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서 우유팩이 매일 다른 날짜로 유통기한이 바뀌어 있었다
원룸에서 우유팩이 매일 다른 날짜로 유통기한이 바뀌어 있었다.
사실 처음엔 별거 아니라 생각했어. 편의점에서 우유를 사다 두고, 냉장고 문쪽 선반 맨 위에 쌓아두는 편이거든. 평소엔 유통기한이 적혀 있든 말든 그냥 날짜 지나면 버리는데, 어느 날부터 내가 분명히 똑같은 팩을 봤는데도 날짜만 매번 다르게 바뀌어 있더라.
처음 발견한 날은 월요일이었어. 퇴근하고 와서 아침에 마실 용도로 냉장고를 열었는데, 내가 전날 밤에 꺼내놓은 우유팩이 딱 한 장 더 있었지. 문제는 그게 “어제” 봤던 날짜랑 다르다는 거야. 어제는 3일 뒤 날짜였는데, 오늘은 이틀 뒤로 바뀌어 있었어. 포장지에 손대지도 않았고, 냉장고 문 열고 닫을 때 다른 팩이 섞일 일도 없는데, 날짜만 바뀐 거지.
나는 일단 착각인가 싶어서 냉장고 문을 열어두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어. 혹시 내가 전날에 산 다른 팩이 뒤에 숨어있던 건가, 아니면 내가 바닥에 흘려놓은 걸 정리하다가 섞어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냉장고 선반에 남은 우유팩들은 전부 똑같은 두께와 같은 브랜드였고, 봉투 자국이나 구김도 비슷했어. 그러니까 “다른 팩이 들어온 것”으로 보기엔 이상하게 고정된 느낌이 있었어.
그 다음 날, 정확히 화요일 아침에 다시 확인했어. 전날 저녁에 퇴근하면서 냉장고 앞에서 우유를 눈에 띄게 정렬해놨거든. 왼쪽 끝부터 차례대로, 라벨이 보이게. 그런데 오전에 우유를 꺼내려는데, 맨 오른쪽에 있던 팩만 유통기한이 한 칸씩 밀린 것처럼 바뀌어 있었어. 날짜 숫자가 바뀌는 것도 그렇지만, 종이 인쇄가 아니라 마치 잉크가 다시 찍히는 것처럼 또렷하게 달라지는 느낌이었어. “오늘은 며칠 뒤까지”라는 부분이 매일 달라져 있더라.
사실 그때부터 좀 불안해지긴 했는데, 바로 버리면 끝나는 문제니까 일단은 조심해서 마셨어. “설마 상온에 노출돼서 상태가 이상해진 건 아니겠지” 싶어서 냉장고 온도도 확인하고, 냉장고 안에 있는 다른 식품도 살펴봤어. 우유 말고도 두부나 음료는 날짜가 멀쩡했거든. 그러면 왜 유독 우유팩만? 그 질문이 계속 머리에 남았어.
수요일엔 더 확실하게 확인하려고 메모도 남겼어. 냉장고 문 바깥에 작은 종이 붙여서 “오늘 날짜: 7월 20일” 이런 식으로 적어두고, 실제로 우유팩에 찍힌 날짜랑 비교했지. 그런데 저녁에 확인해보니 종이에 적어둔 날짜랑 우유팩에 찍힌 날짜가 이미 달라져 있었어. 메모는 그대로인데, 팩 날짜만 바뀌어 있는 거지. 누가 와서 바꿔치기했나 싶어도, 나는 원룸이라 현관 비밀번호도 내가 바꾸고 다니고, 택배도 방 안에 들여놓는 편이라 외부인이 들어갈 구멍이 거의 없었어.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내가 바꿔치기를 의심하면서도 “어떻게”가 안 떠올랐다는 거야. 냉장고 문을 열면 팩은 한 번에 보이거든. 누군가가 날짜만 바꿀 거면 최소한 종이 포장을 뜯지 않는 이상 불가능해 보이잖아. 그런데 팩 모서리나 뚜껑 열림 자국 같은 건 하나도 없었고, 접착면도 똑같이 매끈했어. 마치 날짜 자체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날이 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 같았어.
목요일 밤엔 그냥 포기하고 기록을 시작했어. “오늘 유통기한: 몇 일 뒤” 이렇게 숫자만 적어두고, 다음 날 아침에 확인하는 거지. 그날은 날짜가 더 짧아지는 게 아니라, 어떤 날은 더 길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 그러니까 단순히 내가 실수로 앞뒤를 섞어놓은 게 아니라, 우유팩이 ‘시간표’를 다시 맞추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 시간표가 매번 아주 일정하게 움직였어. 하루에 한 번, 정확히 내가 냉장고 문을 열기 직전쯤에 맞춰지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금요일 아침. 나는 우유팩을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전부 다른 곳으로 옮겨놨어. 그래도 맨 앞에 있던 그 팩만 유통기한이 바뀌어 있었고, 이번엔 날짜가 내가 메모해둔 날짜와 완전히 엇갈렸어.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나는 ‘사라지는’ 쪽이 아니라 ‘바뀌는’ 쪽에 더 소름이 돋았어. 누군가가 시간을 고치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시간을 확인하는 방식 자체를 건드리는 것 같아서. 그날 이후로 우유를 아예 사지 않게 됐는데, 냉장고를 열 때마다 선반 위에 남아있던 팩 자리가 이상하게 비지 않았어. 마치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날짜가, 언젠가는 또 다른 숫자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