가 찍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전원 켜짐’ 같은 상태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화면이 켜져 있으니 전자저울이나 결제 단말도 같이 대기모드로 넘어가야 정상인데, 그건 아니었다. 주변은 정적인데 계산대만 살아 있는 느낌. 마치 사람이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나는 처음엔 전기 문제겠거니 하고, 혹시 누가 테스트로 뭔가 켜두고 나갔나 싶어서 매장 안을 둘러봤다. CCTV 모니터는 꺼져 있었고, 다른 조명은 다 정상적으로 소등된 상태였다. 다만 계산대 위에 쌓인 영수증 출력 대기 용지 함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봤다. 바람이 불면 선반 같은 데가 흔들려야 하는데, 바람은 없었다. 에어컨도 꺼져 있었고 창문도 다 닫혀 있었다.

손님이 없는데 계산대만 켜져 있으니, 혹시 누가 리모컨으로 켜둔 건가 했는데 매장에는 리모컨이 따로 없었다. 직원용 키로만 전원 상태를 조절하는 구조라서, 밖에서 누가 만지기 힘든 편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계산대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계산대가 “딩” 소리 같은 걸 낼 줄 알았는데, 어떤 경고음도 없었다. 대신 아주 작게, 아주 느리게 프린터가 한 번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종이가 나오진 않았다. 딱 ‘준비’만 하는 느낌.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매장 뒤쪽 진열대 쪽이 더 어둡게 보였다. 조명이 꺼진 게 아니라, 눈이 적응하는 속도가 느려지는 느낌. 손에 쥔 열쇠가 차갑게 느껴졌고, 등 뒤가 서늘해졌다. 계산대 화면은 계속 켜져 있었고, 나는 전원 버튼을 눌러 꺼 보려다가 멈칫했다. 버튼을 누르면 전원이 완전히 떨어져야 하는데, 내가 눌렀다는 확신이 드는 감각이 없었다. 손가락은 움직인 것 같은데, 버튼이 눌리지 않은 것 같은 미묘함. 마치 버튼이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결국 나는 그냥 점검등을 다시 켜고 확인하기로 했다. 점검등 스위치를 켜는 순간, 매장 전체가 다시 밝아지면서 그 이상한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점검등이 다시 켜졌을 때 계산대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밝은 조명 아래서 보면 전광판에 아무 글자도 뜨지 않았는데도, 켜짐 상태의 은빛 반사가 계속 보였다. 내가 다시 전원 버튼을 누르자 그제야 화면이 꺼졌고, 동시에 프린터 소리도 딱 멈췄다. 너무 늦게 꺼진 게 아니라, 꺼질 타이밍을 찾고 있다가 “아, 이제야” 꺼지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기록을 남겼다. 전기 문제일 수 있으니 본사에 문의하고, 매장 관리 앱에도 “점검등 소등 후 계산대만 전원 켜짐”이라고 적었다. 다음 날 기술 기사님이 와서 확인하더니 배선이나 접점 쪽을 보며 “간헐적으로 그런 현상 있을 수 있다”는 말만 하고 갔다. 근데 이상하게도, 기사가 나간 뒤에도 나는 같은 꿈을 꿨다. 점검등이 꺼지는 장면이 눈앞에서 반복되고, 계산대 불빛이 어둠 속에서 더 또렷해지는 꿈. 꿈인데도 손끝이 시리게 느껴질 정도로 생생했다.

며칠 뒤엔 내 근무 시간에 또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번엔 점검등을 끄기 전에 계산대를 먼저 확인해뒀는데, 아무것도 없던 화면이 갑자기 아주 약하게 켜졌다. 딱 한 번, 정말 짧게. 그리고 바로 꺼졌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이상하게도 계산대 뒤쪽이 아니라, 계산대 ‘앞’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것 같은 착각을 했다. 물론 실제로 누가 말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점검등이 꺼진 뒤에 계산대만 조용히 켜져 있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만 계속 켜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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