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 벽에 붙은 번호표가 자꾸 내 출입번호랑 맞춰져
그날도 평소처럼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는데, 벽에 붙어 있던 번호표가 눈에 들어왔어. 하얀 종이에 검은 글씨로 큼직하게 적힌 번호였는데, 내가 들고 있던 출입카드에 찍힌 번호랑 숫자 구성이 딱 맞았거든. “혹시 착각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봤는데, 그 번호표는 분명 벽 위에 새로 붙은 것처럼 가장자리도 덜 마른 느낌이었어.
처음엔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했어. 아파트 단지 출입 시스템이 워낙 많으니까, 번호표가 여러 개 붙어 있는 줄 알았거든. 근데 그 번호표는 딱 하나였고, 그게 내 번호랑 같았어. 나는 엘리베이터에 타서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이상하게도 손이 자꾸 카드를 만지작거렸어. 손바닥 열기 때문에 숫자가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랄까.
다음 날도 똑같이 출근해서 지하주차장에 내려가자마자 벽을 봤어. 어제 보던 번호표가 그대로 붙어 있었고, 글씨가 아주 조금 더 또렷해진 것 같았어. 나는 내가 가진 카드의 번호를 다시 확인했고, 이번에도 똑같이 맞아떨어졌어. 심지어 번호표의 위치도 내가 주차한 자리에서 걸어 나올 때 딱 시야 정중앙에 들어오는 각도였어. 그냥 벽이라서 우연히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매번 “보이도록” 놓여 있는 느낌.
그래서 관리실에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불안해졌어. “벽에 번호표가 붙어 있던데요”라고 말하면, 내가 왜 그걸 유독 신경 쓰는지부터 설명해야 하잖아. 나도 스스로가 좀 이상하다는 걸 알았고, 그래도 그냥 넘어가려 했어. 근데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갔고, 그 번호표는 날마다 내 출입번호랑 같은 숫자로 계속 바뀌었어. 붙는 방식도 신기했어. 종이를 새로 붙이는 흔적이라기보단, 마치 누가 덮어 씌운 것처럼 모서리 자국이 이어졌거든.
일주일쯤 지나자 나는 더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어졌어. 출근할 때는 내 번호표를 봤고, 퇴근할 때는 다른 사람 출입카드 번호를 몰래라도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그 순간부터 내 머리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어. 엘리베이터 앞에서 잠깐 마주친 입주민이 있었는데, 그분 손에 들린 키패드 홀더에 적힌 숫자가 스쳤거든. 그날 저녁 주차장에 내려가서 벽을 확인하자, 이번에도 그분 번호랑 비슷한 구성이었고, 결국엔 내 번호랑 똑같아졌어. 마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
그때부터는 번호표가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일종의 표시처럼 느껴졌어. 종이에는 숫자만 있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숫자 사이사이가 내 카드 정보의 구성과 같은 규칙을 따르고 있었어. 나는 카드를 바꿔 발급받아볼까 생각했는데, 그러면 또 새 번호에 맞춰서 붙일까 봐 겁이 났어. 그래서 그냥 주차장 동선을 바꿔 보기도 했어. 벽을 정면으로 보지 않게 돌아서 들어가고, 엘리베이터도 다른 쪽으로 타봤는데… 이상하게도 어느 방향으로 돌아가도 시야가 한번은 벽 쪽으로 휘어지더라.
한 달쯤 지나자 나는 번호표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더 힘들어졌어. 무슨 일이 있어도, 어둠 속에서 하얀 종이가 먼저 눈에 띄는 거야. 그날은 유독 종이가 축축해 보였고, 숫자가 번진 듯한 자국이 있었어. 나는 다급하게 내 카드를 확인했는데, 이번엔 숫자가 완전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구성만큼은 맞았어. 예를 들어 내 출입번호가 4자리면, 번호표도 4자리인데 앞자리는 같은데 뒷자리가 미세하게 달라 보이는 식. 그래서 더 소름이 돋았어. “맞는 척”이 아니라 “확실히 맞춰가고 있는 중” 같았거든.
결국 나는 밤에 늦게 퇴근해 일부러 다른 복도로 들어가 번호표가 있는 벽을 피해보려 했어. 그래도 결국 그 벽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고, 그 순간 종이는 거기 그대로 붙어 있었어. 근데 이번엔 내 번호표가 아니었어. 내 카드랑 다른 숫자였지. 나는 안도의 숨을 쉬다가, 바로 다음 생각이 따라왔어. “그럼 저건 내 번호가 아니니까 안전한 게 아니라, 다음 순서가 내가 될 수도 있단 뜻이잖아.” 그제야 머릿속이 딱 정리됐어. 번호표는 ‘우연’이 아니라 ‘타이밍’에 가깝다는 걸.
그날 이후로 나는 주차장에 내려갈 때마다 벽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고정했는데도, 이상하게도 귀가 먼저 듣는 느낌이 들었어.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같은 건 실제로 들리지 않았는데, 머릿속에선 “붙는 소리”가 계속 상상됐거든. 그리고 다음날, 또 내 번호로 바뀌어 있었어. 지금도 가끔 지하주차장에 들어가면 벽에 하얀 종이가 있을지부터 먼저 떠올라. 혹시 번호표가 내 출입번호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 출입번호가 먼저 누군가의 손에 적히는 건 아닐까—그 생각이 나를 멈추게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