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옆자리 반쯤만 확인하고 다시 전방을 봤어
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옆자리 반쯤만 확인하고 다시 전방을 봤어.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그러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이 자꾸 머릿속에서 반복됐어. 내가 탄 시각은 밤 열한 시쯤, 비가 그치다 말다 하는 날이었고 도로는 유난히 젖어 반사광이 길게 늘어졌거든.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 축축해질까 봐 가방을 더 안쪽으로 끌어안고, 창문엔 김이 살짝 서려 있었어. 나는 뒤쪽 좌석에 앉았고, 기사님은 앞에서 내 미세한 움직임도 다 볼 수 있을 위치였지. 근데 이상하게 출발하자마자 기사님 시선이 딱 한 번 흔들렸어. 내 옆자리, 그러니까 내 바로 옆 공기까지도 ‘확인’하는 느낌으로 반 박자 늦게 고개를 스윽 돌리더니, 바로 전방을 다시 봤거든.
“기사님, 네비는 알아서 가시죠?” 하고 그냥 장난 섞인 말투로 물었는데, 기사님은 대답이 늦었어. 웃으려고 하신 건지 입꼬리만 살짝 올라갔다가 금방 가라앉더라. 손은 핸들을 놓치지 않았는데, 눈동자만 잠깐 흔들리면서 내 쪽 말고 왼쪽 공기를 스친 것처럼 보였어.
그때부터 택시 안 공기가 달라졌어. 에어컨이 약하게 나오는 것 같았는데, 내 등줄기 쪽은 서늘하게 식고 팔목이 간질간질했어. 나는 혹시나 하고 옆자리를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리려다 말았어. 이유는 간단해. 기사님이 방금 본 방향이 너무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전제한 것처럼 느껴져서.
그저 차 안이니까, 혹시 가방이나 물건을 두고 내 말투가 이상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서서히 불안이 커졌어. 신호 대기 중에 기사님이 잠깐 창문 쪽을 봤거든. 운전석 창문엔 네온이 번져서 희미하게 빛이 지나다녔는데, 그 빛이 마치 누군가가 창문 옆에 얼굴을 붙이고 있는 것처럼 흔들렸어. 물론 착각일 수도 있어. 근데 기사님은 그 흔들림을 확인한 게 아니라, 이미 그 자리에서 무언가와 거리 계산을 한 사람처럼 행동했어.
나는 용기를 내서 조심스럽게 옆자리를 보려고 폰 화면을 켰어. 화면 밝기에 내 얼굴이 살짝 비치고, 가방끈과 서류철이 보였지. 그런데 이상한 건, 내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뭔가 ‘비어 있어야 할’ 공간이 이상하게 채워져 보였다는 거야. 실제로 누가 앉아있다는 건 아니었는데, 분명히 택시의 공기 흐름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둥글게 휘는 느낌이 있었어. 이게 말이 되나 싶은데, 그때는 진짜로 그랬어.
“기사님, 혹시 옆자리 괜찮으세요?” 같은 질문을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대신 창밖을 계속 봤어. 도로 전광판이 지나가고, 가로등이 끊어질 때마다 택시 실내가 잠깐씩 어두워졌다 밝아졌거든. 그 짧은 어둠 속에서만, 기사님이 거울로 내 뒤를 한 번 더 보는 걸 봤어. 그리고 또… 옆자리를 반쯤만 확인하고 전방을 보는 그 동작이 반복됐어. 마치 확인하려는 게 있어도, 확인하면 안 되는 규칙이 있는 사람처럼.
도착지가 가까워졌을 때 기사님이 갑자기 속도를 확 줄였어. 신호도 없었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정차하더라. “여기서 내리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는데 목소리가 너무 평평해서 더 소름이 돋았어. 나는 내릴 준비를 하며 손을 가방 쪽으로 뻗었고, 그때 기사님이 아주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계기판 쪽을 봤어. 그리고 말없이 라이트를 한 번 더 켰다 껐어. 이유를 모르겠는데, 그 동작이 마치 ‘지금은 보이게 하면 안 된다’는 것 같았어.
내가 문을 열고 내리려는 순간, 등 뒤에서 아주 미세한 공기 흔들림이 느껴졌어. 누가 문밖으로 먼저 나가려는 것처럼, 누군가의 움직임이 뒤따라야 하는 타이밍. 하지만 내 뒤에는 사람은 없었고, 택시 바닥도 그대로였어. 기사님은 이미 시동을 끄고 있었는데, 내 눈이 잠깐 운전석 옆 계기판 반사에 비친 걸 봤거든. 그 반사 속에서 내 얼굴 옆으로 ‘한 장 더’ 있는 것 같은 실루엣이 스쳤어. 기사님이 반쯤만 확인한 이유가 그제야 머릿속에서 맞춰지려 했어.
택시는 그냥 출발해버렸고, 나는 한참 동안 손잡이를 잡은 채로 서 있었어. 비가 다시 조금씩 오기 시작했는데, 내 어깨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평범했거든. 근데 마음만 자꾸 젖어버리는 느낌이 남아있더라. 오늘도 가끔 택시 타기 직전, 내 옆자리의 공기가 먼저 확인되는지부터 생각하게 돼. 그때 기사님이 전방을 봤던 게 아니라, 어쩌면 나를 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