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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기사님이 내가 탄 시간만큼만 더 가자고 했다

2026-08-16 20:29:12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택시에서 기사님이 내가 탄 시간만큼만 더 가자고 했다. 처음엔 그냥 장난인 줄 알았는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 안 공기가 이상하게 굳어버렸어. 비 오는 밤이었고, 나는 목적지까지 도착하면 다 끝나는 줄 알았지. 그런데 기사님이 미터기를 슬쩍 보더니 내 앞자리 거울 쪽으로 손을 뻗더니, “형님, 여기서부터는 좀만 더요”라고 말하는 거야.

난 “네? 목적지 말씀하신 대로 가시면 되지 않아요?” 하고 되물었어. 기사님은 잠깐 웃다가 다시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고, “아니, 내가 형님 태운 시간만큼만 더 가자고요”라고 했어. 운전대는 흔들림 하나 없이 곧게 가고 있었는데, 목소리만 이상하게 낮고 단단했어. 그때 계기판 시계가 깜빡이듯 바뀌었고, 나는 그게 무슨 표시인지 잘 몰랐거든.

사실 내가 탄 시간은 대략 십몇 분이었어. 출발할 때도 버스 정류장에서 택시 잡았고, 비가 세게 와서 빨리 도착만 하면 됐지. 그래서 기사님 말이 더 어이없었어. “시간만큼요? 지금도 가고 있는데요.” 그러자 기사님이 “맞아요, 지금 가는 시간 말고, 형님이 딱 그때부터 탄 시간만큼요”라면서, 마치 계산을 이미 해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어.

나는 찜찜해서 앱으로 들어가 택시 정보랑 이동 기록을 확인하려 했는데, 화면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뜨더니 다시 켜지면서도 위치가 어긋나 있었어. GPS가 튄 건지, 통신이 불안한 건지 모르겠는데, 택시가 달리는 속도랑 내가 본 도로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들더라. 그리고 그 어긋남이 아주 조금씩, 근데 계속 누적되듯이 커졌어. 기사님은 내 핸드폰을 보는지 안 보는지 모를 표정이었는데, 룸미러 시선이 가끔 내 쪽을 스치고 지나갔어.

그때 나는 뭔가 잘못된 걸 직감했어. 비 내리는 유리창에 차의 헤드라이트가 번져서 길 끝이 잘 보이지 않았고, 차는 분명 직진을 하는데도 낯선 길목이 계속 나오는 거야. 한 번은 골목처럼 좁아졌다가, 다음 순간에는 도로가 갑자기 확 넓어지고 표지판은 내가 알던 지명이 아니었어. “여기… 아닌데요?”라고 말하자 기사님은 아주 짧게 “아니요, 맞아요” 하고 끝냈어. 설명을 하진 않았고, 오히려 더 이상한 침묵이 따라붙었지.

내가 처음 탄 곳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머릿속에서 계속 돌아갔어. 기사님이 말한 “형님이 탄 시간만큼”은 결국 내가 이미 지나온 시간과 같은 길이로 더 달리겠다는 뜻 같았거든. 그래서 난 일부러 타이머처럼 생각해봤어. 예전에 버스 기다리던 시간, 택시 잡은 시간, 탑승했을 때 기사님이 출발 버튼 누른 순간… 기억이 자꾸 끊겼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사님이 말한 숫자 같은 게 머릿속에 딱 박히듯 떠올랐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딱 “얼마 전에 네가 숨을 고를 때부터” 같은 느낌이었어.

내가 불안해서 “그럼 기사님, 목적지는 어떻게 돼요? 여기서부터 추가 요금 나오면 말씀해주셔야죠”라고 하자, 기사님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어. 눈빛이 화난 것도 아니고, 겁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말로 못 박히는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는 “추가 요금은 상관없어요. 형님이 내게 계산을 맡겼잖아요. 내가 그만큼만 더 가면 끝나는 거예요”라고 말했어. “계산을요?” 하니까 기사님은 말 대신 핸들을 아주 조금만 틀었고, 차는 내가 예상하던 방향을 피해서 다음 차선을 탔어.

그제야 나는 떠올렸어. 택시에 타자마자, 내가 잠깐 멈칫한 적이 있다는 걸. 정류장에서 손이 젖어서 결제하려다 실수로 화면을 두 번 눌렀던 것 같기도 하고, 기사님이 도착 확인을 늦게 했다고 나도 짜증을 냈던 것 같아. 그때 “저기요, 빨리 가주세요”라고 말하면서도, 내 말이 이상하게 상대에게 ‘시간’을 얹어버린 것처럼 느껴졌어. 물론 말이야. 단순히 스트레스 섞인 표현이겠지. 그런데 기사님은 그 시간을, 마치 계약처럼 잡고 있는 사람이었어.

결국 목적지와 상관없이 차는 계속 달렸고, 비가 더 세게 쏟아지면서 창문 너머 세상이 전부 하얗게 뭉개졌어. 나는 차 안에서 시계를 계속 확인했는데, 이상하게도 초침이 일정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한 번쯤 멈춘 뒤 다시 이어지는 느낌.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제 됐나?” 싶을 때가 두세 번 있었는데, 기사님은 그때마다 “조금만 더요”라고만 했어. 말 끝에 하필 “조금만”이 붙는 게 더 무서웠어. 끝이 언제인지 알려주지 않으니까.

마지막으로 내가 탄 시간만큼이 ‘끝나는 순간’이 오더라. 정확한 분은 모르겠는데, 차가 갑자기 속도를 낮추더니 신호도 아닌 곳에서 정차했어. 계기판 불빛이 한 번 깜빡이고, 룸미러 속 기사님 얼굴이 잠깐 흔들리듯 비쳤는데… 그때 나는 보조석 쪽 바닥에 떨어진 영수증 같은 종이를 봤어. 내 이름이 적혀 있었고, 날짜가 오늘이 아니라 어제 날짜였어. 그리고 종이 아래쪽엔 손글씨로 “태운 시간만큼”이라고 적혀 있었지. 나는 묻지도 못하고 숨만 삼켰고, 기사님은 문 잠금 버튼을 누르기 전에 아주 조용히 “이제 내 시간은 돌아왔어요”라고 말했어. 그 다음 문이 열리면서, 비 소리만 남았고, 기사님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그냥 화면 밖으로 사라진 느낌이었어. 아직도 그 문장, “내가 형님 태운 시간만큼만 더 가자고 했다”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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