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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기사님이 내가 내린 곳을 ‘기억’하는 듯 말했어

2026-08-02 08:29:11 조회 7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택시에서 기사님이 내가 내린 곳을 ‘기억’하는 듯 말했어. 처음엔 그냥 대화가 빠르게 이어진 건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내린 곳을 기사님이 먼저 정확히 짚더라. 그날은 비도 오고 늦은 시간이었고, 나는 목적지 앞에서 그냥 대충 “여기서 내려주세요” 하고 내렸거든. 그런데 내리자마자 기사님이 창문 반쯤 내리면서 아주 조용하게 한 마디를 했어.

“여기서 내리신다고 했죠. 그런데요, 한 번 더 오시게 될 거예요.”

순간 나는 웃어넘겼어. 택시 기사님들이 목적지 가는 길에 이런저런 말 건네는 경우야 많잖아. “네?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하니까 기사님은 손을 핸들 위에 올린 채로, 계기판을 보지도 않고도 내가 서 있는 쪽을 향해서 말을 이어갔어. “아까도 여기서 내리시고, 근처에서 잠깐 멈추셨잖아요. 비 오는데 우산도 안 쓰시고.”

그 말이 너무 구체적이라서, 웃고 넘길 타이밍을 놓쳐버렸어. 나는 방금 내린 사람이 맞는데, 기사님이 말한 ‘아까’라는 건 내가 아까 어디를 갔는지와는 연결이 안 되거든. 내가 탄 건 그날 한 번뿐이었고, 목적지도 딱 그 동네 한 번이었어. 나는 뒤돌아보며 “기사님, 방금 저 여기서 내렸는데요?”라고 했는데, 기사님 표정이 그제야 살짝 굳더라.

“아뇨. 당신은 오늘만 타신 게 아니에요.”

이상한 건, 기사님이 그 말을 할 때 목소리가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겁주려는 말투도 아니었어. 그냥 습관처럼 정리해 말하는 느낌이었거든. 나는 순간 소름이 올라왔지만, 동시에 어딘가 합리적인 설명이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여기 말고 다른 데도 들렀나요?” 하고 물었어. 기사님은 잠깐 침묵하더니,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은 채로 속도를 아주 조금만 줄였어. 그리고 내릴 때 봤던 길을 가리키듯 말했지.

“편의점 앞. 그때는 당신이 먼저 문을 열었고, ‘여기 맞나요’라고 물었어요. 근데 기억이 안 나세요?”

나는 그 편의점도 그날 분명히 지나쳤고, 내린 뒤에 발걸음을 옮기며 잠깐 시야에 들어온 걸 기억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 기사님이 말한 “문을 열었고, 물었고” 같은 행동들은 내가 실제로 한 적이 없어. 나는 택시 안에서 목적지만 말하고 바로 내렸거든. 게다가 나는 기사님에게 “여기 맞나요”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어. 내가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순간의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처럼 행동한 거잖아.

그래서 나는 그냥 급하게 “기사님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 저는 처음 내리는 곳인데요”라고 말했어. 그랬더니 기사님이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돌려서, 거울로 나를 확인하듯 잠깐 시선을 줬어. 그리고 아주 짧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이렇게 말했어. “기억은, 제가 해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비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처럼 귀가 먹먹해졌어.

내가 뭘 더 물어볼 틈도 없이 택시는 앞으로 더 나가버렸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 멈춰 있었어. 휴대폰을 꺼내 확인도 했고, 내 이동 기록도 뒤져봤거든. 그날 내가 택시를 탄 시간, 목적지, 하차 시각. 모든 게 정상적으로 찍혀 있었어. 그런데도 기사님이 말한 디테일이 계속 걸렸어. 특히 “아까도 여기서 내렸다”는 부분이. 마치 내가 이미 한 번 겪었고, 이번엔 그냥 다시 반복되는 것처럼 들렸지.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다가, 이상한 장면 하나가 계속 떠올랐어. 내가 내린 직후, 발을 내딛기 전에 주변을 한번 훑어봤는데… 그때 분명히 누가 서 있었던 자리가 있었거든. 근데 택시에서 내린 뒤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어. 그때는 비 오는 새벽이라 흐릿해서 그냥 착각인 줄 알았는데, 기사님이 말한 “당신은 아까도 여기서 내리셨다”랑 겹치면서 머리가 띵해졌어.

며칠 뒤, 나는 그 편의점 앞을 지나가게 됐어. 우산을 챙겨 들고 있었고, 그날 기사님이 말했던 조건들은 거의 다 내가 피하고 있었거든. 하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멈칫했어. 마치 누군가가 내 행동을 먼저 정해놓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나는 그냥 고개를 돌리고,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만 확인했어. 그런데 그 유리창 속에, 택시의 그림자가 잠깐 스치듯 나타났다 사라졌어. 그리고 내가 들었던 말이 다시 떠올랐지. “기억은, 제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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