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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내 보급품 목록이 누락되었는데 이미 사용 처리돼

2026-08-15 08:29:12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저장고 문 쪽에서 명찰 찍히는 소리만 나고, 내 옆에 있던 선임은 담배 연기처럼 말끝을 흐리더라. “야, 보급품 목록이 누락됐는데 이미 사용 처리됐대.” 그 말 들은 순간부터, 왜 하필 내 차례에? 싶은 생각이 머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당시 나는 보급창에서 물품 대장 정리 맡고 있었고, 상급부대에서 내려온 하달 문서도 내가 출력해서 묶어놨다.

사건은 점호 끝나고 시작됐어. 행정병이 “대대 전산 확인했는데 너 담당 품목이 ‘사용’으로 찍혔다”고 하더라. 사용 처리면 이미 지급된 거란 뜻인데, 내 기록장엔 분명히 “미지급/대기”로 남아 있었고 창고에는 똑같은 품목이 그대로 있었다. 더 황당한 건, 누락된 게 단순 수량 하나가 아니라 내 보급품 목록 전체처럼 보였다는 거야. 품목 이름이랑 수량이 줄줄이 비슷한 패턴으로 사라져 있었거든.

일단 나는 보급창에 있는 실물을 다시 세어봤다. 포장 상태 그대로인 것, 바코드 스티커만 붙어 있는 것까지 전부 확인했는데, 아무리 봐도 “이미 사용”할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데 전산에는 누가 봐도 내가 처리한 것처럼 날짜와 승인자가 찍혀 있었다. 승인자란에 내 부서 선임 이름이 들어가 있었는데, 선임은 “난 그런 거 승인한 적 없어”라고만 하고 말을 더 안 얹었다.

그날 밤 당직실에서 대장 다시 뽑아보는데 손이 좀 떨리더라. 전산 화면은 새로고침을 해도 그대로였고, 내가 뽑아둔 종이 문서랑 대조해도 불일치가 커졌다. 특히 이상했던 건, 누락된 목록이 ‘처리 완료’ 상태로 넘어가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 목록이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어. 마치 누군가가 내 파트를 가져가고, 다른 사람 걸로 보정해 둔 것처럼.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어. “왜 하필 내 것만?”

다음 날 나는 보급 담당관을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했는데, 표정이 너무 평온해서 더 무서웠다. 담당관은 내 종이 대장을 보자마자 “전산이 맞는 거지”라고 딱 잘라 말했어. 전산이 맞다… 그 말이 제일 잔인했어. 전산은 누구 손이 닿았는지 흔적이 남는다고 해도, 실제로 누가 눌렀는지는 아무도 확실히 말해주지 않으니까. 나는 “창고 재고가 있는데요”라고 해봤지만, 돌아온 답은 “재고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어”라는 말뿐이었다.

그때 선임이 갑자기 내 책상 쪽으로 와서 종이 뭉치를 툭 내려놓더라. “어차피 네가 처리한 걸로 잡힌 거니까, 그냥 보고 라인대로 정리해.” 속으로는 “내가 처리한 적 없는데”라고 외쳤지만, 입 밖으로는 못 내뱉었다. 군대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반박은 곧 자기 방어가 아니라 자기 공격처럼 취급되거든. 나는 결국 지시대로 수정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는데, 문서 마지막 결재란 쪽에 누가 이미 ‘완료’ 체크를 해둔 걸 봤다.

그 체크는 내 글씨체도 아니었고, 내가 쓰던 펜으로도 아니었어. 그런데도 결재는 넘어가 있었고, 이미 사용 처리된 품목은 “회수 불가”로 분류돼 있었다. 나는 그제야 확실히 느꼈어. 이건 단순 실수가 아니라, 누락과 사용 처리 사이를 일부러 엮어버린 일이란 걸. 특히 누락된 품목이 보급품 중에서도 티가 덜 나는 것들이라 더 그럴듯했어. 누가 봐도 “아, 그냥 들어갔겠지” 싶은 것들. 근데 나는 현장에서 창고 문 열고 닫는 사람이라, 그게 남의 말처럼 들리지 않았지.

몇 주 뒤, 비슷한 패턴으로 또 다른 후임이 같은 말을 들었다는 걸 들었어. “목록 누락됐는데 이미 사용 처리”라고. 그 후임은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넘어갔다고 하더라. 나는 그 말을 듣고도 계속 신경이 쓰였는데, 이유는 간단했어. 다음 대상이 내 차례가 될 수도 있다는 불길함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이 방식 자체가 “사람을 먼저 조용히 만들기” 위한 절차일 수도 있었거든. 전산이 맞다는 말로 시작해서, 결국 아무도 확인 안 하게 만드는 구조.

마지막으로 남은 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화면 하나야. 전산에서 내 이름이 찍힌 처리 기록이 있는데, 날짜가 점검일과 정확히 겹쳤더라. 점검일이면 보급창 문 잠그고 서명만 하던 날이었는데, 그날 내가 “사용” 처리한 걸로 기록돼 있었어. 그걸 알게 된 밤에만 유독 냉장고 문처럼 등골이 서늘했는데, 다음 날 아침엔 또 평소처럼 훈련이 돌아가더라. 웃긴 건, 실제로 내 보급품은 창고에 있었는데도, 그 기록이 사라진 순간부터는 내가 없는 셈이 된다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아직도 가끔, 누군가 전산 화면을 조용히 넘기며 “맞는 거지”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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