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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취침등을 끄면 누가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어

2026-08-07 16:29:12 조회 1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군대에서 취침등을 끄면 누가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어. 그날도 훈련 끝나고 정리 다 하고 나서, 생활관 조교가 “불 다 꺼, 내일 아침 점호다” 하면서 취침등만 남겨둔 상태였거든. 나는 침대에서 폰을 몰래 보다가 눈치 보느라 화면 밝기 줄이고 있었고, 옆 침대 선임은 담배 생각 나는지 천천히 숨만 쉬는 느낌이었어.

그런데 진짜 이상한 건, 조교가 취침등을 끄는 순간부터 시작됐어. 딱 “툭” 하고 불이 꺼지면, 어둠이 찰랑거리듯 가라앉잖아. 그 다음에 아주 조용한 종이 넘기는 소리 같은 게 들렸어. 종이가 종잇장처럼 바스락거리는 게 아니라, 뭐랄까… 손가락으로 넘기듯 종이를 한 장씩 넘기는 리듬이 있었지.

처음엔 내가 긴장해서 상상인가 싶었어. 그래서 일부러 그냥 누워서 참았는데, 소리가 계속 이어졌어. 한 번 들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한 장—잠깐 멈춤—다음 장” 식으로. 생활관이 크지 않아서 다른 애들 숨소리, 옷 스치는 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였는데, 이상하게 그 소리만은 너무 선명했어. 어디선가 들리는데, 또 딱 “머리 위”나 “바로 옆”처럼 가까운 느낌도 있어.

나는 결국 눈을 깜빡이며 조용히 주위를 살폈어. 어둠이라도 침대 배치가 보이니까 대충 방향은 감이 오잖아. 그런데 소리 나는 쪽을 찾으려고 고개를 들면, 그 순간엔 또 소리가 살짝 느려지는 것 같았어. 내가 움직여서 방해하면, 상대도 리듬을 맞추는 느낌… 이게 더 소름이었어.

옆 침대 선임이 갑자기 “야” 하고 속삭이더라. 나는 놀라서 “뭐요?” 했는데, 선임은 말을 아끼고 손으로 천천히 가리켰어. 가리킨 곳은 우리 생활관 맨 끝, 창문이 있는 쪽 벽면이었는데, 거기엔 철제 서류함이 하나 붙어 있었어. 평소엔 잠금 걸려 있어서 누가 만질 일도 없는 물건이었고, 종이 같은 게 있을 리가 없거든.

그때부터 확신이 생겼어. 취침등이 꺼진 뒤에만 들리니까, 낮에는 절대 안 나. 그리고 소리의 타이밍이 너무 일정해서 단순한 바람이나 벽지 소리 같지 않았어. 선임이 “저거 또 시작됐네”라고 혼잣말하더니,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듣고 있는 게 느껴졌어. 그 표정이 ‘무서워서’라기보다 ‘익숙해서’ 지친 사람 같았거든.

다음 날, 나는 아침에 행정병한테 괜히 떠봤어. “혹시 그쪽 철제함 안에 뭐 있어요?” 그러면 보통은 장난처럼 웃고 넘길 텐데, 그 병사가 잠깐 멈칫하더니 대답을 흐렸어. 그리고 “그쪽은 잠깐 확인할 일 있어도 당직 없을 땐 안 열어요”라고만 하고 지나갔지. 질문의 의도를 아는 것처럼 말이 짧았어.

그날 저녁도 똑같이 시작됐어. 취침등 끄는 순간부터 종이를 넘기는 소리. 이번엔 소리가 조금 더 가까웠고, 종이를 넘기는 간격이 더 짧아졌어. 마치 누가 급하게 페이지를 찾는 것처럼.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 화면을 아주 낮게 켰는데, 그때만큼은 소리가 끊기더라. 화면 불빛이 눈에 들어오는 게 싫어서 바로 껐는데, 껐더니 또 이어졌어. “불이 바뀌면 리듬도 바뀐다”는 느낌이었어.

셋째 날엔 더 이상하게도, 소리가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어떤 문서 끝” 같은 느낌으로 잠깐 멈췄다가 다시 시작됐어. 끝났나 싶을 때 다시 이어지는 그게, 누가 일부러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철렁했어. 그 리듬을 듣고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늘어지는 것 같고, 잠을 자려 해도 몸이 먼저 긴장하는 느낌이 들더라.

마지막으로, 그 소리는 결국 내가 ‘못 들었다’고 믿으려는 순간에 더 크게 들렸어. 어느 날은 스스로 최면 걸듯이 “아, 어제도 그랬지” 하고 넘기려 했는데, 취침등이 꺼지자마자 종이 넘기는 소리가 딱 멈췄다가, 아주 얇게 “한 장을 놓는 소리”가 나더라고. 그 다음엔 생활관 전체가 숨을 삼킨 것처럼 조용해졌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 소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누가 읽고 있던 걸 우리가 건드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오래 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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