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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내 이름이 적힌 종이가 PX 앞에 붙어 있었어

2026-08-11 20:29:11 조회 6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군대에서 내 이름이 적힌 종이가 PX 앞에 붙어 있었어. 처음엔 그냥 누가 장난친 건가 싶었는데, 그 종이를 떼려고 손을 뻗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손끝이 차가워지더라. PX 건물 앞은 매일 사람들 발걸음이 끊이지 않아서, 누가 뭘 붙여도 금방 눈에 띄는 자리였거든.

그날도 밤근무 끝나고 아침 시간쯤이었어. 난 보급이 끝나고 PX 쪽으로 물 사러 가려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입구 바닥에서부터 작은 종이 하나가 테이프로 쭉 붙어 있는 게 보였어. 그런데 종이 내용이 딱 내 이름이었어. 한글로 내 성이랑 이름이 같이 적혀 있었고, 줄까지 맞춰서 깔끔하게 써놨더라.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누가 내 이름 팔아 장난치나”였어. 군대에서 별별 소문이나 짓궂은 장난이 많잖아. 그래서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그 종이가 너무 선명해서 발을 멈췄어. 종이 모서리가 살짝 들려 있었고, 테이프는 누가 여러 번 눌러 붙인 느낌이었어. 새것 같진 않아서, 누가 꽤 오래 붙여놨던 것처럼 보였지.

내가 멈춰서 종이를 보자, 지나가던 선임 한 명이 “뭐 봐?” 하고 물었어. 나는 얼른 말 돌리려고 “아무것도”라고 했는데, 그 선임이 종이 쪽을 보더니 표정이 확 굳는 거야. 순간만큼은 아예 말이 안 나오더라고. 그러더니 선임이 종이를 손으로 가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뒤돌아 걸었어. 그때부터 뭔가 ‘장난’이 아니라는 느낌이 확 들었어.

그 뒤로 몇 분도 안 돼서 내 옆에 있던 다른 병사가 슬쩍 다가오더니 “그거 네 거 맞냐?”고 묻는 거야. 난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라고 둘러댔는데, 그 병사가 목소리를 낮추면서 “어제도 봤다. 근데 어제는 없었는데, 오늘 아침에 갑자기 붙어 있더라”고 했어. 말투가 그냥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 이미 무슨 일이 있었던 사람처럼 조심스러웠어.

그 병사는 더 덧붙였어. “누가 붙여놓고 사라진 것 같아. 밤에 PX 문 닫을 때만 해도 안 보였대. 그런데 새벽에 누가 지나가다가 봤고, 그 뒤로는 계속 네 이름만 보이더라.” 여기서부터 기분이 좀 묘해졌어. 군대에서 ‘없던 게 생겨난’ 걸 너무 많이 봐서 익숙하긴 한데, 이름이 딱 찍혀 있으면 아무리 애써도 그냥 사람을 건드리는 느낌이 있거든.

난 결국 참지 못하고, 종이를 떼어보려고 했어. 누가 테이프로 붙인 걸 떼는 건 흔한 일이니까, 설마 큰 일 있겠냐고 생각했지. 근데 손을 대는 순간 종이가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어. 테이프가 오래 붙어 있으면 잘 안 떨어지는데, 그 종이는 반대로 너무 쉽게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 그래서 더 손을 멈칫하게 됐고, 눈은 내용만 다시 확인하게 되더라.

종이에는 내 이름 말고도 작은 글씨가 더 있었어. “PX 앞, 끝나기 전까지”라고. 딱 그 문장 하나였는데, 이상하게도 읽는 순간 머리가 ‘딱’ 하고 멈추는 느낌이 들었어. 끝나기 전까지… 무슨 끝이야? 교대 끝? 근무 끝? 아니면 누군가의 ‘끝’? 이런 생각이 스치자 숨이 약간 탁 막히더라.

그날 오전, PX 안에서 물건 정리하던 이병이 나를 보자마자 얼굴이 하얘지는 걸 봤어.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걔가 먼저 “형, 어제 누가 종이 붙였대?”라고 물었거든. 난 “나도 방금 봤는데”라고 하니까, 이병이 멍하니 있다가 “아니요, 어제는 누가 붙였는데, 오늘은 누가 또 붙였더라고”라고 말하더라. 근데 그 말이 끝이 아니었어. 이병이 내 이름 적힌 종이를 가리키는 대신, 내 뒤를 조용히 쳐다봤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는데, 복도 끝 어딘가에 누가 서 있는 느낌이었어. 정확히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데, 공기가 무겁게 눌린 것처럼 시선이 꽂히는 느낌. 그때 선임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어. “뭐야! 또 서있냐!” 그러자 그 느낌이 싹 사라진 것 같았어. 그리고 동시에, 내 이름이 적힌 종이는 누가 떼어 간 건지 보이지 않게 됐어. 테이프 자국만 남아서 더 찝찝했지.

그 뒤로는 이상하게도, 내가 PX 앞을 지나갈 때마다 발걸음이 느려졌어.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누군가 ‘나를 적어둔 종이’를 따라오게 만드는 느낌. “PX 앞, 끝나기 전까지”라는 문장만 계속 떠올랐고, 끝이 언제인지 계속 계산하게 됐어. 전역일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그 문장이 더 가까이 붙어오는 것 같아서, 마지막 날까지도 나는 PX 앞을 볼 때마다 숨을 한번 고르고 지나갔어.

지금 생각해도 제일 소름인 건, 종이를 누가 붙였는지 아무도 끝까지 확인해준 사람이 없었다는 거야. CCTV가 있었냐고 물어봐도 “그 시간대는 비어있다”거나 “화질이 안 나온다”는 말만 돌아오고, 결국 그 종이는 ‘있었는데’ 기록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그래서 난 아직도 가끔 PX 앞을 지나가면, 내 이름이 적힌 종이가 다시 붙는 상상을 하게 돼. 그때는 분명 ‘끝나기 전까지’라는 말이, 누군가의 시간표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속 약속처럼 들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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