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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진료받고 나오자마자 접수대 종이가 손에 들려 있었어

2026-08-15 20:29:12 조회 4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병원에서 진료받고 나오자마자 접수대 종이가 손에 들려 있었어. 분명 내 손엔 아무것도 없었는데,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소리랑 동시에 손등 쪽에 종이가 툭 얹힌 느낌이 들더라. 처음엔 깜빡했나 싶어서 주머니를 뒤졌는데 지갑이나 휴대폰은 그대로였고, 종이만 손에 들려 있는 상태였어.

종이를 보자마자 얼굴이 좀 굳었어. 병원 로고가 찍힌 접수대 양식이었는데, 내 이름이랑 주민번호 뒷자리까지 적혀 있었거든. 게다가 ‘진료 완료’ 도장이 찍혀 있었고, 밑에는 담당 선생님 성함이 써 있는데 내가 방금 보고 나온 과랑 그대로였어. 문제는 그 도장이… 너무 선명했어. 방금 진료 끝난 게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처리한 것처럼.

나는 무의식적으로 접수대로 다시 걸어갔어. 혹시 누가 잘못 준 건가 싶어서 “이거 제 거 맞나요?” 하고 직원한테 물었지. 그런데 직원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한 번 굳더니,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네, 접수 도착하셨어요. 다시 오실 필요는 없고, 안내대로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하더라.

그 말이 웃기기도 했고, 동시에 소름이 확 올라왔어. “접수 도착이요? 저는 방금 진료 보고 나왔는데요.”라고 하니까 직원이 잠깐 말끝을 흐렸어. 그리고는 종이를 내 손에서 뺏지 않고, 그냥 눈으로만 확인하면서 “네. 방금 나오신 거 맞죠. 아, 잠깐만요” 하고 화면을 보더니, 내가 아까 진료받은 날짜가 아니라 ‘다음 주 같은 요일’이 찍혀 있는 걸 보여줬어.

화면에는 내가 방금 진료 끝내고 나왔던 기록이 있었는데, 시간은 이미 지나가 있었고, 대신 다음 회차 예약이 ‘완료’로 찍혀 있었어. 마치 내가 아직 그 날짜에 가지 않았는데도, 이미 다녀온 것처럼 처리돼 있는 느낌이었지. 직원은 “시스템이 좀 빨라요” 같은 말만 하고 더 설명을 안 했어. 나는 더 따지려다가 입을 다물었어. 괜히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 봐도 있고, 뭐라 설명해야 할지 스스로도 정리가 안 됐거든.

병원 복도는 늘 그렇듯 조용했는데, 그날따라 소리가 유독 뭉개졌어. 발소리도 멀리서 들리는 것 같고, 누가 문을 닫아도 ‘탁’ 하고 바로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울리는 느낌. 나는 종이를 다시 봤는데, 종이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수납 후 제출”이라고 적혀 있었고, 제출처가 ‘접수대 옆 수납함’으로 되어 있었어. 그런데 접수대 옆 수납함은 내가 아까 지나올 때 분명 비어 있었거든. 누가 넣고 닫았던 흔적도 없었고.

나는 결국 수납함 쪽으로 갔어. 닫힌 문을 열어 확인해보려다 말았는데, 이상하게도 내 손이 먼저 움직이더라. 그냥 종이를 그 자리에 내려놓는 순간, 종이 모서리에서 아주 미세한 종이 가루 같은 게 떨어졌어. 그리고 누가 딱 한 장 더 끼워 넣은 것처럼, 수납함 안쪽에 같은 양식이 한 장 더 보였어. 그 양식에도 내 이름이 적혀 있었고, 이번엔 ‘초진’으로 되어 있었어.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어. 초진이라니, 나는 분명 오늘 진료를 받았고, 접수도 이미 끝난 줄 알았거든. 그런데 초진이면 내가 오늘 여기 온 이유 자체가 달라져야 해. 나는 그 종이를 손끝으로 슬쩍 잡았는데,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고 그냥 종이의 질감만 느껴졌어. 대신 이상하게 손바닥에 종이를 잡는 힘이 자꾸 세져서, 마치 누가 뒤에서 “빨리 확인해”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졌어.

다시 접수대로 돌아가서 직원한테 “이거 오늘 초진으로 되어 있는데요?”라고 묻자, 직원은 이번엔 아예 나를 보지 않고 서류를 넘기면서 “오늘은 초진이 맞습니다”라고 했어. 난 “아니요. 저는 예전에…”라고 말하려다 멈췄어. 내가 예전에 여기 왔던 걸 직원이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시스템상 그렇게 찍혀 있는 건지 구분이 안 됐거든. 그 순간, 직원 책상 위에 올려진 도장들이 정렬이 딱 맞춰져 있는 게 보였어. 너무 가지런해서, 누군가 방금 막 ‘완료’와 ‘접수’를 찍어 맞춰둔 것처럼.

밖으로 나오는 길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는데, 버튼 위에 작은 종이 조각이 붙어 있었어. 아까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접수대 종이랑 같은 색이었고, 같은 글씨체였어. 거기엔 딱 한 줄만 적혀 있었지. “다음 회차는 잊지 마세요.” 나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방금까지 내가 느꼈던 미묘한 소리의 지연이 왜 그런지 알 것 같았어. 마치 이 병원이 시간 흐름을 자기 방식대로 정리해버리는 곳처럼.

그날 집에 와서 휴대폰 기록을 확인했는데, 병원 도착 시간부터 진료 끝난 시간까지는 정상적으로 남아 있었어. 그런데 접수대에서 종이를 받은 순간부터 이상하게 몇 분이 비어 있었어. 통화도 아니었고, 화면도 꺼진 적이 없는데, 그냥 기록만 툭 끊어져 있더라. 그리고 그 비어 있는 구간이… 내가 손에 종이가 든 걸 느낀 바로 그 타이밍이랑 겹쳤어. 지금도 가끔 생각나. 병원은 진료를 끝내는 곳인데, 어떤 날엔 내가 나오기 전에 이미 ‘다음’이 먼저 준비되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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