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로 산 전기포트 밑에 ‘환불’ 메모가 남아 있었다
중고거래로 산 전기포트 밑에 ‘환불’ 메모가 남아 있었다. 처음엔 그냥 다른 사람이 붙였다 떼다 만 거겠거니 했는데, 손잡이 만지던 순간부터 이상하게 찝찝함이 올라오더라. 포트는 새것처럼 반짝였고, 설명도 “거의 안 써서 저렴하게 드려요”라고 딱 적혀 있었는데, 바닥면 하단에 작은 종이 조각이 반쯤 붙어 있었거든.
집에 와서 바로 확인했어. 전원 켜기 전에 바닥부터 닦으려고 포트를 뒤집었는데,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종이 위 글씨였어. 검은 펜으로 대충 적힌 듯한 글자였고, 딱 가운데에 ‘환불’이라고만 크게 써져 있었지. 아래엔 날짜가 있었는데 너무 흐려서 잘 안 보였고, 나머지는 긁힌 흔적처럼 보였어. 처음엔 장난 같기도 했는데, 포트는 실사용 흔적이 거의 없었고 그 메모만 유독 진지하게 남아있다는 느낌이 강했어.
판매자한테 바로 물어볼까 하다가, 일단 사진 찍어서 더 자세히 봤다. 바닥면 종이가 완전히 떼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접착제가 아주 얇게 남아 있었어. 그 흔적이 “붙였다가 나중에 떼었는데 다시는 안 떼고 그냥 덮어둔” 느낌이었거든. 포트를 뒤집어 보면서 문득 ‘왜 환불’인지가 궁금해졌는데, 이상하게도 그 질문이 단순한 거래의 뒷이야기 수준을 넘어서 마음을 계속 건드렸어.
며칠 뒤에 처음으로 물을 끓였어. 물 넣고 버튼 누르자마자 잘 되더라. 그런데 끓는 동안 소리가 평소랑 다르게 한 번씩 ‘뚝’ 하고 끊겼어. 물론 전기제품이 원래 그런 경우도 있긴 하잖아. 근데 ‘뚝’ 하는 타이밍이 메모 아래 흐릿한 날짜와 비슷한 날에, 딱 한 번 떠오르는 그런 느낌이 들더라. 내가 날짜를 너무 신경 쓰고 있어서 착각일 수도 있는데, 그날 밤 잠깐 잠깐씩 포트 생각이 계속 났어.
다음 날은 아예 포트 내부를 확인했어. 스케일이 거의 없었고, 필터망도 깔끔해서 “새 것 맞나?” 싶을 정도였는데, 하단 연결부 주변에 아주 얇은 변색 자국이 보였어. 그게 물때라기보단, 무언가가 한 번 타고 난 자국 같았거든. 그래서 판매자 메시지 히스토리를 다시 뒤져봤는데, 내가 구매하기 직전에 다른 사람이 문의를 남긴 기록이 있더라.
거기엔 “가열이 중간에 멈추는 것 같아요. 불량이면 환불 가능할까요?” 같은 내용이 있었고, 판매자는 “정상인데 사용 환경 때문일 수 있어요. 작동은 확인했고요”라고 답했어. 그리고 그 다음에 내 구매가 들어간 거지. 솔직히 그때까진 크게 생각 안 했는데, 바닥 메모의 ‘환불’이 그 문의랑 묘하게 연결된 것 같아서 등줄기가 서늘해졌어. 혹시 판매자가 예민하게 대응하느라 급하게 수습한 흔적인가 싶고, 그 수습의 잔여물이 지금 내 손에 온 건가 싶더라.
그래서 결국 나는 판매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어. “바닥에 메모가 붙어 있던데 혹시 거래 중 이력이 있나요?”라고만 보냈는데, 답이 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 그리고 온 답은 짧았어. “그건 그냥 이전 사용자가 붙여둔 거예요. 제가 떼려고 했는데 잘 안 떨어져서 그냥 뒀어요”라고. 설명치고는 너무 단정적이었고, ‘환불’이라는 단어가 너무 직접적이라서 더 찜찜했어. 이전 사용자가 붙여뒀다 쳐도, 왜 하필 ‘환불’이냐는 거지.
그날 저녁, 포트를 세척하면서 다시 바닥을 들춰봤어. 종이 조각 아래로 더 얇은 다른 흔적이 있는 것 같았거든. 조명을 비추니까 아주 희미하게 글자가 더 보였어. 제대로 읽히진 않았지만, ‘교환/환불’ 같은 단어가 조합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긁힌 자국이 반복돼 있었어. 마치 누군가 테스트하고, 다시 포트를 돌려보내고, 또 확인하다가 지워진 흔적 같았지. 나는 그제야 “이게 그냥 장난이 아니라, 누군가 계속 손에 들고 고민하던 물건이었구나” 싶었어.
그 이후로 포트를 계속 쓰긴 했는데, 찜찜함은 그대로였어. 물 끓일 때마다 ‘뚝’ 소리가 한 번씩 더 크게 들리는 날이 있었고, 그때마다 바닥 메모가 눈앞에 떠올랐어. 어쩌면 내가 감정이입을 너무 한 걸 수도 있어. 그래도 이상한 건, 그 메모가 단순히 종이 하나로 끝나지 않고 내 구매 후에도 계속 신경을 붙잡는다는 거였어. 지금도 포트를 뒤집어 바닥을 닦을 때면, 손끝에 남은 접착제 자국이 마치 누군가의 손 온도를 기억하는 것처럼 느껴져.
결론은 간단해. 환불 메모가 “그냥 붙어 있던 것”인지, “어딘가에서 이미 한 번 실패한 흔적”인지 나는 끝까지 알 수가 없었어. 다만 그 단어 하나가 내 집에 들어와서, 평범한 물 끓이기까지도 이상하게 조심하게 만들었다는 건 확실해. 어쩌면 중고거래는 물건만 옮기는 게 아니라, 숨겨진 시간까지 같이 데려오는 걸지도 몰라. 그리고 바닥에 남은 ‘환불’은 결국, 내 차례가 언제 올지 알려주는 신호처럼 남아 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