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자유/잡담 괴담 추천 0

배달기사님이 ‘여기 맞죠?’라고 묻는데 나는 본 적 없는 호수였어

2026-08-07 04:29:13 조회 1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배달기사님이 “여기 맞죠?”라고 묻는데 나는 본 적 없는 호수였어. 처음엔 그냥 내 주소를 잘못 적었나 싶었는데, 기사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이 지도에도 없는 이름이었거든. 저녁이라 어둑했고, 도로 옆 가로등은 몇 군데만 켜져서 길이 자꾸 끊기는 느낌이 들었어.

나는 현관문 안쪽에서 소리만 들었지, 밖에 나가 보진 않았어. 보통 배달 오면 벨 누르고 끝인데, 그날은 유난히 조용했어. 기사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렸는데 “여기 맞습니다, 맞죠?”라고 반복했어. 마치 누군가한테 확인받는 말투 같았어. 그 호수 이름을 기사님이 말했는데, 나는 들어본 적이 없었어.

그래도 혹시 주소가 헷갈렸을 수도 있으니, 문 열기 전에 휴대폰을 켰어. 배달 앱 화면엔 내 주소가 떠 있었고, 도착 예정 시간도 정상적으로 표시돼 있었어. 그런데 지도 확대를 해보면, 내 집 주변은 평범한 주택가인데 갑자기 지도가 물결무늬처럼 찌그러지면서 다른 지형이 나타났어. 내가 사는 곳엔 호수가 있을 리 없는데, 화면에선 ‘호수’라고 적힌 원형의 수면이 선명하게 보였어.

나는 그게 앱 오류인가 싶어서 한 번 더 새로고침을 했고, 위치 권한도 확인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새로고침을 할수록 호수 위치가 더 정확해지는 느낌이었어. 내 집에서 그 호수까지 거리도 “도보 3분”이라고 바뀌었는데, 그건 말이 안 됐어. 우리 동네는 차로도 10분은 걸리는 거리였거든. 화면 아래에는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최단 경로를 계산합니다’라는 문구만 반복됐어.

밖에서 또 발소리가 들렸어. 현관 앞 창문에 누가 서 있는 그림자가 비쳤는데, 배달기사님이 맞는지 확신이 안 들었어. 기사님은 보통 우편함 앞이나 벽 쪽에 서 있거든. 근데 그날 그림자는 현관 앞에 딱 붙어 서서, 마치 문 안쪽을 보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지를 않았어. 나는 급하게 문을 열어 확인하려다 말고, 일단 다시 앱 화면을 봤어.

그 순간 배달 앱에 뜬 문구가 바뀌었어. “고객님이 계신 위치로 이동 중”에서 “고객님 위치 확인 완료”로 넘어갔는데, 그 아래에 이상한 체크 표시가 생겼어. 체크 표시 옆에는 ‘호수 도착’이라는 단어가 있었어. 나는 손가락으로 문구를 누르려다 멈췄어. 누르면 무슨 페이지로 넘어갈 것 같았거든. 눌렀다간 진짜로 무언가가 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 기사님이 다시 “여기 맞죠?”라고 말했어. 이번엔 더 가까웠어. 그런데 소리가 이상했어. 분명 문 앞에서 나는 목소리인데, 동시에 물가에서 울리는 것처럼 울림이 섞여 있었어.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고, 그 다음엔 아주 희미한 소리—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게 들려왔어. 우리 집 근처엔 물가가 없는데 말이야.

나는 문을 열지 못한 채로, 대신 현관문 아래쪽 틈으로 밖을 봤어. 그런데 놀랍게도 복도 바닥이 보이는 게 아니라, 검은 물빛이 비치고 있었어. 마치 문 아래 틈으로 수면을 본 것처럼, 바닥 반사가 물결처럼 흔들렸어. 그때 전화가 왔어. 발신자는 배달기사님이었는데, 화면엔 “부재중”이 아니라 “통화 중”이라고 떠 있었어.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도, 상대가 말을 걸고 있는 게 들렸어.

“기사님이요?” 내가 그렇게 묻자, 상대는 대답을 미루는 대신 낮게 웃는 소리를 냈어. 그리고 거의 속삭이듯이 말했어. “네… 여기 맞아요. 근데 고객님은 저를 본 적이 있나요?” 그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어. 내가 본 적 없는 호수라며 내가 먼저 착각하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야 할 사람’으로 착각하는 건가 싶었거든.

마지막으로 앱 알림이 떴어. “배달 완료 처리되었습니다.” 그런데 현관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분명 기사님이 울리고 갔어야 하는데, 내 휴대폰엔 사진도 첨부되어 있지 않았어. 대신 배송 메모에 짧게 적혀 있었어. “호수 앞에서 전달했습니다.” 그 메모를 보는데 손이 떨렸어. 나는 그 호수를 본 적이 없거든. 그런데도 내 화면 속 위치는 계속 ‘호수’로 가고 있었고, 문틈 아래의 물빛은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어.

그날 이후로, 나는 지도 앱을 켤 때마다 내 집 주변이 잠깐씩 찌그러지는 걸 느꼈어. 그리고 가끔—정말 가끔—새벽에 현관문 밖에서 물가처럼 울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날이 있어. “여기 맞죠?”라고. 나는 그 질문이 배송 확인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 존재를 다시 묻는 절차 같다고 생각하게 됐어. 혹시 그 호수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를 찾아오는 길일지도 몰라.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