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내 차 유리창에 김이 찼다
지하주차장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내 차 유리창에 김이 찼다. 정확히 말하면, 비 오는 날도 아닌데도 그렇고, 난방을 켜지도 않았는데도 운전석 쪽 유리만 마치 안쪽에서 숨이 새어 나오는 것처럼 서서히 하얗게 번졌다. 처음엔 습기겠지, 어차피 세차하고 들어오면 그럴 때도 있나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근데 문제가 생긴 건 “타이밍”이 너무 일정했기 때문이다. 퇴근해서 지하로 내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공기가 확 바뀌는 느낌이 있었고, 그때마다 주차 칸 사이로 바람이 한 번 크게 훑고 지나갔다. 그 바람이 지나간 뒤 한 10초쯤, 유리창 가장자리에 김이 먼저 피었다. 그리고 어느새 가운데까지 번져서, 바람이 끝나면 김도 같이 멈추는 것 같았다.
처음엔 그냥 내 차 컨디션 문제라고 생각했다. 차 내부에 무슨 물이 고였나, 에어컨 필터가 젖어 있나, 유리 표면에 얼룩이 남아 있나. 그래서 제습제도 넣고, 창문 안쪽을 닦고, 시동을 끄고 나오는 시간을 바꿔봤다. 근데 바람이 불어오는 패턴은 그대로였고, 김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창문을 닫고도 바람을 막아도, 유리 안쪽에서 서서히 올라오는 느낌은 똑같았다.
어느 날은 너무 이상해서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어봤다. 퇴근 시간이 돼 지하로 내려가 주차하고, 그대로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 멀리서 굴러오는 관리차 바퀴 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공기가 “후-” 하고 한 번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운전석 유리창 하단에 얇은 서리 같은 게 생기더니, 금방 손바닥 크기만큼 번져서 하얀 김막이 됐다. 내가 운전석에 앉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 다음부터는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쉽게 흔들린다. 괜히 겁을 먹고, 괜히 상상력이 커진다. 나는 차 안에 누가 숨어 있나, 누가 손을 대고 있는 건가, 혹은 누군가 일부러 김을 내는 건가 별별 생각을 했다. 그래서 주차장 CCTV가 있는지 확인했는데, 지하 1층은 각 구역이 사각지대가 많다고 하더라. 대신 관리실 앞 복도에 카메라가 하나 보이긴 했지만, 내 차 위치는 화면 밖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 주에 같은 시간, 같은 칸에 주차하면서도 자세히 보려고 마음먹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유리창에 김이 찼고, 항상 같은 자리였다. 특히 운전석 쪽 유리창 모서리에서 먼저 올라오는 게, 단순한 결로라기보단 어딘가가 닿았는데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밤에는 더 선명했는데, 김이 생겼다가 사라질 때 유리 표면에 뿌옇게 자국 같은 게 남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자세히 보면 “글”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 눈이 만들어낸 착각일 수도 있는데, 그 경계가 자꾸 아슬아슬했다.
그런데 더 웃긴 건 바람이 오지 않는 날엔 김이 안 찬다는 거였다. 비가 오거나 기온이 내려가는 날은 오히려 덜했다. 반대로 기온이 크게 변하지 않은 날에도, 그 바람이 “한 번” 들어오면 김은 “한 번” 생겼다. 나는 주차장에 있는 환기구 위치를 떠올려 봤다. 바람이 들어오는 경로가 어딘가 정해져 있고, 그 경로가 매번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내 차만 유독 반응하는 게,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어느 날 관리실에 물어봤다. “지하에 바람 나오는 구간이 어디쯤인지, 혹시 환기나 덕트가 고장 나면 그런 결로가 생길 수 있는지” 같은 말로 조심스럽게. 관리자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웃더니, “그 시간대에 바람이 한번 크게 도는 건 있어요. 청소할 때나 시스템 돌면 그렇게 느껴질 수 있고요”라고 했다. 근데 그 말이 이상하게 찜찜했다. 시스템이 돌면 바람이 한번 크게 도는 건 이해가 되는데, 왜 하필 내 차 유리만 매번 같은 모양으로 김이 피는 걸까.
그날 이후로 나는 차를 조금 다르게 세워봤다. 같은 층이지만 한 칸 옆으로 옮기고, 유리창 방향도 살짝 바꿨다. 그 다음 퇴근, 엘리베이터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다시 꺾였고, 이번엔 예상과 달리 김이 피지 않았다. 적어도 한동안은. 그런데 바람이 지나간 뒤, 아까처럼 유리 안쪽에서 뭔가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더니, 몇 분 뒤에야 유리 모서리 쪽이 아주 얇게 뿌옇게 변했다. 이번엔 양이 작았다. 마치 누가 매번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이번엔 자리가 비어서 잠깐만 확인하고 지나간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도 같은 일이 있었다. 지하주차장 바람이 불어올 때 유리창에 김이 차오르는데, 유난히 이번엔 지속 시간이 길었다. 김막이 사라지기 전에,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리 표면에 손자국 같은 둥근 자국이 맺혔다. 내가 닿은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김이 걷히고 나서야, 유리 안쪽에 아주 얇은 습기 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 자국 끝이 이상하게도 내 운전석 정면을 향해 있었다.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그 바람을 “느낀” 건지, 아니면 그 바람이 나를 “찾는” 건지… 아직도 그 경계가 잘 안 지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