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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내 훈련일지에 없는 항목이 채워져 있었다

2026-08-05 20:29:11 조회 6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그날은 훈련일지에 적어야 할 게 딱 정해져 있는 날이었어요. 아침 점호 끝나고 작업복에 수통이랑 장갑 챙기고, 교관님이 손으로 체크하신 항목대로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하면 되는 날. 그런데 저는 분명히 “내 칸”이라고 생각한 부분이 손도 안 댄 것처럼 말끔했는데, 오후에 다시 펜을 들었을 때 보니 분명히 없던 항목이 칸마다 채워져 있었습니다. 제 필체랑 비슷한데, 묘하게 리듬이 달랐어요.

처음엔 제가 깜빡했나 싶어서 다시 처음부터 훑어봤습니다. 날짜는 오늘 날짜가 맞고, 칸 구획도 제가 외우듯이 딱 그 모양이었죠. 그런데 ‘기본 점검 완료’ 같은 항목 옆에, 제가 적지 않았던 체크와 글씨가 들어가 있었어요. 특히 훈련일지 맨 아래 줄에 작은 글씨로 “기록 누락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 문장은 제가 평소에 절대 안 쓰던 표현이더라고요. 전 그냥 “이상 없음”이라고 적고 끝내는 타입이라서요.

저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병영 생활이라는 게 원래 누가 먼저 쓰고 누가 마지막에 확인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옆에 앉은 동기한테 “너 오늘 일지 봤어?” 하고 툭 던졌는데, 동기는 눈을 크게 뜨더니 “어제 네가 제출한 거 아니야?”라고 했어요. 저는 오늘 새로 작성하는 날이라고 했는데, 동기는 제 말이 안 믿기다는 듯이 “그럼 너네 중대에서 가져간다고 하던데”라고 하더군요.

그 순간부터 손끝이 좀 차가워졌습니다. 제가 제출한 적이 없는데, 중대에서 가져간다니 말이 안 됐거든요. 저는 일지를 다시 확인했어요. 맨 위 날짜 옆에 있는 확인 도장 자리가 찍혀 있었는데, 그 도장은 제가 찍지도 않았고, 그 도장은 보통 행정병이 퇴근 전에 정리할 때만 찍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도장 잉크가 마른 상태라, 오늘 아침에 누군가 찍어둔 것 같았어요.

그래도 “설마 누가 장난 치겠어”라고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군대에서 장난은 많지만, 이런 식으로 개인 훈련일지의 내용까지 칸을 채워 넣는 건 위험하고 민감한 일이라 보통은 안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교관님 근처로 가서 “혹시 누가 제 일지 봤어요?”라고 물어보려다가, 입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교관님은 늘 같은 말만 반복하시잖아요. “기록이 곧 전부다. 누락하면 책임진다.” 그런 말이 떠올라서요.

오후에 다시 교체되는 장비 점검 시간이 오고, 저는 숙영지로 돌아와 일지를 펼쳐 놓은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일지를 펼치기만 하면 종이에서 냄새가 달라요. 새 종이 특유의 냄새가 아닌, 오래 젖었다가 다시 마른 듯한 냄새가 아주 옅게 올라왔어요. 저는 혹시 눅눅한 데 보관돼 있던 게 아닌가 싶어서 표지를 넘겼고, 그때 확인했습니다. 제가 쓰지 않은 항목들 사이사이에 아주 작은 글씨로 “확인 완료”라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적혀 있었는데, 그 글씨는 제 펜촉 각도랑도 다르고, 종이 눌림도 제가 쓰는 압력과 달랐습니다.

그날 밤엔 잠이 안 왔습니다. 다른 애들은 훈련 끝나면 금방 골아떨어지는데, 저는 자꾸 일지 생각이 났어요. 특히 “기록 누락 없음”이라는 문장. 그 문장을 누가 적었든, 제가 누락할 걸 전제로 쓴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불 꺼진 숙영지에서 조용히 손전등을 켜서 종이 가장자리만 훑어봤습니다. 바인더 철사 옆에 손톱 같은 자국이 있었어요. 누가 급하게 열었다가 다시 닫은 흔적. 그런데 그 자국이, 제 손톱에는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아예 일지를 제출처 앞에 그대로 가져갔습니다. “혹시 어제 제 일지에 뭔가 추가됐나요?”라고 물어보려 했는데, 제 입이 다시 먼저 막히더군요. 대신 그냥 제출하고, 행정 쪽 책상을 훔쳐봤습니다. 제 일지는 제 손에서 벗어난 뒤 바로 다른 서류 사이로 끼워졌는데, 그 안에서 누군가 제 일지를 펼쳐보는 동작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펼쳐진 순간, 누군가가 적어둔 항목들이 제 눈에 먼저 들어오더라고요. 방금 전엔 없던 것처럼 보였던 칸들이, 이번엔 마치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정돈돼 보였습니다.

그 뒤로도 며칠은 계속 비슷했어요. 제 훈련일지에 “누락 없음”이란 말이 등장하고, 제가 안 적은 줄이 생기고, 제가 다시 필체를 맞추려 하면 이상하게 다음 날엔 또 다른 문장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저는 결국 결론을 내렸어요. 누군가가 장난을 치는 게 아니라, 어떤 규칙이 제 기록을 ‘정상’으로 고쳐 쓰고 있다는 거요. 제 손이 움직이는 순간마다, 종이는 제가 아닌 누군가의 기준으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그 문장 하나였어요. 마지막 칸에 누가 적어둔 듯한 작은 글씨로 “당신은 이미 적었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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