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이름을 부르기 전에 이미 한숨부터 쉬었어
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이름을 부르기 전에 이미 한숨부터 쉬었어. 이상하게 그 한숨이 길었고, 도착지도 아직 말 안 했는데도 미리 지친 사람처럼 보이더라. 나는 그냥 늦은 밤이고, 비도 조금씩 오는데 기사님이 피곤한가 보다 하고 넘기려 했는데, 그때부터 이상한 감각이 계속 따라붙었어.
차에 타자마자 기사님이 거울을 보지도 않고 뒤를 슬쩍 봤어. 그 시선이 “손님 어디로 가세요” 같은 질문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 같았거든.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아, 여기서부터 가는데요”라고 말하려 했는데, 기사님이 먼저 내 입을 막듯이 낮게 한마디 했어. “오늘도… 늦었네.”
그 말이 너무 뜬금없어서, 나는 웃으면서 “네? 아는 사이세요?” 하고 되물었어. 그러자 기사님은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잠깐 도로 위를 보다가 아주 조용히 한숨을 한 번 더 쉬었어. 그리고 그때야 겨우 “이름은… 아직도 그대로지?” 같은 말을 입에 올렸는데, 나도 모르게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어.
내 이름을 말하기 직전이었거든. 기사님이 “○○씨…” 하고 부르려는 순간, 손가락으로 내 이름의 첫 글자라도 더듬는 것처럼 잠깐 멈칫했어. 그게 더 무서웠어. 마치 입 안에서 단어를 확인하는 과정 같았거든. 나는 그냥 실수거나 우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사님 눈빛이 너무 단정했어. “아직도 그 휴대폰 번호 쓰고 있지?” 같은 말까지 이어지더라.
나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는데, 기사님은 계속 운전만 했어. 내 반응을 묻는 듯 고개를 돌리진 않았고, 대신 내 쪽으로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기울이면서 말을 이어갔어. “지난번에 그랬잖아. 택시에서 내릴 때, 문 닫는 소리가 너무 크게 났어.” 나는 그 기억이 있어. 분명 그날은 내가 급하게 내리느라 문을 제대로 안 닫았고, 기사님이 “조심하세요” 하고 말했던 걸로 끝났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기사님은 그 뒤를 붙였어. “근데 그 소리 때문에… 누가 들렸어.” 여기서부터는 그냥 장난 같지 않았어. 차 안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진 느낌이 들었고, 창문에는 비가 얇게 번져 있는데도 실내만 정적이 깊어졌어. 나는 웃음이 나오려다 멈추고, “기사님, 무슨 소리세요?”라고 물었는데, 기사님은 대답 대신 속도를 줄였어.
속도를 줄인 이유가 신호였는지 도로 상황이었는지 잘 모르겠어. 그런데 그 순간 계기판 옆 시계가 이상하게 느껴졌어. 분명 탑승했을 때 시간 확인을 했는데, 다시 보니까 몇 분이 아니라 “방금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같은 숫자 구성으로 멈춰 있었어. 나는 손으로 시계를 보려다 멈췄어. 괜히 확인하면 더 커질 것 같아서.
기사님은 그제야 내 이름을 정확히 불렀어. 근데 이상하게 “부르는” 느낌이 아니라 “호명된” 느낌이었어. 내가 그 이름을 듣자마자, 등 뒤가 서늘해지면서 등줄기가 쭉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거든. 나는 그때부터 그냥 빨리 내리고 싶었는데, 문을 열려는 순간 잠금장치가 한 번 딸깍 걸리는 게 들렸어.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말이야.
나는 급하게 손을 움직였고, 그래도 열리진 않았어. 기사님은 그제야 짧게 말했어. “내려도 돼. 다만… 내가 부르기 전까진 타고 있어야 해.”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고 해도, 머릿속이 자꾸 하얘졌어. 결국 나는 “기사님,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라고 물었고, 기사님은 그냥 “처음부터 여기였잖아” 하고 웃지도 않은 채 말했어.
그 말을 끝으로 차가 갑자기 조용해졌어. 타이어 소리가 줄고 엔진음도 멀어지는 느낌이었는데, 도로는 그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았어.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긴 하는데, 가로등 불빛이 한 번 깜빡이고 나서 시간이 늘어진 것처럼 뭉개져 보이더라. 그리고 목적지가 뜨는 내비 화면에는 분명히 내가 말한 적 없는 장소 이름이 표시돼 있었어. 그 이름은 내가 예전에 한 번 가봤던 곳이었고, 다시 가려고도 한 적이 없는 곳이었어.
도착했을 때, 기사님은 아무렇지 않게 “내리세요”라고 했어. 그런데 문은 열리지 않았고, 대신 기사님이 내 쪽을 보며 한숨을 아주 천천히 내쉬었어. 마치 ‘또 왔네’ 같은 체념이었달까. 나는 그제야 깨달았어. 기사님이 내 이름을 부르기 전에 이미 한숨부터 쉬었던 이유가, 손님을 상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미 그 한숨의 다음 장면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