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기사님이 목적지 말고 ‘시간’만 물었어
택시를 잡은 건 그냥 비가 조금씩 그치기 시작한 저녁이었다. 집에 가는 길이라 마음이 급하진 않았는데, 기사님이 차에 타자마자 창문을 잠깐 열어놓고는 “목적지 어디예요?”라고 묻는 대신 엉뚱하게도 “시간이요. 지금 몇 시쯤이죠?” 하고 물어보는 거다. 순간 “네?” 하고 되물었는데, 기사님은 웃지도 않고 핸들만 살짝 고쳐 잡고 같은 말을 다시 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기사님 쪽으로 비추듯 봤다. “지금 7시 18분쯤이에요.”라고 말하자 기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내 목적지를 묻는 질문을 아예 빼버렸다. 대신 미터기 옆에 달린 작은 액정 같은 게 잠깐 깜빡였고, 그 뒤로는 말수도 확 줄었다. 차 안엔 타이어 마찰 소리랑 비 냄새만 남았다.
“기사님, 주소는…?” 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기사님이 아주 낮게 “주소는 괜찮아요. 시간만 맞추면 됩니다.”라고 했다. 나는 농담인가 싶어서 “네? 무슨 뜻이세요?” 했는데, 그때부터 분위기가 이상하게 굳었다. 기사님은 내 얼굴을 보지 않고 앞 유리만 계속 바라보면서 “지금 시간. 정확히.”를 계속 확인하듯 말했다.
원래 택시 타면 기사님이 내릴 곳 근처까지 말로 안내해 주잖아. 그런데 그날은 내비게이션도 안 켜져 있었고, 화면은 그냥 검은색으로 꺼져 있었다. 나는 혹시 길을 돌아가시나 싶어 창밖을 봤는데, 내 쪽으로 익숙한 가로수길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골목으로 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길인데도 기사님은 네비 없이도 속도를 조절하듯 자연스럽게 꺾었다.
“기사님, 여기… 제가 가려던 데랑 다른데요.”라고 하자 기사님이 아주 짧게 “시간이 늦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이 너무 이상해서 웃어넘길 타이밍을 놓쳤다. 차가 멈춘 것도 아닌데, 내가 보고 있던 시야가 잠깐씩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비가 내리는 유리 너머로 시간이 한 박자 늦게 흘러가는 것처럼.
나는 괜히 더 캐묻기보다 휴대폰으로 위치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그때야 알았다.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와이파이도 없고, 지도 앱은 로딩하다가 멈춰 버렸다. 기사님은 그런 내 반응을 아는 사람처럼 “연락은 마세요.”라고 하더니, 손을 더 천천히 움직였다. 속도계 바늘은 분명 천천히 내려가는데도, 체감은 계속 빨라지는 기분이었다.
그 뒤로는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 이어졌다. 기사님이 “지금 몇 시냐”를 한 번 더 물었고, 나는 “7시 23분쯤이요.”라고 말해 줬다. 그러자 기사님이 입술을 아주 작게 움직이며 “맞아요.”라고 했다. 그 한마디가 묘하게 찝찝했는데, 마치 내가 말한 시간이 ‘답’이라기보다 ‘열쇠’처럼 취급되는 느낌이었다. 차 안 조명이 깜빡일 때마다 내 시야 끝이 조금씩 흐려졌다.
도착한 곳은 내가 알던 장소랑 전혀 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이면 내려도 된다”는 감각이 들어서 그냥 문을 열었다. 밖은 가게 간판이 몇 개 꺼져 있고, 도로가 끝나는 지점처럼 조용했다. 기사님은 내리자마자 “계산은 나중에요.”라고 했고, 나는 카드를 꺼내려다 손이 멈췄다. 계기판에 숫자가 찍히지 않았고, 미터기도 올라가지 않은 상태였거든.
집에 도착해서 시간을 확인했을 때, 스마트폰에는 내가 말했던 그 시간대랑 거의 비슷한데도 날짜가 하루 전으로 떠 있었다. 나는 순간 장난인 줄 알았는데, 사진첩을 보니 택시에서 찍은 거라 생각한 것들이 없었다. 오히려 이상하게도 택시를 탄 지 10분 정도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옷 주름이나 머리 상태는 한참 더 젖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 기사님이 물었던 “시간”이라는 단어만 자꾸 귀에서 맴돌았다. 혹시 그 차는 목적지를 태우는 게 아니라, 시간을 타고 사람을 내려놓는 건 아니었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손끝이 차가워져서, 그날 택시 문을 잡았던 감각이 자꾸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