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자유/잡담 괴담 추천 0

병원에서 접수 후 대기했는데 내 목소리가 스피커로 나왔어

2026-08-12 08:29:11 조회 6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병원에 갔던 날부터 지금까지도 가끔 그 장면이 튀어나와. 접수 끝내고 대기실 의자에 앉았는데, 하필이면 내 차례가 아직 멀었거든. 그런데 접수 창구 바로 옆 천장 스피커에서 내 이름이 또렷하게 나오는 거야. 나는 그때까지도 입도 안 뗐고, 번호표도 아직 안 불렸는데 말이지.

처음엔 “혹시 다른 사람 이름이랑 비슷하나” 싶었어. 근데 스피커가 나오는 톤이 단순 안내가 아니라, 누가 내 목소리로 읽는 것처럼 들렸어. 안내 방송 특유의 얇고 딱딱한 음성이 아니라, 내가 평소에 말할 때랑 억양이 비슷했거든. 순간 등골이 서늘해져서 주변을 훑는데, 아무도 이상하단 표정이 아니더라.

내가 앉아 있던 쪽은 창구와 가까워서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더 잘 들렸어. 스피커에서 내 이름이 한 번 더 나오고, 그 뒤에 내가 어제쯤 했던 말투로 “여기요” 같은 짧은 응답이 섞여 들리는 느낌이었어. 물론 내가 실제로 “여기요”라고 말한 건 아니야. 그냥 머릿속으로 생각한 건 “내가 아직 말 안 했는데 왜 저러지” 이거 하나였는데, 소리는 그 생각보다 훨씬 먼저 현실처럼 들렸어.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어. 혹시 접수할 때 누가 내 정보를 잘못 입력했나, 아니면 자동 음성인 척 하면서 뭔가 장난이 있나 싶어서. 그런데 안내 표시는 아직 내 번호가 안 올라와 있었고, 창구 직원도 평소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 그래도 스피커는 계속해서 내 쪽을 향해 말하는 것처럼 울렸어. 마치 내가 일어나기만 하면 바로 콜을 이어서 붙일 거 같은 리듬이었거든.

그때 직원이 “OO번 고객님 접수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라고 말하더라. 그 문장 역시 방송이랑 달랐어. 직원 목소리는 보통의 텐션인데, 뒤에 붙는 잔향이 이상했어. 내가 아까 들었던 그 “내 목소리 톤”이 아주 희미하게 겹쳐서 섞여 나오는 느낌. 그래서 나는 그냥 멍하니 서 있다가, 내 번호표를 들고 창구 쪽으로 걸어갔지.

접수 창구 앞에 서자 직원은 아무렇지 않게 서류만 넘기면서 “지금 진료실로 가시면 돼요”라고 했어. 그런데 내 손에 쥐어진 서류를 보니까 접수시간이 이상하게 찍혀 있었어. 분명 내가 도착한 시간보다 몇 분 앞서서 이미 전산 처리가 된 것처럼 보였거든. 처음엔 실수겠지 싶었는데, 그 숫자가 딱 내가 스피커에서 들은 순간이랑 맞물려 있어서 말이 안 됐어. 마치 내가 아직 오기 전부터, 내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려 했는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더딘 느낌이 들었어. 사람들이 오고 가는 소리는 있는데, 내 주변만 조금 늦게 따라오는 것 같은 공기였달까. 결국 나는 의자에 다시 앉았고, 아까와 똑같이 천장 스피커가 켜졌어. 이번엔 내 이름이 아니라 “지금 계신 분, 목소리 작게 해주세요” 같은 말이 나왔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는데, 그 “목소리”라는 단어가 유독 내 습관적인 숨소리랑 맞닿아 있는 느낌이라 더 무서웠어.

혹시 내가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냈나 싶어서 숨을 멈춰봤는데, 스피커가 그 다음 문장을 바로 이어서 뱉었어. “네, 알겠습니다.” 그 대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내가 대기실 안에서 대답한 것 같았어. 근데 나는 그 시간 동안 입술을 움직이지 않았고, 손도 무릎 위에 그대로 있었거든. 주변 사람들은 계속 기다렸고, 누가 내 쪽을 쳐다보는 것도 없었어. 그게 오히려 더 소름이 돋았지. 나만 듣고, 나만 반응해야 하는 상황 같아서.

진료실로 호출된 건 그 뒤였어. 직원이 “OO번입니다”라고 부르는데, 그때 스피커는 조용했어. 그런데 진료실 문을 닫고 앉아 있는 동안, 의자 등받이에 붙어 있던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어. 병원 내부 방송 안내 같은 종이였는데, 거기에 “음성 시스템은 내선 스피커 및 자동 재생 장치와 연동됩니다”라고 적혀 있더라.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나서야, 아까 내 목소리가 왜 그렇게 ‘사람처럼’ 들렸는지 어렴풋이 이해될 뻔했어. 녹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이크 입력이 실시간으로 섞였을 가능성. 하지만 그 “누군가”가 누구였는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어.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그 스피커 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는데, 특히 마지막에 들린 문장이 잊히지 않더라. “지금 계신 분, 목소리 작게 해주세요.” 이 말이 이상하게도 ‘지금’이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나왔어. 마치 내 시간만 여기서 어긋나 있고, 누군가가 그 어긋남을 조용히 고치려는 것처럼.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잠깐 꿈에서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천장 스피커가 내 이름을 부르기 직전에 꿈속에서 먼저 입을 열어버렸어. 그런데 그 순간, 내가 내 목소리로 “여기요”라고 말하는 걸 분명히 들었거든. 그날 이후로는, 어디서 방송 소리가 나오면 절로 입부터 다물게 된다.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