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말을 중간에 끊고 한 번만 웃었어
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말을 중간에 끊고 한 번만 웃었어. 그날도 별일 없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그 웃음이 계속 뒤통수에 붙어버린 느낌이 들더라. 나는 목적지 주소를 말하려고 입을 열었고, 기사님은 대답 대신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한 번 쳐다보더니 바로 내 말을 가로챘어. 그리고는 딱 한 번, 웃었지. 크게도 아니고, 즐겁다는 느낌도 아닌데… 그렇다고 불쾌하진 않았어. 대신 그 웃음이 너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처럼 들렸어.
처음엔 그냥 운전 피곤하신가 보다 했어. 나는 “여기서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하며 다시 설명하려 했는데, 기사님은 핸들을 아주 조금만 꺾었어. 속도도 그대로였고, 차선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내가 하려던 ‘오른쪽’이란 말이 입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내비 화면이 살짝 어긋난 것처럼 보였거든. 그 순간만큼은 내 머릿속 설명이 기사님 귀에 안 들어간 게 아니라, 이미 누군가가 대신 말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기사님, 혹시 길 잘못 들면….” 내가 조심스럽게 덧붙이자, 기사님은 또 한 번만 고개를 까딱했어. 말은 안 했는데 눈빛이 내 뒤쪽, 그러니까 조수석 뒷자리 쪽을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어. 나는 당연히 거울도 없고, 그쪽을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선이 닿은 곳이 있어서, 본능적으로 그 방향을 짧게 확인하게 되더라. 택시 내부는 조용했고, 창문 밖 풍경만 지나갔어.
나는 별 생각 없이 다시 목적지를 불렀어. 주소를 또박또박 말했는데, 기사님이 그제야 “아, 그거” 하고 짧게 답했어.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 “그거 말고요. 그냥 그쪽이라고 했잖아요”라는 뉘앙스였거든. 난 그 말을 전혀 한 적이 없었는데. ‘그쪽’이라고 말한 사람은 나였다고 생각했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애매하게 비어 있었어. 마치 내가 말한 것의 앞부분만 지워진 것처럼. 그래서 더 불안해졌지.
택시가 신호를 기다릴 때, 기사님이 룸미러를 한 번 올려다봤어. 근데 룸미러는 운전석 바로 뒤를 비추는 거잖아. 그런데 기사님은 뒤를 보는데, 내 얼굴을 보듯이 초점을 맞추는 느낌이 들었어. 그 시선이 ‘나’를 향해 있는 것 같다가도, 동시에 ‘나 말고’ 다른 걸 확인하는 것 같았어. 나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어. 괜히 말을 걸면 더 꼬일 것 같아서.
한참 뒤에야 기사님이 운전대에서 손을 살짝 떼고, 조수석 쪽 송풍구 옆에 손을 뻗었어. 뭔가를 만지는데, 그게 지갑이나 충전기라기엔 너무 빠르고 조용했어. 그리고 다시 한 번 웃지. 처음처럼 딱 한 번. “이 근처 맞죠?” 하면서 질문을 하던데, 난 이미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하고 “네”라고 했어. 그런데 그 ‘네’가 내 입에서 나온 순간, 기사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더라. 기분 나쁘게 굳은 게 아니라, 안심한 사람처럼 굳는 표정이었어.
그때 갑자기, 내 휴대폰이 진동했어. 메시지도 없고 알림도 없는데 그냥 진동만 한 번. 화면을 켜보니까 ‘부재중 전화’도 없었고, 누가 보낸 메시지도 없었어. 그런데 잠깐 동안 통화 기록에 뭔가가 떠올랐다 사라졌어. 아주 짧게, 글자 몇 개만 보였는데 내가 읽기도 전에 화면이 새까맣게 꺼졌어. 나는 혹시 결제나 광고 같은 거려니 했는데, 그 짧은 순간에 확실히 느꼈던 건… 통화 상대 이름이 내 이름이랑 비슷했다는 거야. 같은 글자 조합. 내가 내가를 부르는 느낌 같은 거.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리려는데, 기사님이 갑자기 “아, 기다리세요” 하고 말했어. 나는 “네?” 하고 되물었고, 기사님은 창문 밖을 보면서 “저기요. 잠깐만요”라고 했어. 그런데 내가 봐야 할 ‘저기’가 어디인지 설명을 안 해. 그냥 가리키기만 했지. 주변은 그냥 도로랑 가로등이었어. 아무도 없는데, 기사님 손끝이 특정한 한 지점에 멈추더라. 그리고 아주 낮게, 마치 내가 듣지 못한 척 하라는 듯이 “말 끊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덧붙였어.
나는 기사님을 쳐다봤어. 그 순간 기사님은 내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않았고, 또 조수석 뒷자리 쪽을 잠깐 확인했어. 그리고 계산은 카드로 하고 싶다고 하니까, 기계는 자연스럽게 결제창으로 넘어갔는데도 이상하게 승인 시간이 길었어. 결제가 끝나자마자 영수증이 나오긴 했는데, 영수증 상단에 적힌 문구가 평소랑 달랐어. 정확히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뭔가 ‘확인’ 같은 단어가 들어가 있었던 것 같아. 그런 영수증 본 적이 없거든.
택시에서 내린 뒤에도 한동안 걸음이 느려졌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 이상하게도 그 택시의 뒷자리, 그 공간이 자꾸 내 옆자리처럼 느껴졌어. 무엇보다 기사님이 내 말을 중간에 끊고 한 번만 웃었던 그 타이밍이, 지금 생각해도 딱 맞물려. 마치 내가 아직 말하기 전에 누군가가 먼저 ‘알아버린’ 것처럼. 그날 이후로 나는 주소를 말할 때 습관처럼 문장을 길게 늘리려 해. 짧게 말하면… 누군가가 또 내 앞에서 먼저 웃을까 봐, 아직도 그게 무섭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