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의사 가운에 묻은 먼지가 유독 내 신발로 옮겨져
병원에서 의사 가운에 묻은 먼지가 유독 내 신발로 옮겨져
그날도 별일 없을 줄 알았다. 진료를 보러 갔는데 대기 시간이 길어서 그냥 앉아 있었고, 나는 보통처럼 구두를 정리하려고 발을 살짝 움직였다. 그런데 접수 창구 쪽에서 약간의 소란이 나더니, 누군가 “잠깐만요” 하고 뒤로 빠졌다. 그때 의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복도 쪽을 지나가면서 가운 자락을 스치듯 흔들었고, 나는 그 순간 바닥이 아니라 내 신발 앞코에 먼지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처음엔 기분 탓인 줄 알았다. 병원 바닥이야 늘 먼지 같은 게 떠다니니까, 내게도 그중 일부가 옮겨졌겠지 싶었다. 근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의사는 환자를 보러 들어갔다가 잠깐 나와서 다시 가운을 정리하려고 소매를 가볍게 털었다. 그 “털기” 동작이 끝나자마자, 내 신발의 앞쪽부터 천천히 하얀 가루가 스르르 퍼지듯 쌓였다.
나는 황당해서 신발을 들여다봤다. 가루는 그냥 먼지라기엔 색이 좀 달랐다. 형광등 아래에서 은근히 빛이 도는 회백색 같은 느낌이었고, 손가락으로 문질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내 신발이 있는 자리만 유독 더 쌓였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의 신발은 멀쩡했는데, 나는 눈치를 보느라 가만히 있었다가 또 한 번 복도에서 가운 자락이 스친 순간, 같은 패턴으로 다시 떨어졌다.
“저기요, 의사 선생님 가운이 좀… 많이 묻었나 봐요?” 하고 아무 말이나 했다가,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인지 상대가 못 들은 것 같았다. 그 뒤로 진료실이 오가는 소리가 커질 때마다, 내 신발 앞코 근처에 가루가 생겼다. 마치 누가 보이지 않게 바닥에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가운에서 떨어진 게 공중을 타서 내 쪽으로만 미세하게 날아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게 미친 착각일까 봐,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숙여 신발을 확인했다.
더 소름 돋는 건 시간대였다. 진료가 시작될 때는 계속 환자들이 오가니까 움직임이 많잖아. 그런데 의사들이 사람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내 신발 쪽으로만 먼지가 “정해진 루트”처럼 붙는 느낌이 들었다. 가운을 툭 치거나 팔을 걷어 올리는 동작이 있을 때, 먼지는 항상 내 신발 앞부분부터 시작됐다. 뒤꿈치 쪽은 거의 남아 있었고, 마치 신발의 특정 각도에만 달라붙는 것 같았다.
참고로 나는 청소 잘 안 되는 집에서도 먼지가 그렇게까지 “집중”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괜히 생각이 커졌다. 혹시 내 신발이 어떤 정전기 같은 걸 받아서, 병원 내 공기 중 입자들이 끌려오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그것도 납득이 잘 안 됐다. 옆사람이 같은 바닥을 밟고 있고, 같은 공기를 마시는데 왜 하필 내 신발 앞코만 유독 반응하는지. 나는 발을 옆으로 옮겨봤다. 그러자 먼지가 쌓인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고, 새로 옮긴 발자리는 한동안 깨끗했다가, 의사가 또 가운을 정리할 때쯤 다시 같은 형태로 쌓였다.
진료를 마치고 접수 쪽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혹시나 싶어서 구두창을 가까이 살펴봤다. 내 눈으로 보기엔 분명히 “먼지”인데, 형태가 너무 규칙적이었다. 딱 신발 앞쪽의 테두리 안에만 번지는 것처럼 보였고, 손톱으로 긁어도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직원에게 말하려 했는데, “혹시 외부에서 묻었나” 같은 말을 들을까 봐 입을 다물었다. 집에 가서 닦으려는데, 마른 천으로 문질러도 계속 남았다. 세제를 써도, 물로 씻어도, 마지막엔 물기만 번지고 가루는 더 얇게 퍼질 뿐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그날 밤 꿈을 꿨다. 병원 복도가 길게 늘어져 있는데, 어디선가 가운이 바람에 흔들리며 하얀 알갱이가 떨어져 내려왔다. 나는 그 알갱이를 피하려고 발을 옮기는데, 이상하게도 발끝이 아닌 신발의 특정 부분만 계속 먼저 맞았다. 꿈에서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선생님 가운은 환자랑 같이 움직여야 해요” 같은 말이었는데도, 누구인지 얼굴은 안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신발을 다시 봤다. 어젯밤엔 분명히 남아 있던 자국이, 이상하게도 내 신발에서만 옅어져 있었고 대신 바닥 쪽에 가느다란 자국처럼 번져 있었다.
지금도 그게 단순히 먼지가 옮겨간 걸로 끝내면 너무 허무하다고 느껴진다. 나는 병원 바닥을 밟았고, 의사는 가운을 털었고, 바람이 불었고,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면 될지도 모른다. 근데 왜 매번, 딱 내 신발 앞코부터 시작했는지 그 타이밍이 자꾸만 남는다. 병원에서 나올 때 창문으로 보인 형광등 빛이, 마치 가루가 다시 모여들 준비를 하는 것처럼 깜빡였던 게…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