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목적지를 말했는데 기사님이 고개만 끄덕이고 그대로 갔어
택시에서 목적지를 말했는데 기사님이 고개만 끄덕이고 그대로 갔어. 처음엔 그냥 손님 말이 들리지 않았나 싶어서 “아, 저기요” 하고 다시 말했거든. 근데 기사님은 내 쪽을 보지도 않고, 깜빡이도 없이 차를 몰아가더라. 지도 앱 화면을 슬쩍 보니까 내가 말한 방향이랑 반대로 돌아가고 있었어.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는데, 이상하게도 바로 내리거나 항의할 용기는 안 나더라. 그냥… 계속 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난 보통 택시 타면 목적지만 딱 말하고 조용히 있는 편이야. 그날도 약속 장소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는데, 기사님은 “네”도 “알겠습니다”도 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였어. 그러고는 앞만 보면서 운전했지. 차가 신호대기할 때도 기사님이 휴대폰을 보거나 백미러를 확인하는 기색이 없었어. 마치 내 말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라는 듯한 태연함이 있었거든. 그런데 막상 도로를 타는 방향이 이상했어. 내가 알던 길이 아니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큰길로 들어섰거든.
다시 한 번 확인하려고 창밖을 보며 “아저씨, 여기 말고 아까 말한 길로 가주시면 안 돼요?”라고 했더니, 기사님이 그제야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어. “네, 가고 있어요.” 그 말이 문제였어. “어디로요?”라고 되묻기 전에, 기사님이 속도를 조금 더 올리더라. 신호등이 바뀌는 것도 무심하게 통과하는 느낌이었고, 차선 변경도 필요한 타이밍보다 한 박자 늦게 들어갔어. 운전이 서툰 게 아니라, 일부러 늦추는 것 같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그때부터 계속 기사님 눈을 쳐다보려고 했어. 근데 신기하게도 기사님 시선은 항상 정면이었고, 내 얼굴이나 입 모양을 확인하는 순간이 전혀 없었어. 마치 내가 말한 목적지가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 “다른 의미”로 들어가 있는 것처럼. 그래서 더 무서웠어. 내가 뭘 잘못 말했나 싶어 입을 다물었는데, 그 침묵이 오히려 상황을 더 이상하게 만들었지. 택시는 계속 목적지로 가는 경로가 아니라, 점점 더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있었거든.
중간에 도로 표지판이 나왔는데, 내가 말한 지역 이름은 보이지 않았어. 대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방향 표기가 붙어 있었고, 그 표기를 따라가면 “어디론가 연결되는 길”만 계속 이어졌어.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교통카드나 지갑을 만지작거릴 정도로 긴장했는데, 기사님은 내 반응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운전만 했어. 차 안 공기가 답답해질 정도로 조용했고, 라디오도 꺼져 있었어. 시동 소리랑 바퀴 지나가는 소리만 들리는데, 그게 더 크게 느껴졌어.
순간 생각이 들었어. 혹시 기사님이 내 목적지를 정확히 들었는데, 일부러 “그 목적지”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건가? 그런데 그런 범죄라면 보통 겁주고 협박하거나, 이상한 말로 유도하거나, 정차해서 요구하는 타이밍이 있잖아. 근데 이 택시는 이상할 정도로 그냥 달렸어. 정차를 하지 않고, 전화도 하지 않고, 내게 묻지도 않았어.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어.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 단계처럼, 계속 앞으로만 가는 느낌.
나는 결국 내비게이션을 켰어. 화면을 보고 있어도 기사님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방향이 다르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내비가 3분 뒤 돌아가라고 경고를 띄우는데도, 택시는 그 경고랑 상관없이 직진했어. 그때 기사님이 오른손으로 핸들을 아주 살짝 조정하면서, 내가 말한 목적지와 관련 없는 도로로 들어가더라. 신호도 없는 도로였고, 주변에 가로등이 끊기기 시작했어. 차 안이 더 어두워지면서, 기사님 얼굴 윤곽만 희미하게 보였어.
그리고 그때, 기사님이 딱 한 번 더 내 이름을 물었어. 내가 말한 적 없는 이름인데, 내 운전석 쪽을 보며 “여기서 내리실 건가요?”라고 묻더라고. 나는 “아니요, 제가 말한 곳으로 가요. 제 이름은…” 하고 말하려 했는데, 기분 나쁘게도 말끝이 끊겼어. 기사님이 끄덕이면서 “알겠어요”라고 했는데, 그 말투가 아까의 그 고개 끄덕임이랑 똑같았어. 마치 내가 뭘 말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그 순간 깨달은 게 있었어. 내비 화면을 켰던 게 아니라, 내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손동작이나 숨소리, 머뭇거림을 보고 상황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 흐름을 통제하고 있었던 거 같더라.
나는 급하게 “결제는 카드로 할게요. 영수증 문자로 보내주세요”라고 말했어. 일부러 크게 들리게, 그리고 기사님이 “대화의 주도권”을 잃게 만들려고. 기사님은 이상하게도 그 말에 바로 반응했어. 하지만 반응이라기보다, 더 빨리 달리는 쪽으로만 움직였지. 그럼에도 차는 곧 정차했어. 그런데 내가 말한 목적지 근처가 아니라, 허름한 골목 입구 같은 데였어. 가로등 아래가 아니라, 그림자 쪽에 차를 세우는 느낌. 문을 열어달라고 하기 전에 기사님이 먼저 “내리세요”라고 말했는데, 그 한마디가 너무 짧고 너무 단정해서 오히려 말이 안 되는 현실감이 들었어.
나는 문 손잡이를 잡지 않고 버티다가, 급하게 결제부터 눌렀어. 내 카드가 결제되는 진동 소리가 나고, 영수증이 문자로 전송된다고 뜨는 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문을 열고 내렸거든. 내려서 보니 차가 바로 다시 출발하지 않고, 한 박자 멈췄다가 천천히 유턴을 하더라. 운전석 뒤로 얼굴을 다시 확인할 새도 없이 골목을 빠져 사라졌어. 돌아가는 길에 누가 도와주겠지 싶었는데, 그 골목은 이상하게도 주변에 사람 그림자가 없었어. 버스 정류장도 멀고, 택시 잡기도 어려운 위치였고. 그날 밤 내내 생각이 들었어. 기사님이 진짜로 내 목적지를 “틀리게” 들은 건지, 아니면 애초에 내 말이 이미 누군가의 시나리오 안에 들어가 있던 건지. 그리고 지금도 가끔 택시에서 목적지를 말하고 나면, 기사님이 고개만 끄덕이고 조용히 출발하는 순간이 떠올라서… 괜히 숨을 삼키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