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접수 후 대기했는데 내 차트가 먼저 사라졌어
병원에서 접수 후 대기했는데 내 차트가 먼저 사라졌어. 그날도 평소처럼 접수대에서 번호표 받고, 진료 보기 전까지 대기하는 줄 알았지. 그런데 접수 끝나고 나서부터 이상하더라. 직원이 내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내 차트가 먼저 사라져 버린 느낌이 들었어.
처음엔 그냥 바쁜 날인가 싶었어. 접수 창구에서 신분증이랑 문진표 제출하고, “대기실에서 번호 불러드릴게요”라고만 하더라. 나는 대기실 안쪽 벤치에 앉아서 잡지를 넘기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있는 직원들이 서류철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게 눈에 들어왔어. 분명 누군가가 내 서류를 들고 간 것 같은데, 정작 나는 호출도 안 받았고, 내 앞번호가 계속 지나가고 있었거든.
한 20분쯤 지났을까.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내 번호표를 흘끗 보더니 “저기요, 당신 차트 아직도 안 올라간 거예요?”라고 툭 물었어. 나는 “접수했는데요?”라고 했고, 그 사람은 “접수는 다 했는데, 실제로 진료실로 넘어간 건 아닌가 봐요”라며 고개를 저었지. 그 말이 별거 아닌 것처럼 들렸는데, 이상하게 심장이 빨라졌어.
그때 내가 들고 있던 번호표 뒷면에 적힌 시간들이 생각나. 보통은 접수 시간, 대기 예상 시간, 그리고 진료실 호출 방식이 적혀 있잖아. 그런데 내 번호표는 이상하게도 “담당 확인 중” 같은 문구로 몇 번이나 덧칠이 되어 있었어. 직원이 실수했나 싶었는데, 덧칠이 너무 여러 번이라 지워지지도 않고, 오히려 누가 계속 다시 체크하는 느낌이었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접수대로 가서 물었어. “아까 접수한 차트가 아직 진료실로 안 넘어간 건가요?”라고. 그랬더니 직원이 잠깐 멈칫하더니, 웃는 얼굴로 “네? 지금 올라가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말했어. 근데 그 말투가, 기다리라는 말 자체는 맞는데 ‘설명’이 아니라 ‘정리’에 가까웠어. 마치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걸 정정하는 것처럼.
잠시 뒤 간호사로 보이는 분이 대기실을 훑더니 내 쪽을 보았어. 그리고는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전화기 화면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지. 그 순간, 누군가가 내 차트였을 서류철을 들고 지나가는데, 내가 아는 두꺼운 표지랑 색이 똑같더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서류철의 끄트머리에 붙은 작은 라벨이, 내 이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 이름이었어. 나는 그걸 보고 소름이 돋았어. 분명 방금 전까진 내 거 같은데, 누군가 바꿔치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그 뒤로는 시간 감각이 흐려졌어. 나는 대기실에서 몇 번이나 시계를 확인했는데도, 기다린 시간이 이상할 만큼 길게 늘어졌거든. 그러다 결국 내가 다시 접수대로 갔을 때, 이번엔 직원이 “차트가 먼저 정리됐습니다”라는 말을 했어. “정리”라는 단어가 너무 차갑게 들렸어. 나는 “정리됐다는 게 어떤 뜻이에요? 제가 진료도 아직 못 봤는데요”라고 했더니, 직원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옆 서랍을 열더니 빈 자리만 보여주더라. 마치 처음부터 거기엔 없었던 것처럼.
그때 옆에서 다른 직원이 말없이 컴퓨터를 켰고, 화면을 잠깐 내 쪽으로 돌렸어. 날짜가 오늘로 되어 있는데, 내 이름 옆 칸이 깔끔하게 비어 있었어. 나는 “접수는 분명히 했는데요”라고 다시 말했지. 그러자 직원이 낮은 목소리로 “접수는 되셨는데, 차트가… 시스템에 반영이 늦어진 것 같습니다”라고 했어. 그런데 문제는 그 ‘늦어졌다’는 설명이 아니라, 그 순간에도 내 번호표가 호출 목록에서 계속 빠져 있다는 거였어. 직원들이 나를 부르기보단, 호출 버튼을 눌렀다가 다시 취소하는 걸 반복했거든.
나는 결국 진료실 문 앞까지 따라갔어.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안쪽에선 누군가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났어. 그런데 담당의가 내 이름을 부를 기미가 전혀 없었고, 대신 간호사가 “차트 다시 찾아볼게요”라고 말했어.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가 하얘지더라. ‘차트’는 이미 사라진 걸까? 아니면, 찾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또 바뀌는 걸까? 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
마지막으로 접수대에서 다시 안내를 받을 때, 그 직원이 내 번호표를 천천히 내려놓더니 “오늘은 접수 자체가 다른 동선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다시 안내드릴게요”라고 했어. 그런데 그 안내라는 게, 내 쪽에서 바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잠깐 기다리세요’만 계속 반복되는 느낌이었지. 나는 그때 확신했어. 내 차트는 누락된 게 아니라, 누군가가 먼저 치워버린 것 같다고. 그리고 그 치워버린 타이밍이, 내 차트가 진료실로 넘어가기 전에 딱 한 번씩 빠져나가는 흐름이었어. 병원 안에서 시간은 정확히 움직이는데, 내 것만은 이상하게 비껴가더라. 그래서 지금도 생각하면 가끔 마음이 철렁해. 내가 기다린 건 진료였는데, 누군가는 이미 ‘기록’을 지워버린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계속 남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