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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 램프가 깜빡일 때마다 내 키가 줄어드는 듯했어

2026-08-06 04:29:13 조회 6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지하주차장 램프가 깜빡일 때마다, 내 키가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어. 처음엔 과로 때문인 줄 알았지.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정말로 “어, 내가 왜 이렇게 내려앉지?” 싶은 순간이 생기더라. 엘리베이터 앞에서 거울을 볼 때마다 바닥이 더 가까워진 것 같았고, 신발끈을 맬 때 손이 닿는 높이도 미세하게 달라졌어.

그 아파트는 구형이라 지하 램프가 가끔 먹통처럼 깜빡였어. 점검한다고 해도 금방 또 같은 구간에서 불이 흔들리고, 경비 아저씨도 “전구 나가면 그렇지” 하고 넘어가는 편이었거든. 나는 원래 그런 소리 잘 믿는 편이 아니었는데, 그날은 램프가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몸이 아주 짧게 주저앉는 기분이 들었어. 딱 “똑” 하고 무게 중심이 바닥으로 내려오는 느낌. 물론 넘어지진 않았어.

처음엔 착각이라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어. 램프가 두 번, 세 번 깜빡일수록 이상하게 내 시선이 낮아졌어. 주차장 벽에 붙은 표지판을 보는데 글자 높이가 달라 보이더라. 같은 간격인데도, 내가 보는 위치가 바뀐 것처럼. 나는 혹시 렌즈 문제인가 싶어서 안경을 닦고, 카메라로 바닥에서 벽까지 거리도 재봤는데 결과가 오히려 더 찝찝했어. 사진 속 내 키는 분명 어제랑 비슷한데, 내 몸은 계속 ‘줄어드는 방향’으로 착착 맞춰지는 느낌이었거든.

그래서 나는 장난처럼 측정해 보기로 했어. 주차장 맨 끝, 벽면에 낡은 줄자 표시가 있더라. 예전에 누가 붙여놓은 건지, 높이 눈금이 희미하게 남아있었어. 그 줄자 앞에 서서 자세를 고정하고, 램프가 깜빡이는 시간에 맞춰 “지금” 하고 속으로 세며 확인했지. 한 번 깜빡일 때마다 0.5cm도 안 되는 차이일 거야, 그런 정도가 떠올랐는데 이상하게도 내 발뒤꿈치가 접히는 것 같았어. 그 줄자 눈금과 내 머리 높이를 반복해서 대보면, 다음에는 어제보다 확실히 아래로 맞아떨어졌어.

그리고 제일 무서웠던 건, 그게 ‘나만’ 그런 것 같지 않았다는 점이야. 지하에서 마주치던 입주민이 잠깐 멈춰 서서 나를 보고는 “요즘 운동 좀 해?” 하더라. 나는 운동하냐고 되물었고, 그 사람은 “아니, 키가… 줄어든 게 보여서”라고 말하진 못하고 그냥 웃었어. 웃음으로 넘겼지만, 표정이 너무 자연스러웠어. 마치 다들 한 번쯤은 눈치 챈 사람처럼. 그때부터 내 머릿속이 하얘졌어. 혹시 내가 혼자 겪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그냥 “이상하네” 하고 넘어가는 건지.

나는 그날 밤, 집에 와서 문득 벽에 걸린 액자 높이를 확인했어. 예전엔 팔로 툭 치면 닿을 정도였던 위치가, 오늘은 손이 더 안 닿았거든. 하지만 내 손은 똑같이 움직였어. “내가 착각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자꾸 연결이 돼. 지하 램프가 깜빡이는 횟수에 따라, 내 몸이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 바뀌는 것처럼. 특히 샤워 후 거울 앞에서 목과 어깨가 가볍게 꺾여 보일 때가 제일 이상했어. 자세가 바뀐 건 아닌데, 몸이 ‘더 낮은 체형’으로 저장되는 느낌이 들었거든.

몇 번 더 겪은 뒤엔 규칙이 생겼어. 램프가 깜빡일 때, 나는 꼭 그 구간을 지나가야 했고, 동시에 심장이 아주 미세하게 빨라졌어. “불이 깜빡이기 시작할 때” 이미 내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 같았어. 그럼 내가 멈추면, 깜빡임도 잠깐 늦춰지는 듯했고, 내가 걸음을 재촉하면 그 다음 깜빡임이 더 잦아졌어. 이게 진짜면 말도 안 되지만, 체감상 확실했어. 그래서 이후로는 그 램프 구간을 최대한 피해가려고 했지.

근데 문제는, 피해도 결국 닿는다는 거였어. 지하주차장은 길이 돌아가도 결국 램프가 있는 쪽으로 연결되더라. 엘리베이터로 가려면 그 불 아래를 한번은 통과해야 하고, 밤에 택배 받으러 나가도 마찬가지. 어느 날은 램프가 깜빡이는데, 이번엔 내가 ‘줄어드는’ 느낌이 아니라 반대로 ‘늘어나려는’ 저항이 들었어. 마치 뭔가가 내 몸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려는 것처럼. 그래서 더 이상해. 왜 줄어들다가 갑자기 되돌리려고 하지? 그때 내 머리 위쪽, 천장 쪽이 유난히 어두워 보였고.

마지막으로 확실히 깨달은 건, 내가 그 램프를 볼 때마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거였어. 누가 “불이 깜빡이면 키가 줄어” 같은 농담을 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 내 감각이 그렇게 먼저 따라오는 건 설명이 잘 안 됐거든. 요즘도 그 지하주차장 램프는 가끔 깜빡여. 나는 일부러 날짜를 세고, 깜빡이는 날이면 집에 돌아와서 벽에 기대 선 채로 시간을 확인해. 그런데 이상하게도, 깜빡이기 시작하면 내 시선이 먼저 낮아지고, 그 다음에야 손이 따라온다. 혹시 키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잃어가는 쪽에 더 가까운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들면, 램프가 다시 깜빡이기 전에 이미 등 뒤가 차가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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