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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기사님이 나에게 ‘전에 받으신 분 맞죠’라고 물었어

2026-08-13 04:29:11 조회 5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배달기사님이 나에게 ‘전에 받으신 분 맞죠’라고 물었어. 처음엔 그냥 주소 확인하려는 말인 줄 알았거든. 근데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귀에 걸렸어. 나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네?” 하고 받았는데, 기사님 표정이 웃는 얼굴이 아니었어. 손에 든 배달 가방은 멀쩡했는데, 목소리는 뭔가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낮았어.

그날은 평일 저녁이었고, 주문은 배달앱으로 해두었어. 내가 사는 동네는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야 해서, 기사님들이 “몇 동 몇 호요?” 같은 말은 자주 해. 근데 기사님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오자마자 바로 “전에 받으신 분 맞죠?”라고 물었어. 나는 그 순간 아차 싶었어. 내가 최근에 이 집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거든. 전 주인 이야기는 잘 모르고, 배달은 내가 처음이었거든.

“저요? 저는 처음인데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기사님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어. 그러고는 배달앱 화면을 한번 보더니, 내 이름이 아니라 다른 이름을 확인하듯 짧게 읽었어. 정확히 무슨 단어인지 말하진 않았는데, 그 발음이 내 성이랑 비슷해서 더 소름이 났어. 마치 앱에 뜬 정보가 ‘나’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거든.

기사님은 현관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마치 주변을 확인하듯 빌라 복도를 한 번 훑었어. 그리고 “아, 그분이 여기 계신 줄 알았어요”라고 했어. 나는 “혹시 전에 사시던 분 말씀하시는 거예요?”라고 묻자, 기사님이 잠깐 멈칫하더니 “아니요, 배달 받으시는 분이요. 전에도 여기로… 같은 시간이었어요”라고 말했어. 그 ‘같은 시간’이라는 표현이 너무 뚜렷해서, 그냥 주문 착오로 넘기기 어려웠어.

나는 일단 음식부터 받으려고 했는데, 기사님이 손을 뻗어 문틈 쪽으로 가방을 살짝 밀어놓고는 말을 더 했어. “혹시 문 앞에 뭔가 두고 들어오세요?”라고 묻더라. 나는 당황해서 “아니요, 그냥 받아요. 비밀번호로 들어오고 바로 들어가요”라고 했어. 그러자 기사님이 “그럼 오늘도 그냥… 두고 가도 되겠죠?”라고 하면서, 갑자기 가방끈을 만지작거렸어.

그때 나는 뭔가를 뒤늦게 봤어. 현관 매트 옆에 얇은 종이 쪽지가 바닥에 붙어 있었거든. 누가 테이프로 한 번 고정해뒀는지, 모서리가 살짝 들려 있었어. 평소엔 내가 빨리 치우는 편인데, 그날은 저녁이라 현관을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신발부터 신으려고 했는데, 종이가 눈에 들어온 순간 손이 멈췄어. 기사님이 눈치를 챘는지 내 시선을 따라 매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쟤가 뭐냐고 물으려는 순간, 기사님이 먼저 말했어. “아까부터 비슷한 게 계속 붙어 있어요. 전에도 받으신 분이… ‘그 종이’가 없으면 불편해하셨거든요.” 나는 속으로 ‘전 주인이 붙여둔 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기엔 글자가 너무 정돈돼 있었어. 종이에는 단순한 연락처나 안내문이 아니라, 날짜와 시간, 그리고 주문한 품목이 적혀 있었어. 게다가 날짜가 오늘 기준으로 ‘며칠 전’이 아니라 ‘어제’랑 ‘그저께’처럼 아주 가까운 것들이었어.

나는 그 종이를 뜯지 않은 채로 기사님에게 “이거… 누가 붙였어요?”라고 했어. 기사님은 대답을 피하듯, “배달기사들이 알아서 치우는 편은 아니거든요”라고 했어. 그러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근데 어떤 날은, 제가 도착하면 이미 현관 앞에 있어요. 제가 도착하기 전부터.”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했어. 배달은 기본적으로 ‘도착’이 먼저잖아. 근데 그 종이는 도착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처럼 들렸어.

나는 결국 종이를 손가락 끝으로만 떼어보려고 했는데, 기사님이 “만지지 마세요”라고 했어. 놀라서 “왜요?”라고 묻자, 기사님이 정말 낮은 목소리로 “전에 한 번… 괜히 확인하다가, 말이 안 맞는 일이 생긴 적이 있어요”라고 했어. 그때 기사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어. 웃기는 상황이면 보통 손이 괜찮아야 하는데, 그 사람은 ‘이게 농담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떨림이었어.

나는 그날 음식을 상자에서 꺼내지 못했어. 배달앱은 정상적으로 완료 처리됐고, 다음 주문 알림도 계속 왔는데 마음이 이상했어. 전 주인이 남긴 거라고 치우자니, 종이에 적힌 내용이 너무 ‘내가 앞으로 살게 될 방식’처럼 맞아떨어졌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기사님이 내게 했던 말—“전에 받으신 분 맞죠”—그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서 회전했어. 혹시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전”을 계속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마지막으로 기사님이 나가면서 문 앞에 간단히 고개만 숙이고 갔는데, 나도 모르게 현관문 틈으로 배웅하듯 봤어. 기사님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다 말고, 뒤돌아 한 번 더 종이 쪽을 봤어. 그 시선이 “여기다” 같은 확인 같았어. 그리고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냥 내려갔는데, 그 순간 나는 종이를 보지 않고도 문득 알 것 같았어. 그 종이는 누가 붙이는 게 아니라, ‘받는 사람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붙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다음 배달이 올 때, 내 이름이 아니라 또 다른 이름으로 화면이 뜰까 봐… 아직도 현관 앞이 편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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